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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5년 '5가지 코드'

전동키호테 2006. 9. 11. 08:18
[중앙일보 이은주] 9.11 테러가 터진 지 벌써 5년이다. 당시 무너진 미국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공격으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던 곳)는 지금 재건과 기념시설 건립을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살육과 통곡으로 얼룩진 '혼돈의 시대'에 갇혀 있다. 미국이 테러를 뿌리 뽑겠다며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전쟁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고 무고한 생명만 수없이 스러져 갈 뿐이다. 피가 피를 부르는 분쟁이 이어지면서 평화와 안전을 위한다는 '테러와의 전쟁'이 세상을 오히려 더욱 위험하게 한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그렇다면 9.11 이후 세계는 과연 어떻게, 얼마나 달라졌는가. 권위 있는 미 외교전문잡지 포린폴리시의 분석을 토대로 9.11 이후의 세계 정세 변화를 조명해 본다.

① 그 뒤 세상이 바뀌었나

아니다. 국제무역과 세계화의 큰 흐름까지 바꾸진 않았다. 수십 년 묵은 문제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카슈미르를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은 풀릴 기미가 없다. 클린턴 행정부 이래 미국과 일본을 대하는 북한의 입장도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다. 중동도 변화보다 그대로인 것이 더 많다. 9.11은 시리아와 레바논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이나 호메이니 혁명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중동산 석유에 대한 세계의 의존은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의 고집스러운 정권도 여전하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계속 총을 들고 있다. 9.11의 극적인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국제 정책의 틀을 이루고 있는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② 알카에다의 승리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 이후 발생한 인도네시아 발리, 스페인 마드리드, 그리고 영국 런던의 테러는 알카에다가 직접 한 게 아니다. 사실 알카에다 지도부는 열차 폭파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심리적.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초대형 테러를 선호한다. 9.11 테러범들은 미 안보에 뚫린 구멍을 잘 이용했다. 미 전문가들은 비행기를 이용한 자살 테러 공격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각국이 경계를 강화한 지금 이런 테러를 다시 벌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③ 문명의 충돌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정책 충돌이었다. 무슬림(이슬람교도)이 생활 방식 때문에 서방을 증오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슬림의 90% 이상이 민주주의를 정부의 최고 형태로 생각하고 있다. 미 여론조사기관인 퓨(Pew) 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 터키와 모로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무슬림이 미국으로 이민간다면 생활수준이 훨씬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무슬림은 다만 할리우드식 윤리관을 거부할 뿐이다. 이는 미 보수주의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왜 정책의 충돌인가. 오사마 빈 라덴은 무슬림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에 (1991년 걸프전 이후) 미군이 주둔했던 것과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을 점령한 것에 분노를 표시한 적이 있다. 무슬림은 이라크가 미국 개입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자치정부 수립과 민족의 독립이다. 그들에게 서방이 무슬림의 일에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민주주의 이상을 저버리는 일이다.

④ '테러와의 전쟁'은 끝이 없나

미국의 계획상으론 그렇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분명히 '전쟁 대통령'(war president)의 특권을 즐기고 있다.

부시는 전쟁의 목표를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알카에다 등에 대한 '테러와의 전쟁'은 수십 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 미국민들은 그런 고비용을 참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미국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없는 이상 현행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정책을 중단하라는 정부를 거세게 압박할 것이다. 국가 예산이 제한돼 있는 가운데 미국민들은 테러와의 전쟁과 보건 정책 중 택일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테러와의 전쟁이 끝날 것이다.

⑤ 미 외교정책 완전히 달라졌나

아니다. 미국의 정책은 거의 바뀐 게 없다. 오히려 9.11 테러 이후 미 정치 엘리트들은 거칠 게 없어졌다. 그들이 더욱 공격적인 정책을 펴도록 만든 것이다. 부시 정권은 이미 9.11 전 사담 후세인 정권 전복을 계획했다. 9.11이 아니었다면 아마 비밀작전이나 쿠데타를 지원했을 것이다.

9.11은 미국의 정책을 거의 변화시키지 못했다. 미국의 옛날 친구들은 여전히 친구이고 과거의 적들은 여전히 적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변화는 예외적이다.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겠다는 미국의 계획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것 외에는 별 성과가 없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