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교회_主_성광

교회의 선택기준과 세워짐에 대하여..

전동키호테 2006. 7. 6. 08:28

 

교회의 선택기준과 세워짐에 대하여

                                                                                              - 정원 목사


 

나는 많은 성도들과 교회의 선택의 기준에 대한 상담을 하였었습니다.

나의 책을 읽고 교회이전을 놓고 고민하고 있던 성도들이 조언을 구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목회를 하고 있을 때에는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또한 내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에 오고싶다는 분들을 말리느라고

고생해야 했었습니다. 아직도 내가 목회를 하고 있는 줄 알고 근처에 와서 교회를

찾고 헤메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너무 죄송할 뿐이지요...


이제 내가 목회를 내려놓았고 주님께서 나에게 목회를 더 시키실 의향이 없으신 것

같기 때문에 나는 이제 조금 자유롭게 이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교회를 선택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여러 가지 이유로 선택합니다.

거리가 가깝다, 교회가 크고 건물이 멋지다, 프로그램이 많다, 주차시설이 좋다,

사람들이 많아서 교제나 사업에 유리하다, 말씀이 좋다, 친한 분들이 많다...

등 다양합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많은 선택을 합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결혼은 누구랑 할까?

교회는 어디로 가지? 등등을 선택합니다.


점심에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40일 금식기도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요.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주님... 제발 응답해주세요... 뭘 먹어야 해요? 엉엉...

순두부입니까?  떡복이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청수냉면에 밥말아 먹을까요?

흑흑흑... 제발..."

만약 그런다면 웃기겠지요? 그건 그냥 먹고 싶은 것 먹으면 됩니다.

그건 코메디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별것 아닌 것은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응답이 없으면 죽네, 사네...

하나님이 자기를 미워하시네..

하면서 정작 기도해야할 것은 전혀 안합니다. 눈이 열려야겠지요...


결혼문제는 그것보다 좀 더 중요하겠지요.

어떤 사람이 결혼했습니다.

누가 묻습니다. "왜 결혼하셨어요?"

그가 대답합니다.

"아, 그녀가 집이 가까와서요. 집이 멀면 데이트하는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래서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데 사는 여자랑 결혼했어요."

혹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 음..그녀의 집이 참 멋있게 생겼어요... 인테리어가 훌륭했어요...

그래서 바로 결정했지요..."

물론 그것도 코메디지요? 결혼은 식사문제보다는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선택은요?

그것은 사람의 인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입니다.

배우자의 선택과 직업의 선택과 진학할 학교의 선택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과 영원과 모든 것에 막대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것은 영원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집이 가까와서, 건물이 예쁘게 생겨서... 이런 정도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다른 많은 요인이 있고 예외가 될 때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사역자의 수준과 성숙도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사명을 받은 이들은 주님께로부터 <너는 이 곳을 지키고 중보하라.

사역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성숙하고 영적 전쟁에 대하여 아는 분들에게 주님께서 그러한 명령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이며 일반적으로는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양육을 받아야 하며 자녀가 부모를 키우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사역자의 수준은 어떠합니까?

그는 주님의 임재를 알고 있습니까?

그는 주님께 대한 뜨거움, 목마름,추구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는 죄에서의 해방과 승리의 삶이 무엇인지 아는지요?

그는 영적 전쟁에 대하여 아는가요?

그는 성도의 영적 상태와 수준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성도에게 어떠한 훈련과 연단이 있을 것인지 분별하고 인도할 수 있습니까?

그의 삶의 열매는 어떻습니까?

그는 자기 부인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그의 가정은 천국입니까?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잘 섬기고 돌보고 있습니까?

그러한 것이 분별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10년, 20년 인생에서 각종 의미없는 고생을 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며 자신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자신들의 영의 수준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무슨 훈련을 받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이 처리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부도, 이혼, 대인관계의 재앙... 각종 고통들을 겪으며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주님의 의도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의 이유...

영혼의 성장에 대하여 배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수십년의 세월을 낭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는 과학자이며 박사이며 지혜로운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세상지혜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하여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야 합니다.

앞서서 길을 걸어간 영성의 선배로부터 하나님 체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에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면 사람들은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여기저기

얻어먹으려 돌아다니게 되겠지요... 그리고 사역자들은 자기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습니다.


