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씨 '망명 연기하자' 손에 쪽지 넣고 악수
안기부 사전접촉, 사실로… 南요원에게 메모 전달, 日서 1차 시도 실패
中서는 '감행' 메시지… 北측 따돌리고 탈출
YS "장쩌민에게 편지"… "北 보내지 말아달라" 中대사 모르게 전달 도쿄에선 어려울 것 같소. 베이징에서 다시 합시다."
1997년 1월 30일 주체사상 세미나 참석차 일본 도쿄를 방문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는 원래 일본에서 망명할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조총련계 인사들이 뭔가를 눈치 챈 듯 내내 황 전 비서를 에워싸듯 따라붙었다. 결국 망명 실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황 전 비서는 손바닥만한 종이에 '망명 계획을 연기하자'는 내용의 메모를 적어 남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에게 전했다. 메모는 실향민 출신의 한국인 사업가 A씨와 악수하는 틈을 이용해 조총련 인사들 몰래 전달됐다. 황 전 비서는 그로부터 열흘쯤 뒤인 2월 12일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탈출해 한국총영사관 진입에 성공했다.
당시 '황장엽 망명 작전'을 지휘한 전직 안기부 간부 B씨는 12일 본지 기자와 만나 "황 전 비서가 도쿄에서 자필로 적어 우리측에 넘긴 메모를 지금도 갖고 있다"며 "황장엽 망명은 1996년부터 안기부와 황 전 비서측이 치밀한 접촉을 통해 성사시킨 대북 작전의 성과였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도쿄에서의 망명 계획을 연기한 황 전 비서는 2월 11일 북한으로 돌아가는 최종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도쿄에서 망명 작전 계획이 유출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해 베이징이 마지막 기회였다. 안기부도 C국장을 베이징에 급파해 황 전 비서측의 연락을 기다리도록 했다. 황 전 비서는 이번에도 A씨를 통해 '2월 12일 망명을 감행하겠다'는 뜻을 우리측에 전해왔다. 12일 오전 9시 30분 김정일의 생일(2월 16일) 선물을 준비해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북한대사관을 나선 그는 시내 한 호텔에서 C국장과 접선해 곧장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황 전 비서의 한국행을 성사시키려는 우리 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북측의 외교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에게 '황 전 비서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친서를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은 12일 황 전 비서 빈소에서 "장 주석으로부터 한 달이 되도록 답이 없었다. 결국 중국대사를 불러 답을 재촉한 끝에 장 주석이 '제3국에 머물다 한국으로 들어간다'는 조건을 달아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안기부도 경유국을 물색하기 위해 외국 정보당국과 접촉에 나섰다. 일본과 싱가포르,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진 미얀마와도 접촉했으나 필리핀으로 결정됐다. 김 전 대통령은 "6·25 참전용사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이 우리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며 "나중에 (감사의 뜻으로) 필리핀에 폐기 직전의 군함 2~3척을 1척당 100달러씩 받고 지원했다"고 했다.
황 전 비서는 북한대사관 탈출 한 달여 만인 3월 18일 베이징을 떠나 필리핀에 도착했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지난 4월 20일 서울 땅을 밟았다. 망명 67일 만이었다.
안기부 사전접촉, 사실로… 南요원에게 메모 전달, 日서 1차 시도 실패
中서는 '감행' 메시지… 北측 따돌리고 탈출
YS "장쩌민에게 편지"… "北 보내지 말아달라" 中대사 모르게 전달 도쿄에선 어려울 것 같소. 베이징에서 다시 합시다."
1997년 1월 30일 주체사상 세미나 참석차 일본 도쿄를 방문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는 원래 일본에서 망명할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조총련계 인사들이 뭔가를 눈치 챈 듯 내내 황 전 비서를 에워싸듯 따라붙었다. 결국 망명 실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황 전 비서는 손바닥만한 종이에 '망명 계획을 연기하자'는 내용의 메모를 적어 남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에게 전했다. 메모는 실향민 출신의 한국인 사업가 A씨와 악수하는 틈을 이용해 조총련 인사들 몰래 전달됐다. 황 전 비서는 그로부터 열흘쯤 뒤인 2월 12일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탈출해 한국총영사관 진입에 성공했다.
당시 '황장엽 망명 작전'을 지휘한 전직 안기부 간부 B씨는 12일 본지 기자와 만나 "황 전 비서가 도쿄에서 자필로 적어 우리측에 넘긴 메모를 지금도 갖고 있다"며 "황장엽 망명은 1996년부터 안기부와 황 전 비서측이 치밀한 접촉을 통해 성사시킨 대북 작전의 성과였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도쿄에서의 망명 계획을 연기한 황 전 비서는 2월 11일 북한으로 돌아가는 최종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도쿄에서 망명 작전 계획이 유출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해 베이징이 마지막 기회였다. 안기부도 C국장을 베이징에 급파해 황 전 비서측의 연락을 기다리도록 했다. 황 전 비서는 이번에도 A씨를 통해 '2월 12일 망명을 감행하겠다'는 뜻을 우리측에 전해왔다. 12일 오전 9시 30분 김정일의 생일(2월 16일) 선물을 준비해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북한대사관을 나선 그는 시내 한 호텔에서 C국장과 접선해 곧장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황 전 비서의 한국행을 성사시키려는 우리 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북측의 외교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에게 '황 전 비서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친서를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은 12일 황 전 비서 빈소에서 "장 주석으로부터 한 달이 되도록 답이 없었다. 결국 중국대사를 불러 답을 재촉한 끝에 장 주석이 '제3국에 머물다 한국으로 들어간다'는 조건을 달아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안기부도 경유국을 물색하기 위해 외국 정보당국과 접촉에 나섰다. 일본과 싱가포르,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진 미얀마와도 접촉했으나 필리핀으로 결정됐다. 김 전 대통령은 "6·25 참전용사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이 우리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며 "나중에 (감사의 뜻으로) 필리핀에 폐기 직전의 군함 2~3척을 1척당 100달러씩 받고 지원했다"고 했다.
황 전 비서는 북한대사관 탈출 한 달여 만인 3월 18일 베이징을 떠나 필리핀에 도착했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지난 4월 20일 서울 땅을 밟았다. 망명 67일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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