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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한의사 식물원 개원

전동키호테 2006. 11. 18. 08:53

[박종인기자의 인물기행] 괴짜 한의사

“고향 앞동산 재현하고파” 50억원 들여 식물원 개원
8수 끝에 한의대 입학 비염약으로 떼돈 벌고도 전세 사는 이환용 원장


가끔 앞동산에 태양이 솟으면 “멋지다”고 감탄했지만, 아이는 가난했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면 아이는 지게를 졌다. 초등학교 내내 그랬다. 퇴비에 볏단에, 땔감으로 짐을 바꿔가며 수십 리씩 지고 날랐는데, “사는 게 원래 그런 줄 알았다”고 사내가 털어놓는다. 뒤늦게 한의사가 되려고 공부를 해 8수 만에 한의대에 합격했다. 그리고 한의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떼돈을 벌게 되었다. 그러자 “태양이 솟던 고향 앞동산이 생각나더라”고 했다. 그래서 그 떼돈을 몽땅 퍼부어 18만 평짜리 식물원을 만들었다. 올해 개원한 경기도 포천 명성산 평강식물원. 사내 이름은 이환용(李桓容·47), 서울 평강한의원 원장이다.

이씨의 고향은 충남 서산시 운산면이다. “아버지가 제가 세 살 때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께서 품앗이를 하면서 저희를 키우셨죠.” 그래도 형과 누나 덕택에 서울로 유학해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고3 시절,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쪽 다리가 6개월 동안 마비됐었는데, 지압원에서 침 맞고 나았어요. 내가 가난하니까 지압원에서 아예 침을 가르쳐 주면서 직접 침을 놓으래요.”

▲ 가난을 이겨내고 8수 끝에 한의대에 들어가 한의학 박사가 된 이환용씨. 큰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몽땅 퍼부어 고향 앞동산을 닮은 식물원을 만들었다. 포천 평강식물원이다. 겨울 햇살 속에 억새가 빛난다. /박종인기자
그래서 한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내신은 꼴찌에 문과 출신이라 점수를 더 깎아 먹었다. 재수, 삼수, 사수…. 8수 만에 동국대 한의대에 입학했다. 85학번이다. 이씨는 서울 노량진에 있는 독서실에서 살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침을 놔 주면서 밥을 먹었다. 별명이 ‘노량진 학생의사’였다.

그리고 서울 강남에 한의원을 열었다. “노량진 시절에 자주 찾아 뵙던 한복집 할머니께서 조그만 나무껍질을 내밀면서 이래요. ‘이게 코나무 껍질인데, 달여 먹으면 비염이 낫는대. 이거 좀 구해줘’라고요.” 나무 이름은 참느릅나무였다. 어렵사리 구해줬더니 보름 뒤 할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이제 밥 타는 냄새도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의사가 된 후 이씨는 이러저러하게 약을 지어 자기도 먹어 보고 아들들에게도 먹이며 7년을 보낸 끝에 비염 치료약을 개발했다. 이름은 청비환.

소문이 나면서 계산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 “소득신고를 했더니 세무서에서 ‘이렇게 많이 신고하면 세무조사 들어갈 수 있다’고 전화가 왔어요. 진짜로 국세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성실납세자 상을 주겠답니다.” 1996년이었다. 올 초에는 이 약재를 주제로 경희대에서 본초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게를 지던 초등학생, 내신 꼴찌 8수생의 운명이 그리 바뀌었다.

▲ 평강식물원 잔디광장 전경.
그런데 지금 이씨는 전셋집에 산다. 평생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두 아들을 외국에 보내며 “너희한테 들어갈 학비만큼 다른 아이들을 돕겠다”고 해마다 30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는다. 그리고 개발 와중에 사라져버린 고향 앞동산을 재현하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식물원 건립이다. 아내를 유럽으로 식물관 견학 보내고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 공부까지 시켜가며 준비를 했다. 땅은 포천에 있는 골짜기 ‘우물목’을 골랐다.

8년 공사 끝에 지난여름 평강식물원 www.peacelandkorea.com)이 탄생했다. 들어간 돈? 이씨는 입을 다물지만, 식물원 직원은 “이거저거 합치면 한 50억원은 될 것”이라고 했다. 떼돈을 번 한의사가 전셋집을 못 벗어나는 이유다.

식물원엔 너른 잔디광장과 고층습지원, 백두산과 한라산 같은 고산지대 들꽃이 있는 암석원 등 12개 정원이 있다. 한방을 응용한 요리를 내는 식당도 있다. 산림청으로부터 “나라가 할 일을 개인이 해줬다”며 감사패도 받았고, 지난 5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자연과 벗하며 살 방법을 묻기 위해’ 이곳을 찾기도 했다. 열매가 썩어야 그 씨가 퍼져 몇십 배 결실이 나는 거죠. 그 이치를 깨닫게 할 교육장을 만들고 싶어요.” 이씨는 “돈 퍼부은 거, 하나도 안 아깝다”고 했다.

박종인기자 sen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