결국 사역자들은 주님을 대적하는 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고

혈안이 되듯, 주님의 실상을 경험하지 못한 사역자들은 나중에는 자신의 교회, 단체,

조직을 세우기 위하여 추하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역자든 성도든, 영이 자라지 않아서 영의 세계와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면 얼마든지

사단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으며 이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선량하고 착합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청중의 확보와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열정적이며 최선을 다합니다. 문제는 주님의 실제입니다.

많은 아름다운 사역자들이 주님의 실상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은 너무 어리고 사람의 냄새를 많이 풍깁니다. 그들의 소명과 사명은

확실하겠지만 그들의 영은 좀 더 자라야 합니다. 그들의 열정과 상관없이 그들은

성도들의 속에 있는 아담의 요소를 분별하고, 둘째 아담으로 세우기 위한

생명적인 사역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입니다.

자연히 이런 곳에는 시기와 질투와 아집과 무관심, 냉냉함, 형식주의...

각종 나쁜 기운과 열매들이 생산되며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교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들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의 시작은 사역자의 수준입니다.


그들은 아름답고 착합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돕기 원합니다.

그들은 바른 교회를 세우고 싶어합니다.

문제는 그들의 눈이 열려있지 않으며 주님의 실상을 모르며 성도들의 영을

보지 못하며 자신의 상태도 알지 못하고 무엇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기 저기를 다니면서 이것 저것을 배우고 그 배운 것들을

적용하기도 하지만 곧 다시 방법을 바꾸게 되고 본질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여

방황하게 됩니다. 영이 눈을 뜨지 않으면 그는 시대의 유행을 따라 유명하거나

눈에 띄게 나타나는 교회의 운동이나 사역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목표로 삼고

따라가기 때문에 그는 방황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따라가기 때문에 그것이 바른 사역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영이 어느 정도 자라지 않으면 그는 바른 것들을 분별할 수 없으며 그의 의도의

순수함과 상관없이 그는 사역의 도구로 쓰여지기 어렵습니다.

그는 주님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일반적으로 사역자의 수준이상으로 성장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역자가 영적으로 애굽의 수준에 있는데 성도들이 가나안에 있을수는 없습니다.

애굽은 아직 물질적인 것, 환경이 크게 보이고 거기에 지배를 받는 수준의

단계입니다. 여기에 있는 분들에게 주님의 깊은 세계를 100만번 이야기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들의  관심과 목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들은 이해는 할지 몰라도 그들의 성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단계를 벗어나야 알 수있고 보이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배워나갑니다. 사랑, 순종, 예의,

성실함, 인내... 등 귀중한 가치를 배우면서 자랍니다. 만일 부모에게 배우지 못하면

자신의 삶에서 많은 고통을 지불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도들이 고통을 겪는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영적인 수준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어느 정도 앞서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크게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각 교회는 그 교회가 속해있는 수준의 영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영계로부터 비슷한 영적 파동, 비슷한 영적 에너지를 같이 수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고 그것은 그들이 영원히 살게되는 장소와 아주 비슷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영에 파격적인 변화가 생겨서 성장하거나 떨어져서

그 영계의 파장과 일치하지 않게 되면 그는 현실의 교회에서도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사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고통을 많이 겪고 있는 사람은 그가 소속한 영계와

교회가 속해있는 영계의 파장이 맞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때는 아주 은혜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별로 시큰둥하게 되는 경우도 대체로

그의 영계의 위치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의 영적 근원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제도를 바꾸려고 애를 씁니다.

목사 정년제를 도입하자, 장로정년제... 참으로 아름다운 휴머니스트들이지만

그런 것은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영이 중요하며 제도가 바뀌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도는 악을 누르고 있는 것이며 영의 변화는 내면으로부터 성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 개혁보다 100만배는 중요한 것은 사역자의 수준입니다.

수준의 향상입니다.


사역자의 영이 주님을 만나고 알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이상적인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이 아니고 바른 방향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바른 방향이라는 것은 교회는 주님을 추구하고 주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역자와 성도들의 영이 자라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들은 대부분 사역을 참 많이 강조합니다. 아니, 한국 교회뿐이 아니겠지요.

영이 열리지 않은 세계의 모든 교회는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사역은 교회의 중요한 존재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역의 기초가 되는 것은 영의 성장입니다.

주님의 생명을 모르며 주님의 생명의 통로가 되지 않는 사람은 사역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바퀴벌레가 어떻게 사람을 낳겠습니까?

