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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적 이유로 혼인해도 체류허가 못얻어

전동키호테 2010. 10. 11. 09:10

신부 '재일 조선적' 이유로 혼인해도 체류허가 못얻어

"통일염원 담은 국적인데…" 외교부 "한국적으로 바꾸라"


10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봉천동 낙성대 전통혼례식장에 신부를 태운 가마가 들어섰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서 따뜻한 햇살이 쏟아졌다. 가마는 신랑 앞에서 멈췄다. 새하얀 얼굴에 다홍빛 연지를 찍은 신부 리정애(35)씨가 가마에서 내렸고, 까만 얼굴의 신랑 김익(35)씨는 좀체 수줍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혼례청 위에서 세 차례 맞절을 했다. "신랑 김익과 각시 리정애가 평생을 함께할 부부가 되었다"는 성혼선포가 이어졌다. 마침내 이들은 '조선' 국적과 '남한' 국적을 가진 '국내 1호 부부'가 됐다.

하지만 '조선' 국적의 신부는 마냥 좋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다음달 12일이면 남편을 한국에 둔 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리씨는 "지난 8월 오사카 한국영사관에서 3개월짜리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한국에 왔다"며 "현 정부 들어 조선 국적 재일동포들의 입국심사가 까다로워져, 일본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한국으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재일동포 가운데 해방 뒤 남한도 북한도 택하지 않고 '조선' 국적을 유지하며 사실상 '무국적'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이들이 있는데, 리씨도 이런 '조선' 국적 재일동포 3세다. 한국엔 2004년 제주도에 있는 친척을 만나러 처음 왔다. 2006년부터 꾸준히 한국을 드나들면서 우리 문화에 익숙해졌고, 2007년부터 2년 동안은 월간 < 민족21 > 에 연재된 만화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2008년 1월 통일운동가인 김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리씨는 "진정한 마음으로 꾸준히 통일운동을 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이들의 결혼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 9월9일 혼인신고를 했지만, 리씨의 국적이 문제가 돼 8일이 지나서야 혼인관계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증명서의 리씨 국적란은 공란으로 남아 있다. 남편 김씨는 "처음엔 '무국적'으로 기재됐다가 곧바로 삭제됐다"며 "구청에서도 '외국인 등록번호도 없이 국적이 비어 있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리씨는 증명서상 외국인이 아니어서 한국인과 혼인신고를 한 뒤에도 체류 허가를 얻지 못했다. 리씨는 "외교통상부 담당자들도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는 얘기만 한다"고 답답해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리씨가 '조선'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정체성' 때문이다. 리씨는 "태어날 때부터 유지했던 '조선 국적'을 없애는 게 과거 내 삶 전부를 부정하는 것 같았고, 더구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게 분단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신접살림을 차린 두 사람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체류 허가를 얻기 위한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김씨는 "외국인도 한국인과 결혼하면 같이 살게 해주는데 왜 '조선 국적' 재일동포는 안 되는지 모르겠다"며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리씨도 "국적을 바꾸지 않고도 한국인과 결혼해 살 수 있는 선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이날 결혼식은 가족들과 지인들의 축복 속에 잘 마무리됐다. 리씨의 어머니 김경자(61)씨는 "딸이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딸이 낳은 손자들은 차별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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