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날던 美비행기서 태어난 아기의 국적은?
機內출산, 세계적으로 매년 1~2차례 긴급착륙 땐 연료 거의 다 버려야
항공사·영공에 따라 국적문제 복잡
임신한 지 8개월이 된 미국인 탑승객이 인천발 뉴욕행 대한항공 비행기 내에서 출산했다. 29일 대한항공에 따르면 미국 뉴욕행 대한항공 KE085편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뒤 10시간30분이 지난 이날 새벽 4시30분(이하 모두 한국시각)께 미국인 임신부 브라운 제이슬(Jacel·39)씨가 기내에서 복통을 호소했다.
기내(機內) 출산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일이다. 1년 동안 1~2차례 기내 출산이 일어나는데 아시아나항공은 창사 이래 한번도 없었고, 대한항공은 1999년 5월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최근 10년간은 두 번밖에 없었다. 출산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항공사 입장에선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기내에 의사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을 때는 인근 공항에 긴급 착륙하거나 회항(回航)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행기는 '착륙 중량'이란 게 있다. 땅으로 내릴 때 기체가 너무 무거우면 착륙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최대한 가볍게 해야 한다. 비행기 무게 중 절반은 연료가 차지한다. 그래서 비행하느라 연료를 거의 다 쓰고 도착할 때쯤에는 자연스레 가벼워진다.
긴급 착륙할 때는 연료를 공중에 버려 기체를 가볍게 해야 한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이런 사례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항공사는 많으면 100t가량 기름을 하늘에 날려버린다. 돈으로 따지면 1억2000만원 수준이다. 때문에 항공사는 출산이 임박한 임신부, 엄밀하게는 임신 8개월 이후면 "타도 괜찮다"는 의사 진단서나 소견서 없이 태우지 않는다. 이착륙 때 소음과 진동, 상공에서의 기압변화에 따른 신체적 변화 등은 임신부에겐 몹시 해롭기 때문이다.
소견서 없이 허리띠 졸라매고 임신 8개월 미만이라고 우기면 항공사 입장에선 할 말이 없어진다. 고객 앞에서 병원에 전화 걸어 진위를 가릴 수도 없다. '원정 출산' 나서는 임신부들이 이런 편법을 가끔 쓰는데 항공사는 의심은 하지만, 적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탑승시킬 수밖에 없다.
태어난 아이 국적 문제도 복잡하다. 우리는 속인(屬人)주의라 어디서 태어나더라도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은 속지(屬地)주의여서 미국 국적 비행기라면 미국 국적을 얻을 권리가 있다.
태어난 아기 부모가 모두 한국인일 경우, 한국 항공사 비행기가 한국 하늘 위를 날고 있었으면 아이는 한국 국적이다. 비행기가 미국 항공사 것이라면 미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아예 미국 영공에 들어선 뒤 출산하면 항공기 국적에 상관없이 미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미국 항공기라고 다 미국 국적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끔 소속은 미국 항공사 비행기지만 이 비행기 등록 기준지역이 파나마나 멕시코 등 다른 나라일 경우가 있기 때문. 이럴 땐 미국 국적을 얻을 수 없다. 좌석공유, 이른바 '코드셰어(Code-Share)'도 문제가 된다. 좌석공유란 항공사들이 서로 제휴해 한 항공편 좌석을 나눠 파는 것인데, 비행기를 각각 번갈아 가며 띄우기 때문에 복잡해진다.
예컨대 로스앤젤레스행 항공편을 대한항공, 델타항공, 컨티넨탈항공이 코드셰어로 운영할 때, 이 비행기가 대한항공 소유면 한국 국적, 델타나 컨티넨탈 소유면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셈이다. 대한항공을 통해 표를 샀다 하더라도 알고 보면 미국 항공사 소유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왕왕 있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나오다 출산했다면 이는 '기내 출산'으로 치지 않고 해당 공항 국가 국내법에 따라 국적을 결정한다. 출산했을 때 시점에서 한국 하늘인지 미국 하늘인지는 '항공일지(Logbook)'로 판단한다. 이 '항공일지'는 기장과 부기장이 시간대별 비행 기록을 적는 것인데 '캡틴 리포트(Captain Report)'라고도 부른다. 여기에 나오는 비행 위치에 따라 어느 국가 영공인지를 보고 신생아 국적을 결정하게 된다.
이위재 기자 2006년 6월 6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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