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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서 최고의 강자는 누구일까? 이런 상상을 하는 사람의 호기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는 이종격투기는 오늘날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최홍만과 같은 한국 선수가 세계 최고 고수들과 싸울 때 사람들은 애국심까지 드높이며 승리를 기원하기도 한다. 이대로라면 기독교 이종격투기 동호회가 생길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이종격투기의 대표적인 경기에는 K-1이 있다. 말 그대로 K자로 시작되는 가라테, 킥복싱, 쿵푸의 무술 중(실지로 다른 권법도 포함되지만) 최강자(Number one)를 뽑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넘어진 선수에게만큼은 타격을 금지하는 K-1보다 더 잔인한 경기를 원했다. 글러브도 훨씬 얇고 손가락이 밖으로 나오는 반글러브를 착용하는 Pride FC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최고의 잔악성은 8각형 철조망 안에서 글러브도 착용하지 않은 채 모든 공격이 허용되었던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에서 그 극치를 보여주었다(1993년에 미국에서 시작됨). 그 끔찍함 때문에 미국에서는 TV 중계를 금지했는데, 몇 개의 기본 룰을 정하고 반글러브도 착용하도록 함으로 다시 TV 중계가 허용되기도 했다. 국부 가격과 눈 찌르기, 깨물기 등 몇 가지 외에는 모든 싸움 기술이 허용된다는 점에서 이는 다른 종목의 스포츠인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상업화된 싸움일 뿐이다. 경기 중 쓰러진 선수의 면상에 주먹질을 하고 안면을 무릎으로 가격하여 얼굴 뼈가 바스러지는 것도 허락된다. 상대방의 팔과 다리를 부러뜨리며 넘어진 선수의 허리를 꺾는 것은 오히려 승자가 누리는 축복으로 간주된다. Pride FC에서는 한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바닥의 핏자국이 더욱 선명해진다. 이런 경기는 사실 법망에 걸리지 않는 한도에서 잔인하고 끔찍한 폭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운동 아닌 폭력 그 자체이며 사람을 죽이지만 않을 뿐 콜로세움의 광기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게임을 할 때 어떠한 메디컬 체크도 선수들을 장기적 뇌 손상과 후유증 그리고 사망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전에 기독교인으로 권투 선수인 조지 포먼이 불혹의 나이에 자신이 운영하는 기독교청소년회관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권투를 하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한 신문 기자의 과연 ‘거듭난’ 기독교인이 권투와 같이 상대방을 ‘두들겨 패는 짓’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권투는 서로 안전사항과 규칙을 지키면서 하는 운동일 뿐이며 정치가들처럼 야비하고 폭력적이지는 않다고 했다(그는 한때 정치에도 참여했었다). 자신이 권투를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실지로 그는 권투를 통해 수많은 비행청소년들을 선도했다. 이종격투기 선수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성경에 구체적으로 이종격투기나 이와 유사한 운동에 대한 논쟁이 없기에 뭐라 답하기가 곤란하다. 이종격투기는 권투보다 더욱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운동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어떤 이가 권투는 괜찮고 이종격투기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이는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풀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비인간적인 폭력적 성향, 선수들의 뇌 손상과 사망 등을 근거로 한 권투폐지론자들이 볼 때 권투도 마찬가지로 위험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폭력적이고 허락되어서는 안 되는 운동인가를 정한다는 것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기도 하고 시장성의 원리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 현실임을 인정하다. 그럼에도 이종격투기 경기는 사실 스포츠 성격을 넘어서 자본주의 논리와 인간의 폭력에 대한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측면이 지나치다. 단순히 폭력성과 잔인함으로 인해 인기가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스포츠라 할 수 없다. 이 경기는 분명 아직 감수성이 예민하고 판단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상당한 폭력성을 조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격투기를 보고 즐기는 이유는 대리만족 때문일 것이다. 마우스피스가 튀어나가고 그렇게 강하게 보이던 상대방 선수가 무참히 주저앉을 때 느끼는 짜릿한 맛으로 인해 이종격투기는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오기 힘든 마약과 같다고들 한다. 보고 나면 스트레스가 쫙 풀린다고도 하지만 사실 이에 익숙해지면 사람의 뇌는 더 큰 폭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런 순간적인 짜릿함을 추구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결국은 해를 입힌다. 결국 폭력에 무뎌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는 폭력적 성향이 굳게 자리 잡게 되기 때문이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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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2일 16: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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