04_교회_主_성광

박세리를 통해 보는 대한민국 현주소

전동키호테 2005. 7. 2. 01:03
박세리를 통해 보는 대한민국 현주소  
유교 문화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기독교가 할 일

박세리는 한국 경제가 IMF 구제금융의 수렁에 빠져 있던 1998년 '신화'를 만들었다. 그 해 US 여자 오픈에서 박세리는 검게 탄 튼튼한 다리, 그에 대조되는 흰 발을 드러내고 워터 해저드로 들어가 용감하게 샷을 날렸다. 이 장면은 TV 방송이 시작하거나 끝날 때 애국가와 함께 배경 화면으로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연장전 한 라운드에 이어 다시 서든데스 2홀을 지나는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을 일구어낸 것이다.

박세리의 우승은 그 개인의 영광으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세상이 팍팍하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한국인의 영웅으로 그는 자리했다. 이후 한국도 IMF 사태를 서서히 극복하며 일어났고 오늘날 그 이전의 경제 상태를 거의 복구시켰다. 이렇게 한국민은 6·25 전쟁과 IMF 사태라는 두 번의 국난에서 모두 살아났다.

요즘 한국은 IT와 BT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이건희와 황우석이라는 걸출한 인물 덕분이다. 이밖에도 한국의 이름을 날리는 인물들은 많다. 이 모두 위험 앞에서 과감하게 도전하는 한국민의 기질 덕분에 세계화와 국제화 물결을 잘 탄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이라는 좁은 무대에선 이런 업적들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계의 무대’라 할 자유로운 미국에서 한국인들이 마음 놓고 배우고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창한 미래가 있을 것 같은 한국에도 그늘은 있다.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사고를 보이는 386세대들이 한국 사회를 다스리면서, 이들의 정치 활동이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상을 우린 받는다. 검증 받은 적도 없는 인물들이 인터넷 세대 덕분에 나라 통치권을 잡게 되었다. 이들은 인간이나 인간 사회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본다. 정권만 잡으면 쉽게 사회를 뜯어고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분열과 혼란만 초래시켰고 결국 이들 자체도 부패한 정치인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 시절 이미 실패한 공산주의 이론만으로 인간 사회를 흑백 논리로 비판하며 미래를 잘 준비하지 않은 결과였다. 이들은 지금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요즘 박세리의 부진이 언론에 자주 실린다. 한국 '골프 아이콘'이었던 박세리가 왜 지금 깊은 슬럼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벌써 1년째다. '박세리 신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입회 자격을 얻고 나서부터였다. 되돌아보면 미국 땅을 처음 밟았던 때부터 줄곧 꿈꿔왔던 최종 목적지가 거기였다. 이미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었고 그리고 그 뒤 그는 계속 무너졌다.

박세리의 부진은 소렌스탐이란 스웨덴 여성 골퍼와 극히 대조된다. 최근 개인적으로 이혼이라는 아픔을 당했지만 그는 여전히 승수를 보태고 있다. 한국인 낭자 10여명이 이 여성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고 있는가?

왠지 모르게 동양인 골퍼와 서양인 골퍼의 차이를 본다는 인상을 받는다. 박세리는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소렌스탐은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스웨덴 국민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결국 박세리와 소렌스탐, 이 두 인물은 각각 유교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교권의 박세리가 기독교권의 소렌스탐을 못 당하고 있다.

그럼 이 두 문화는 두 선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 두 문화가 어릴 때부터 미친 영향 아래 이들은 살았고 골프 선수가 되었다. 알려진 대로 박세리는 24시간 골프만 치지만 소렌스탐은 휴식할 때 골프를 완전히 잊고 삶을 즐긴다. 이 사실을 나중 안 박세리는 이에 대해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도 박세리는 알아내지 못했다.

주목할 사실은 박세리가 최고의 성공을 거둔 이후 골프를 칠 목표 의식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세리보다 늦게 성공했지만 ‘골프 여제’란 말을 듣는 스렌스탐은 계속 중요 대회에서 승수를 보태고 있다. 이 둘 사이 무슨 차이가 나는가?
소렌스탐에게 골프는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기를 실현하는 한 수단에 지나지 않지만, 박세리에게 골프는 자기 인생을 최고의 성공 단계로 올려주는 최고의 수단이다. 박세리는 골프에 자기 자신과 인생을 전부 걸고 골프를 한다. 그러므로 그가 골프에서 실패하면 인생에서 실패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소렌스탐은 골프에 실패해도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는다. 이렇게 소렌스탐은 골프를 즐기며 하지만 박세리는 전투하듯 골프를 한다. 전자의 선수는 마음과 몸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지만 후자의 선수는 항상 긴장 상태에 있다.

