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2일 저녁 서울 정동 이화여고 앞. 고등학생 여러명이 두꺼운 점퍼를 입은 채 진을 치고 있다. 학교 정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풍문여고 학생들이, 반대편에는 배화여고 학생들이 자리를 잡았다. 밤새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할 계획이다. 이른바 ‘명당’을 잡기 위해서란다.
이들이 말하는 명당이란 수능을 보는 고등학교 3학년 선배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을 말한다. ‘힘내세요.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는 메시지가 붙은 초코바를, 긴장된 몸과 마음을 녹여줄 따끈한 차 한 잔을 제대로 건네주기 위해서는 이 정도 수고로움은 오히려 즐겁다.
새벽 일찍 나오면 될 듯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터를 잘못 잡으면 아무 것도 못 한다”며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 응원을 많이 볼 수 있고 그래야 시험도 잘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고생스러움보다 선배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게 마냥 기쁘단다.
노숙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이들은 만반의 준비를 해 왔다. 기나긴 밤을 보내기 위해 PMP부터 닌텐도 등을 챙겨왔다. 게임을 하며 영화를 볼 생각이다. 아예 노트북을 쟁여온 친구도 있었다. 추위를 막기 위한 준비도 철저했다. 침낭과 이불은 필수아이템이다. 몇 겹의 레깅스를 입고 체육복까지 겹쳐 입었다. 목도리와 털양말, 덧버선도 챙겼다. 핫팩도 빼놓을 수 없는 준비물. 머리 위로는 은행잎이 떨어지는데 찬바람의 기세는 벌써 한겨울인 것만 같았다. 이날 수업이 끝난 오후 1시부터 이들은 그렇게 이화여고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풍문여고의 경우, 열흘 전부터 수능 응원 준비에 들어갔다. 80명으로 꾸려진 ‘수능 응원단’을 모아 치밀하게 준비했다. 원더걸스의 ‘노바디’에 맞춘 응원구호와 응원도구도 만들었다. 준비한 95개의 초코바도 이화여고에서 시험을 보는 선배들의 숫자에 맞춘 것이다. ‘우리도 조만간 고3’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했다.
배화여고의 응원은 즉흥성이 매력이다. 은박지로 꾸민 ‘배화’ 글씨판 외에는 특별히 준비한 게 없다. 그렇다고 이들의 응원이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정 무렵 모두 모여 응원구호를 정할 생각이다. ‘본 게임’이 시작되는 13일 오전 7시에는 20여명이 모여 구호를 외칠 계획이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지사. 60대 한 시민은 “몇몇 고등학교를 지나쳐왔는데 벌써부터 응원전이 대단하다”면서 “뜨거운 학구열과 순수한 열정으로 선배들을 응원하는 것 같다”며 신기하게 바라봤다.
2008년 11월 12일(수) 오후 9:38<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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