일을 하여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본성이 바뀌어 벌레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이것은 충분히 자랄 때까지 모든 사역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성장과 주님의 기름부으심, 그 분량 속에서 일하는 것에 익숙한 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선교사 가정이 아내에 대한 지나친 남편의 구타로 결국 귀국한 경우를

보았습니다. 또한 적지 않은 목회자의 가정이 지옥과도 같이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사역할 때가 아닙니다. 그들은 치유와 안식이 필요하며 영이 좀 더

자라야 합니다. 유감이지만 그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가정이 천국이 아니라면 그들은 성도들을 천국의 가정으로 이끌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아내와 남편을 섬기고 자식을 사랑하며 순종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아무 것도 가르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들은 주님을 개념으로 알고 있을 뿐 실제의 주님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제의 주님을 경험하게 되면 사랑하게 되며 자연히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목회자의 아내나 목회자들의 사이트에 들어가면 여러가지 비참한 상황들에 대한

호소가 많이 올라옵니다. 부사역자가 담임사역자의 비리를 많이 알게 되자 짤리지

않으려면 조심하라고 협박을 당하는 경우.. 성적 불륜, 가정불화, 물질적인 범죄...

어떤 독자는 교회에서 재정을 맡고 있는 장로님이신데 목회자의 사기에 가까운

물질관리에 심각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스러운 주님의 사람들이며 교회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라야 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좀 더 경험해야 합니다.

그들은 성도들에게 주님의 임재와 사랑을 공급하는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품에 안겨서 그 아름다우심 속에서 자라나며 죄에서의 해방과

자아에서의 해방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드러난 죄는 별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문제가 없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와 주님의 관계, 영의 수준...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영이 자라지 않은 분의 윤리적 선함은 악행보다

그리 나을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선이나 악이나 생명이 아니며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이 어린 분들이 열심히 자기를 눌러서 죄를 억제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넉넉히 승리의 삶을 사는 영의 수준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건물이 아름다우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것이 성공적인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으면 성공적인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것은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일 뿐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는 통하지만 영원한 곳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이 병들어 가고 사역자들은 지쳐있습니다.

그들은 지치고 피곤하고 고통스럽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많은 세미나들이 행해지고 사역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리로 몰려듭니다.


그러나 어설픈 교회의 외적 성장의 방법론을 제시할 뿐 주님과의 연합과 관계회복과

사역자의 영을 성장시키고 이끄는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는 곳은 많지 않은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주님의 실상을 접하고 그분의 영광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결코 문제는 끝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열매를 통해서만 알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모함과 그리움의 분량,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주님의 마음의 인식,

주님의 뜻에 대한 순복과 사모함, 주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 자기를 잃어버린 교제와

공동체에 대한 사랑, 삶 속에 나타나는 순결함과 온유, 겸손, 아름다움...

그러한 열매로 참된 부흥에 대하여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진정 아름다운 교회들이 이 땅에 많이 세워지기를 소원하고 또 소원합니다.

지금의 수준은 너무나 가슴이 아플 정도로 주님의 향기를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서로 분리되고 찢겨져 있으며 자기의 조직에 대한 충성만을

가르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들의 찢김과 경쟁을 보면서 나는 주님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이 땅의 교회와 사역자들을 생각하면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찢어지며

눈물이 흐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이며 주님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느 자매의 눈물어린 말을 기억합니다.

"목사님... 교회에 가는 게 지옥가는 것 같이 괴로와요... 하지만 저는 죽어도

우리 목사님을 배반할 수 없어요..." 오늘날 인간적인 의리, 휴머니즘...

주님의 마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종이 아니며 마지막 날에 우리를 심판하실 분은

사역자나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신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입니다.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남편이라고 해도 아내가 신앙에 빠진다고 싫어합니다.

그것은 그가 주님보다 자신을 더 중심에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믿는 부모들이 자녀들이 부모보다 신앙에 빠진다고 화를 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도 자신을 주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내에게 항상 이야기합니다. "여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아요.

주님께 미치고 빠져야 합니다. 밥도 안하고 빨래가 밀리고 집안꼴이

아수라장이 되어도 괜찮으니 주님께만 빠져요..."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하지요.

"주님은 아빠보다 너희를 100만배도 더 사랑하신단다...

너희들도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오직 주님을 사랑해야 한단다..."

물론 그 말은 어폐가 있지요. 주님을 사랑하면 부모와 배우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집안 일이나 맡은 일에 충성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본질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요.