아무리 체력이 탁월한 운동선수라지만 사람이 이런 긴장 상태를 24시간, 365일, 그리고 5-6년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박세리가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을 얻은 후 심리적으로 무너지며 슬럼프에 빠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렌스탐은 여전히 골프를 즐기며 인생을 여유 있게 살고 있다. 이 둘 사이 삶의 질이 엄청나게 다르다.

결국 유교와 기독교가 형성해 주는 삶의 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타났다. 한국인을 대표하는 박세리의 부진은 유교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도 앞으로 모든 면에서 발전을 이룬 후 균형 감각을 잃고 스스로 무너질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의 부진의 원인을 알아내 한국 사회의 약점을 보완하여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것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일본은 패전 국가에서 일어나 미국 다음 가는 경제 대국을 이루었다. 이를 본 서구의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일본의 세기일 것이라고 예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일본은 여전히 경제 대국이지만 아직도 미국의 눈치나 보는 소국과 같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들이 보이는 경제, 정치, 사회와 문화 면에서 활동이 세계인들의 눈에서 볼 때 보편적인 가치관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민족주의에 기반한 지나친 쇄국주의를 보이며 다른 민족들을 쉽게 대한다. 엄청난 금액의 대외 원조를 제공하지만 일본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제 원조를 못 한다. 이 점에서 일본은 같은 패전국에서 경제 강국을 이룬 독일과 다르다. 무엇 때문인가?
미국과 독일은 오랜 동안 기독교 문화권에 살아오며 성경이 제공하는 보편적인 가치관이 의식 속에 배어 있어 이들 나라들의 정치, 사회, 경제와 문화 면에서 반영되며 세계인들의 공감을 산다. 물론 이들이 반드시 모든 면에서 훌륭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양의 유교는 보편적인 가치관을 결여한다. 유교는 현세의 종교로 내세를 모른다. 자연히 유교는 이 지상에서의 성공과 번영을 최고의 가치로 본다. 그 결과 유교인들은 이 세상의 성공과 번영으로 자만하기 쉽다. 그리고 유교인들은 가문이나 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며 대단히 이기적이며 패쇄적인 면을 보인다. 이런 유교적 특성은 오늘의 한중일 관계에서 잘 증명된다.

이들 나라들은 문화 면에서 같은 뿌리를 가지지만 서로 협력이 잘 안될 뿐만 아니라 서로 다툰다. 이들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부강해지자 중국과 일본은 군비 확장에 엄청난 국부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라는 큰 대의를 위해 가문과 민족을 초월하여 생각하도록 요구한다. 그렇게 기독교인들은 개인 가문과 나라의 번영에 보편적인 가치관을 심는다.

21세기를 맞아 한국은 지금 세계열강에 둘러싸여 아주 어려운 순간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이 위치한 동북아시아에서 기독교 복음이 제일 왕성한 나라는 한국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국이 이들 나라보다 사회와 문화 면에서 앞서 가야 한다. 그럼 한국 기독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에서 언급된 박세리의 부진과 경제 대국 일본의 약소국 모습은 한국 기독교가 자신의 민족의 장래와 미래를 위해 무엇에 진력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려준다. 그것은 한국 교회가 가능하다면 순수한 복음을 민족에게 전해 주어 민족의 비기독교적인 정서를 가능한 많이 고쳐 민족 사회에 기독교적인 보편적 가치관이 유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이를 위해 목회자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게 하는 개교회주의나 영웅주의적 교회 성장론을 배격하여야 한다. 개교회들은 민족 안에 보이지 않는 보편 교회를 확장시켜 나가 민족을 개조한다는 목표 아래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하여야 한다.

그리고 특별 은총에 기반한 기독교의 배타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타종교나 타종교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말고 일반은총의 범위 안에서 이들과도 협력하여 민족과 나라 발전을 도모하여야 한다.

소명자는 기독교 진리가 참임을 알고 말로 기독교의 배타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기보다 삶과 생활로 그 진리를 실천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자기 민족만 아니라 이 세상에 세우고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님의 소명과 사명에 따라 개인, 가문 그리고 민족도 부정하여 초월할 줄 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민족을 포용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자기부정은 성화와 목회의 최절정에 이르게 한다.

2005년 06월 08일 22:12:32
장창수(rassvet) lyuboph@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