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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황장엽 망명 작전' 그때 그 순간

전동키호테 2010. 10. 13. 11:09
"黃씨 '망명 연기하자' 손에 쪽지 넣고 악수
안기부 사전접촉, 사실로… 南요원에게 메모 전달, 日서 1차 시도 실패
中서는 '감행' 메시지… 北측 따돌리고 탈출
YS "장쩌민에게 편지"… "北 보내지 말아달라" 中대사 모르게 전달

도쿄에선 어려울 것 같소. 베이징에서 다시 합시다."

1997년 1월 30일 주체사상 세미나 참석차 일본 도쿄를 방문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는 원래 일본에서 망명할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조총련계 인사들이 뭔가를 눈치 챈 듯 내내 황 전 비서를 에워싸듯 따라붙었다. 결국 망명 실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황 전 비서는 손바닥만한 종이에 '망명 계획을 연기하자'는 내용의 메모를 적어 남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요원에게 전했다. 메모는 실향민 출신의 한국인 사업가 A씨와 악수하는 틈을 이용해 조총련 인사들 몰래 전달됐다. 황 전 비서는 그로부터 열흘쯤 뒤인 2월 12일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탈출해 한국총영사관 진입에 성공했다.

당시 '황장엽 망명 작전'을 지휘한 전직 안기부 간부 B씨는 12일 본지 기자와 만나 "황 전 비서가 도쿄에서 자필로 적어 우리측에 넘긴 메모를 지금도 갖고 있다"며 "황장엽 망명은 1996년부터 안기부와 황 전 비서측이 치밀한 접촉을 통해 성사시킨 대북 작전의 성과였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도쿄에서의 망명 계획을 연기한 황 전 비서는 2월 11일 북한으로 돌아가는 최종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도쿄에서 망명 작전 계획이 유출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해 베이징이 마지막 기회였다. 안기부도 C국장을 베이징에 급파해 황 전 비서측의 연락을 기다리도록 했다. 황 전 비서는 이번에도 A씨를 통해 '2월 12일 망명을 감행하겠다'는 뜻을 우리측에 전해왔다. 12일 오전 9시 30분 김정일의 생일(2월 16일) 선물을 준비해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북한대사관을 나선 그는 시내 한 호텔에서 C국장과 접선해 곧장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황 전 비서의 한국행을 성사시키려는 우리 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북측의 외교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에게 '황 전 비서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친서를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은 12일 황 전 비서 빈소에서 "장 주석으로부터 한 달이 되도록 답이 없었다. 결국 중국대사를 불러 답을 재촉한 끝에 장 주석이 '제3국에 머물다 한국으로 들어간다'는 조건을 달아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안기부도 경유국을 물색하기 위해 외국 정보당국과 접촉에 나섰다. 일본과 싱가포르,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진 미얀마와도 접촉했으나 필리핀으로 결정됐다. 김 전 대통령은 "6·25 참전용사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이 우리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며 "나중에 (감사의 뜻으로) 필리핀에 폐기 직전의 군함 2~3척을 1척당 100달러씩 받고 지원했다"고 했다.

황 전 비서는 북한대사관 탈출 한 달여 만인 3월 18일 베이징을 떠나 필리핀에 도착했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지난 4월 20일 서울 땅을 밟았다. 망명 67일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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