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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생활의 중심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전동키호테 2006. 5. 2. 15:37
부엌, 이젠 온 가족이 대화하는 공간…
카페같은 인테리어로 거실을 밀어내고
생활의 중심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미국 뉴저지주(州) 버건 카운티(Bergan County)에 사는 빌 파난(45·개인사업), 줄리 파난(40)씨 부부. 단독주택에 사는 두 사람은 최근 부엌을 리모델링하면서 1평 정도 더 늘렸다. 빌 파난씨는 “부엌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엌 한쪽에는 부인 줄리 파난씨가 사용하는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천장에는 오디오에 연결된 스피커가 달려 있었다. 아이들은 오후 4시쯤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정문 대신 부엌으로 통하는 옆문으로 들어온다. 숙제는 부엌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아일랜드형(조리대가 섬처럼 설치돼 있는 형태) 가구 위에서 한다. 빌 파난씨는 퇴근 후 식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아이들과 게임을 한다.


“저녁식사 때는 하루 중 유일하게 온 가족이 모여 느긋하게 얘기를 나누며 함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당연히 부엌에 오래 있게 되지요. 거실에 있는 시간은 자꾸 줄고 부엌에 있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어요.”

◆가족만의 공동 공간

부엌의 지위가 변하고 있다. 부엌은 이제 단순히 ‘가족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공간’이 아니다. 구석에 내몰려 있던 부엌은 바쁜 현대 사회에서 온 가족이 여유 있게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 가정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거실과 부엌의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부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부엌가구 업체 한샘이 7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10년 전 부엌의 기능은 ‘음식을 만드는 곳’(93%)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데 비해 최근의 부엌은 ‘대화하는 공간’이라는 응답이 53%로 가장 많았다.

한샘 관계자는 “한 프랑스 연구자는 ‘TV가 안방에서 거실로 옮겨갔다가 이제 주방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전망했다”며 “부엌이 생활의 중심이 되는 현상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부엌의 고급화

이탈리아의 유명 가구 디자이너 멘디니씨는 “사람들은 점차 부엌을 아름다운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가구 박람회’에서는 카페 같은 부엌 인테리어 가구가 대거 선을 보였다. 거실에 놓는 붙박이장이나 책꽂이를 연상시키는 디자인도 나왔다. 이탈리아 유명 부엌가구 브랜드 ‘다다’는 미닫이문을 설치해 조리대와 선반을 가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톤첼리’는 책상 및 개수대 겸용 가구를 내놓았다. 평소에는 탁자로 사용하다 단추를 누르면 상판이 밀려나면서 싱크대로 바뀐다. 냉장고·가스레인지 등 미관상 조화를 깨뜨릴 수 있는 가전제품은 될 수 있는 대로 가구 안에 감췄다.

 

◆ 삶의 질 높이는 ‘트레이딩업’ 현상 반영

부엌의 위상 변화가 현대인들의 가족 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삶의 질을 높이는 제품에 대해서는 비싼 가격도 기꺼이 지불하는 상향구매를 뜻하는 ‘트레이딩업(Trading Up)’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가 제품을 주로 구입하던 중산층 소비자가 명품 브랜드 구매에 나섰다는 것.

한 세트가 수천만원에 이르는 이탈리아 명품 부엌가구 ‘몰테니’를 만드는 카를로 몰테니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의 고급 가구 구매가 늘어난 덕택에 매출이 매년 15~20%씩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샘 미국 지사 윤신현 상무도 “몇 년 전만 해도 8000달러(760만원) 이하 규모에서 부엌 가구를 설치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보통 1만2000달러(1140만원)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요리가 레저로 바뀌고 있는 것도 부엌의 의미가 달라지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여성의 지위 상승이 부엌 위상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뉴저지=김승범기자 sb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