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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우는 이야기

전동키호테 2006. 5. 4. 08:29

 

요즘 울음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소쩍새는 한자로는 정소조(鼎小鳥)라고도 한다. 옛적에 민간에서는 소쩍새가 ‘소탱소탱’ 하고 울면 솥이 텅텅 비는 흉년이 들 것이고 ‘솥 적다 솥 적다’하고 울면 풍년이 들 것이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소쩍새는 올빼미과로 밤에 우는 게 보통이고 소쩍새와 자주 혼동되는 접동새는 낮에 운다.

 
옛날 중국의 주나라 유왕 때에 귀족인 윤씨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 권세가 얼마나 당당한지 고생하는 백성들이 불만을 말했다가는 언제 잡혀가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판이었다. 이런 권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고 몇 대에 걸쳐 쌓여온 것이었다. 또 윤씨 집안은 자손을 분가시키는 법이 없이 모두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하인까지 합치면 거의 수천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한솥밥을 먹으며 북적북적했다. 그러던 어느 해에 흉년이 들어-소쩍새가 예언을 했는지는 모르지만-이 대귀족 집안도 쌀이 모자라는 사태가 발생했다. 밥을 해먹을 수가 없어서 죽을 끓여 먹게 되었는데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집안 사람들이 죽을 먹으며 후루룩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식구 숫자가 모자라는 듯하여 세어보니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또 ‘아무리 찾아도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는, 하나마나 한 말이 따라붙는 게 보통이다. 하여튼 그들은 평상시에 밥을 해먹는 솥 안에 있었다. 서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삽이며 호미를 들고 열심히 솥바닥의 죽을 긁어먹고 있었다고 하니 보통 솥이 있는 집에서는 ‘그놈의 집안 솥 크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겠다.

 
승보 사찰로 일컬어지는 전남 순천의 송광사는 밥을 담는 용기인 ‘비사리 구시’가 있다. 얼핏 생각하면 범어 같은 느낌을 주는 비사리 구시라는 말은 ‘싸리나무 구유’라는 의미인데 1724년 남원에서 쓰러진 큰 싸리나무로 만들었다. 나라에 큰 재가 있을 때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해 쓰였는데 한 번에 쌀 일곱 가마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수로 치면 4000명분이다. 그렇다면 그 무렵의 사람들은 한 끼에 1.14285714285 홉을 먹은 셈이 된다. 솥은 얼마나 또 컸을까. 소쩍새는 알겠지. (메트로 성석제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