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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말하셨지~” W송 인기몰이

전동키호테 2005. 10. 2. 09:04

“아버지는 말하셨지~” W송 인기몰이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웃으면서 사는 인생 자 시작이다∼.” 한 카드회사의 CM송(W송)이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30초 정도에 불과한 이 곡은 흥겨운 폴카 리듬에 뽕짝 멜로디를 얹어 ‘힘든 세상 가볍게 한번 웃어 보자. 마음이 편하지’라며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7월에 첫 광고가 나간 후 인터넷 미니홈피, 블로그에서 급속히 확산되며 휴대전화 벨소리와 컬러링(통화연결음) 등에서도 일반 대중가요를 제치고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LG텔레콤의 8월 벨소리 다운로드에서 3만 건을 기록했으며 KTF의 8월 집계에서는 1위, 9월엔 1∼3위를 오갔다.》

○ 인생을 즐겨라… 아버지의 변신?


이 CM송의 가사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 “절제하고 목표를 향해 노력해야 한다”는 기존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특히 그런 점에서 높아만 가는 취업문, 과도한 경쟁 속에서 중압감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어필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취업 준비생인 박기범(26) 씨는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라는 말만 듣는데, 그나마 해학적인 목소리로 ‘인생을 즐겨라’라고 하는 걸 들으면 근심이 덜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즐기자’는 메시지만으로 이 노래가 주목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인생을 즐겨라’라고 말한 주체가 ‘아버지’란 점이 중요하다.


문화평론가 남재일(南再一) 씨는 “오랜 전통인 엄숙주의, 절제주의 가치관을 가르치고 기성세대를 상징해 온 아버지상에 대한 젊은 세대의 뒤집기이자 아버지가 친구같이 ‘인생을 즐겨라’라고 말해 줄 수 있길 바라는, 새로운 아버지상에 대한 갈망이 함께 들어 있다”고 말했다.


○ 진짜 아버지들의 생각은?


두 아이를 둔 회사원 황준호(41) 씨는 “얼핏 보면 흥겹고 신나지만 한편으로는 힘들고 암울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실감케 하는 체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반면 네 살, 다섯 살짜리 자녀를 둔 회사원 윤성보(34) 씨는 “우리 세대는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가서 출세하는 삶을 추구하라고 교육받았지만 자식에게만큼은 광고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김창남(金昌南) 교수는 “젊은이들은 아버지들이 보여 온 인생에 대한 무조건적인 ‘열심’ 자세를 믿지 않게 됐다”며 “‘인생을 즐겨라’라는 메시지는 미래보다 현실 쾌락을 더 중요시하는 젊은이들의 인생관이 담긴 것이라서 세대마다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W송 전문: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웃으면서 사는 인생, 자 시작이다. 오늘밤도 누구보다 크게 웃는다(하하하). 웃으면서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 앞에 있는 여러분들 일어나세요. 아버지는 말하셨지. 그걸 가져라. 그걸 가져라.”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엄숙한 아버지 입 빌려 현실 비틀었죠”▼

 

 


CM송 ‘W송’을 작곡한 김창배 씨, CM송 가수 방대식 씨, 작사를 맡은 광고회사 TBWA의 김경태 AE(왼쪽부터). 신원건 기자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 ‘참신한’ 아버지. 그를 만든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 작곡을 한 CF 음악감독 김창배(36) 씨, 작사(광고팀원들 공동창작)에 참여한 광고회사 TBWA의 김경태(32) AE, 노래를 부른 CM송 가수 방대식(38) 씨를 3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김경태=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69 식스티 나인’에 나오는 ‘인생을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문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이것을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의 입을 통해 말한다면 역설적일 것 같더라고요.


▽김창배=음악도 주제에 걸맞게 흥겨운 폴카 리듬을 썼고 멜로디 역시 ‘코요태’ 음악처럼 귀에 착 감길 수 있도록 신경을 썼어요.


올 5월에 3주간에 걸쳐 만든 이 광고의 가사는 원래 ‘인생을 즐겨라. 웃으면서 사는 인생, 자 시작이다’가 아니라 ‘노는 게 남는 것. 오늘밤도 누구보다 불태워 본다’였다. 하지만 광고 심의에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는 바람에 바꿨다.


▽방대식=가치전도적인 의도는 없었어요. 일을 하고 있지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죠.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도 열심히, 노는 것도 열심히’가 아닐까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