우리의 영은 자라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더 주님을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나는 성도들이 주님보다 사역자를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사역자가 저주를 하면 어떻하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역자가 성도들을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며 사역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성도든 사역자든 심령이 약한 사람은 사람들의 종이 되며 그들은 주님을 따를 수도

없으며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할바에는 사역을 그만두고 노가다를 하면서 전도를 하는 것이

주님나라의 확장에 도움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영이 눌려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주님께 이끌고 양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선택... 그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변화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성장하기 원한다면,

주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지도자와 인도자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조금 더 앞서서 우리에게 영적인 길,

주님의 길을 제시해 줄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단언하건대 이것은 우리의 인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부디 제가 그런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아님을 이해해주십시오.

저는 정말 자신이 없는 사람이며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귀중한 원리를 함께 나누는 것뿐입니다.


나는 순수하고 알려져있지 않은 아름다운 사역자들이 이 땅에 많이 숨겨져 있고

존재하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주님의 아름다운 교회들을 세워나가려

합니다. 사람의 왕국이 아닌 주님의 아름다운 모임을 세워나가려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참 기대가 됩니다. 주님을 먹고 마시며 그분을 누리고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원하는 젊은 종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성의 유명한 교회에 그다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아닌 기존의 강력한 영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으로 젊고 신선한 주님의 사람들,그러한 분들을 통하여 이 땅에 아름답고

주님을 사모하는 교회가 많이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부족하지만 오직 주님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며 그분만을 사모해가는 사역자...

외적 성공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맛보며 나누기를 원하는 사역자...

그리고 주님을 그리워하고 더 자라기를 원하며 자기를 깨뜨리고 영의

더 깊고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아름다운 성도들...

그러한 만남과 모임들... 교회들이 많이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초대 교회와 같이 서로의 마음에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하며 서로 보고있기만 해도

행복하고 각자의 삶속에 사랑으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나눔으로써

더욱 행복해지는 만남들... 그러한 교회들이 많이 많이 이 땅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교회의 선택, 자신이 삶을 나누고 교제를 나눌 성도들의 선택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과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니 그저 발길이 닿는대로 가고, 집에서 가깝다고 가고, 아는 사람이 있다고 가고,

목사님과 가깝다고 가고... 그러한 것이 얼마나 자신의 영혼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겠습니까! 자신의 영원을, 영혼의 성숙을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를

그저 한끼의 식사 메뉴를 결정하듯이 결정하는 것이 정말 얼마나

처구니 없는 일일까요...


눈이 열리지 않는 어리석은 영혼이 여성을 선택할 때 외모를 중하게여기며

자기 눈에 좋은 대로 결정합니다. 남성을 선택할 때 학벌과 자기 취향과 재력을

중시해서 인생과 영원을 망칩니다. 그러나 여성의 외모보다 100만배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여성의 영적 성숙도이며 주님을 사모하는 분량입니다.

남성의 재력이나 외적 매력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 성숙도이며 주님께 사로잡힌

정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주님께 사로잡힌 여성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성은 주님께 빠진 사람입니다.


어떤 열심히 기도하는 자매가 그녀가 결혼하려는 불신자 남자친구를 이야기하면서

너무 리더쉽이 있고 멋지다고 이야기하길래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시체가 멋지고 리더쉽이 있으면 뭐하지?"


낭만과 이상과 고생 안하는 편안한 삶을 보장할 것 같은 돈많은 사람과의 만남,

자기를 사랑해주고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몇억배나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고 사모하는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러한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영혼은 이 땅에서 너무도 낮고

비참한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결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교회의 선택이며 영적 교제의

선택입니다. 육신의 취향을 따라 만난 만남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관계로 전락해서 짧은 인생에서 서로 억압하고 괴롭히다가

영원히 헤어지지만 주안에서 같은 주님을 추구하는 영적 교통과 만남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나는 주님께 열심있는 자신의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자신은

대충 교회에 나가고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없는 형제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형제. 아내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래서 5-60년 같이 살고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싫다면, 아내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곳에서 영원히 헤어져야 해요..."


부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가십시오. 정말 멋진 교회와 만남을 이루어 가십시오.

만약 당신이 아직 교회를 정하지 못한 분이라면, 교회의 이전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분이라면... 외적으로 부족해도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나아가기를 원하며

그분께 사로잡히기를 원하는 아름다운 종들을 찾으십시오.


당신의 심령 속에 주님에 대한 연모의 불을 일으키는 종을 찾으십시오.

진정 원할 때 주님은 그러한 분들과의 만남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인생의 시시한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하지 말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하여

목숨을 거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통하여 이 땅에 그분의 원하시는 아름답고 귀한 교회들을

세워나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 주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교회, 모임들이 많이 세워지도록.. 

오, 주님...  임하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