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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민족정기

전동키호테 2005. 11. 10. 16:14
우리말과 민족정기


요즈음 나라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정가의 머리말로 회자되고 있다. 한 나라의 정신적 바탕이라 할 수 있는 정체성 문제는 비단 생각의 틀이나 이념적인 문제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얼빠졌다 또는 정신 나갔다는 말이 쓰이듯이 나라와 겨레에게도 혼이 있고 정신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여러 가지 말과 글의 밑바탕에는 민족정신이나 나라사랑 같은 국가적 정신세계가 올곧게 자리매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가닥에서 오늘 우리들이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잠 들 때까지 수 없이 말하고 듣는, 또 쓰고 읽는 일상 말과 글에 관해 생각해 보고 싶다.
한마디로 우리말과 글이 너무 섞여 있고 심히 오염되어 이제는 그냥 놔 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다.


첫째 외국말과 글이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점이다. 미처 우리 문화 속에 아직 없는 단어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마치 유식함의 표시인양 쓰기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로그인, 로그아웃, 메이크업, 아울렛, 픽업, 백데이타” 등에서부터 최근 광고지에 소개되는 아파트 이름들을 이정구님이 모아 보니 “ 한라비발디, 에버빌, 패밀리아, 푸르지오, 베리굿, 블루밍, 신주애지앙, 월드메르디앙, 다숲캐슬, 반도보라빌, 마젤란저, 두산위즈, CJ나인파크, 해피트리, KB타운, 관저하이존, 굿모닝힐, 삼환나우빌, 엔리치빌, 아이파크, 우림루미앙, 코아루, 데시앙, 리체스, 아트리움, 쉐리움, 오스카빌, 리더스하임, 아이누리, 크로바, 올림픽패밀리, 엔리치타워, 더리치빌, 동양파라곤, 대원칸다빌, 스마트시티” 등이 나왔다 한다.

외국말 홍수속 우리말 좋은 이름
이쯤되면 외국 말글의 사용이 좀 지나치지 않나 싶다. 다행히 이런 외국 말글의 홍수 속에서도 가뭄에 콩 나듯이 순수 우리말로 된 좋은 이름들이 있어서 반갑다. 예컨대 “샘머리, 큰솔, 열매마을, 선비마을, 보람, 한사랑, 한마루, 청솔, 무지개, 진달래, 한우리, 한빛, 상록수, 푸른뫼, 강변” 등의 이름들이다. 국어학자와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써서 이런 외국말들을 우리말로 고쳐 잡아 널리 펼치는 운동을 벌였으면 좋겠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자동차 관련 용어들 가운데서도 마후라(소음기), 브레키(멈춤장치), 모다(발동기), 쇼바(완충기), 미션(변속기), 다시방(계기판), 빽미러(뒤거울), 핸들(운전대) 같은 것이 있고 일상 생활용어들 중에도 세미나(토론회), 워크샵(연구발표회), 포럼(토론마당), 리모델링(개·보수), 매뉴얼(안내서/설명서), 컨텐츠(꾸밈정보), 클로스터(집적단지), 시너지효과(상승효과), 로드맵(일정/계획), 방카슈랑스(은행취급보험), 모기지론(장기주택융자), 태스크포스(특별기획단), 인프라(사회간접자본), R&D(연구개발), NT(초정밀원자세계), ET(환경공학), BT(생명공학) 같은 것은 우리말로 바꾸어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말은 생명력이 있어서 생기고, 쓰이고, 쇠하여 사라지게 되어있다. 그때그때 시대상황과 시대정신을 내비치는 것이다. 또한 “말이 씨앗 된다”는 말처럼 사람이 말을 만들지만 말이 또한 사람을 만든다. “된다 된다” 하면 되는 것이고, “죽는다 죽는다” 하면 죽게 된다. 반복되는 말이 일종의 체면 효과와 자기 확신을 만들기 때문이다.

위험한 언어사대주의
그래서 “문제다, 위기다, 퇴보한다, 하향한다” 는 말보다 “잘된다, 좋아졌다, 살만하다, 상향한다” 등의 말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물론 억지로, 거짓말로 강요해선 안될일이다. 그러나 사물이나 상황을 볼 때 긍정적으로 밝게, 좋게 볼 수 있는 주관적인 안목도 필요한 것이다.
또한 세계화는 반드시 지방화와 나란히 가야 할 일이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말과 글을 더욱 다듬고 아껴 써서 한국정신과 민족정기 그리고 나라사랑의 운동을 펼쳐나가야 겠다. 언어사대주의도 정치사대주의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다. 우리말과 글을 잘 갈고 닦아 나라 정체성을 보다 든든하게 지켜나가기를 제안하고 싶다.  

 

..........    이상윤   한남대학교 총장 2005.11.07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