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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공화국.. 새로운 기업 마케팅

전동키호테 2006. 2. 9. 13:36

 

'인터넷 입소문'에 매출 1827억→1조7천억

['댓글' 공화국] [上] 새로운 기업 마케팅

댓글 활성화 5년만에 온라인 쇼핑몰업체 급성장 옷도 아파트도 이젠 구매후기 안보고 사면 찜찜


하루 1000만개 이상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댓글은 이미 최대 콘텐츠다. 비방성 댓글(악플)이 최근 검찰의 사법 처리 대상이 됐지만 대통령부터 미국 대사까지 댓글로 정치하고 외교하는 세상이다. 소비 투자 마케팅이 댓글로 이뤄지고, 고전하던 기업이 댓글 덕에 스타로 부상하곤 한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유력 콘텐츠로 부상한 댓글의 세계를 살펴본다.

댓글 활성화 5년만에 온라인 쇼핑몰업체 급성장

옷도 아파트도 이젠 구매후기 안보고 사면 찜찜

지난 7일 밤 9시30분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주택. 올해 42세인 경력 17년의 A 이사업체 소속 이태완 팀장은 컴퓨터 앞에 앉아 회사 홈페이지의 댓글을 검색했다. 바로 며칠 전 이사한 고객들이 어떻게 댓글을 올렸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모두 80여개 팀이 등록돼 있다. 소비자들은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팀을 직접 고른다. 고객들이 남기고 간 댓글은 팀 간 우열을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직장인 최민수(30·서울 도봉동)씨는 얼마 전 ‘이사 후 맨발로 돌아다녀도 될 만큼 깨끗이 청소해줘서 고맙다’는 다른 고객이 남긴 댓글을 보고 이 팀장과 계약을 했다. 이 팀장은 “옛날엔 막말로 힘 한 번 쓰고 나면 끝이었지만 요즘엔 고객들이 달아주는 댓글에 따라 돈을 더 벌기도 하고, 잘못하면 결정적으로 발목이 잡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댓글이 개인의 소비와 투자에 대한 참고 자료를 넘어 소비자와 기업,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역학(力學)관계를 변화시키는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1조7000억원어치를 팔아 국내 최대의 인터넷 쇼핑몰로 자리잡은 옥션(www.auction.co.kr). 5년 전 이 회사의 판매액은 1827억원에 불과했다. 거래되는 상품도 80~90%가 중소기업 또는 개인 사업자의 제품이라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

하지만 ‘옥션 토크’라는 인터넷 댓글 활성화 코너 이용자들이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옥션측은 “다른 구매 경험자들의 날카로운 비평이 업체 혹은 제품별로 수백~수천개씩 축적되면서 이를 통해 품질이 검증됐다”고 말했다. 옥션 관계자는 “댓글 덕택에 품질과 고객서비스에 철저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이길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댓글은 온라인 거래가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상품도 인터넷 인기 품목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대학원생 최지은(26·서울 성동구 왕십리동)씨는 얼마 전 인터넷 구입을 고려 중인 울 소재의 베이지색 스커트 사진을 학교 게시판에 올렸다. 또래 여학생들이 댓글 5~6개를 주르르 남겼다.

‘키가 170cm 정도인데 치마가 무릎 위로 2~3cm 정도 올라와요’ ‘66사이즈는 잘 맞는데 이건 좀 타이트하다’ 등 사이즈를 가늠할 수 있는 댓글 덕에 그는 30분 만에 구매 결정을 내렸다. 최씨처럼 댓글을 보고 구입 여부를 결정하는 쇼핑객이 늘면서 의류 유통시장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GS홈쇼핑 의류 매출의 경우 케이블TV 판매 비중은 2년 전에 비해 10% 넘게 줄어든 반면, 인터넷 판매 비중은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성공적인 ‘댓글 마케팅’은 기업에 엄청난 홍보효과도 안겨 주고 있다. 해충(害蟲) 방지 서비스업체인 세스코는 이젠 일반인들에게 아주 ‘친근하고 즐거운’ 기업 브랜드로 각인돼 있다.

‘나는 바퀴벌레입니다. 오는 12일 당신네 회사로 쳐들어가겠습니다.’(네티즌)

‘안녕하십니까. 세스코입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날은 일요일이라 회사 휴무이오니, 월요일에 방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세스코 관계자)

5년 전부터 이런 식으로 네티즌이 장난 삼아 올린 글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해온 덕에 세스코는 인터넷에서 최고의 인기 기업이 됐다. 이런 글들이 인터넷 유머 코너 등을 통해 삽시간에 수백만명의 네티즌들에게 퍼져 나갔고, 자발적 모임인 ‘세스코 팬클럽’(회원 5267명)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댓글이 이런 경제적인 힘을 갖게 되면서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각종 부동산 포털 사이트에서 입지 여건·개발 가능성 등을 현실보다 높게 부풀리거나 다른 아파트 가치를 이유 없이 깎아 내리는 비방성 댓글이 발견되는 게 부작용의 대표적 사례다. 대부분 자신이 갖고 있는 아파트 가격을 올릴 목적으로 이뤄지는 일들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아르바이트생들을 동원해 자사 제품이 좋다며 거짓 댓글을 올려대기도 한다.

서울대 경영학과 김상훈(金祥薰) 교수는 “소비자들, 특히 국내 소비자들은 구매·투자에 있어 다른 사람의 체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이 강하다”며 “예전 아날로그시대 ‘워드 오브 마우스(word of mouth·口傳)’의 역할과 힘을 요즘엔 댓글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워드 오브 마우스(word of mouse)’가 대체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탁상훈기자 & 정아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