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_기도_書_말씀

아디아포라에 대한 똘레랑스

전동키호테 2008. 1. 20. 17:57

아디아포라에 대한 똘레랑스

Christening.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주는 걸 보니 우리 아이 셋이 유아 세례를 받던 날이 기억난다. 솔직히 나는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세례를 주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아이가 커서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세례파들이 옳다고 믿는다. 따라서 유아세례는 아이의 구원이나 축복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공동체와 함께 아기를 주님께 바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축복하는 헌아식(獻兒式)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유아세례를 폐지하자고 하지 않는가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오랜 전통을 바꾸는 건 말처럼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유아세례에 관한 내 입장이 내가 속한 교회의 전통과 다르지만 유아세례를 폐지하자고 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은 이것이 그렇게까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신앙과 교회를 왜곡되게 하는 본질적인 문제라면 비록 교회를 힘들게 하고 내가 험한 꼴을 당하더라도 마땅히―물론 겸손과 사랑으로―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아프게 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다면 너그럽게 '관용'하자. 타협이 아니다.

신앙적 '똘레랑스'(tolerance)인 것이다.


영적 똘레랑스를 발휘해야 할 대목은 적지 않다. 신자의 영적 기질과 취향에 따른 신앙의 색깔 문제(이를테면, 누구는 이성적이고 누구는 신비주의적이며 누구는 관상기도나 향심기도를 즐겨 하고 누구는 통성기도를 즐겨 하는 등의), 신자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의 문제 등과 같은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예배에 어떤 음악을 쓸 것인가, 어떤 옷차림으로 교회에 올 것인가, 술·담배를 해도 되는가, (나처럼) 교회 전도사가 염색을 하고 귀걸이를 해도 되는가와 같은 문화적인 문제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보통 '아디아포라'(adiaphora)라고 하는데, 이는 어원상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라는 뜻
이며, 성경에 명백한 가르침이 없기에 각자의 신앙적 양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가리킨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아디아포라에 대해 모범답안을 정해놓고 거기서 벗어나면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몰아붙이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새 신자가 교회에서 자유를 누리는 대신 온갖 올무로 옥조여진 느낌을 갖게 된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다르긴 하지만 댄스, 발레, 연극을 금했을 정도로 엄격했던 왕년의 청교도들조차 목사가 담배를 피운다거나 남자가 가발(wig)을 쓴다거나 성도가 맥주를 파는 음식점에 가는 일을 아디아포라의 영역으로 남겨두었건만, 한국 보수교회는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거는 똥고집을 부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고쳐 마땅한 본질적인 사안에 대해선 성전 정화에서 보여준 예수님의 의분을 드러내는 대신 '은혜롭지 못하다'는 말로 쉬쉬 묻어두고 있다.


조각글이니만큼 더 길게 쓸 수는 없고 리차드 백스터의 『개혁된 목사』(The Reformed Pastor, 1656)에 나온 명언으로 글을 매조지하자.  


본질적인 것에서는 일치를(in necessariis unitas),
비본질적인 것에서는 자유를(non-necessariis libertas),
모든 것에는 사랑을(in utrisque caritas).

조각글, 조각묵상  / 박총 - TST(토론토대학 신학부) 재학중

 

2008년 1월호 큐티진에서 가져옴.   *^^*

'03_기도_書_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떨기나무 소개  (0) 2008.02.14
깨어진 달걀 사이로  (0) 2008.01.20
말씀 묵상과 바라봄  (0) 2008.01.20
[스크랩] 대표기도의 원칙  (0) 2007.11.13
(책)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고서..  (0) 2007.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