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수상소감에 모두가 울다
배우 52년만에 첫 연기상 탄 김지영씨
“전쟁때 시체 깔린 밤톨 빼내먹기도… 그런게 다 연기에
묻어나는 거예요”
“연기도 조연, 시상 때도 늘 들러리 그놈의 賞, 원망 참 많이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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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받을 줄 알았으면 멋진 드레스 입고 오는 건데…. 연기 생활 52년 동안 나에게는 상(賞)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가슴이 드러나는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늘씬한 후배들 틈에서, 손목까지 덮이는 잿빛 차림의 그녀가 수줍게 수상 소감을 내뱉자, 무대는 일순간 숙연해졌고 시청자들 가슴도 저릿해졌다. ‘2005 KBS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 장밋빛 인생’의 ‘미스 봉’ 역할로 여우 조연상을 탄 배우 김지영(69)씨. 새해가 밝았지만, 그녀의 시계는 시상식이 열린 작년 12월 31일에 멈춰 있는 듯했다. 김씨의 들뜬 목소리엔 여전히 흥분의 잔상이 맴돌고 있었다. “그놈의 상, 원망 참 많이 했어요.” 연기력으로는 이미 정평 나있는 김씨지만, 유난히 상복이 없었다. “연기도 ‘조연’인데, 시상식에도 번번이 들러리 ‘조연’이었어요. 대상 후보 올라갔다 미끄러진 적도 있고, 수상자로 선정됐다기에 가보니까 후보에 올라가 있지도 않았던 배우가 가로채 버리고….” 한 방송사 국장은 “젊은 애들 포섭해야 하니까 ‘김 여사’가 이번 한 번만 이해해 달라”고 허탈해하는 그녀를 달랜 적도 있단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후보에 올랐단 얘기는 들었지만, 기대는 애초에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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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의 ‘한풀이’를 가능케 해준 배역 ‘미스 봉’에 대한 고마움은 애착을 넘어선다. “‘몸뻬’ 입고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억척 아줌마 역할만 진탕 해 왔는데 요란한 치장에, ‘각선미’ 자랑까지, 이 나이에 요런 캐릭터가 어디 쉬워요.” 대본 받자마자 남대문 시장, 수입 상가 뒷골목까지 싹싹 뒤지면서 샛노란 스타킹, 핫핑크 블라우스 등 한 번도 휘감아보지 못했던 소품을 준비했다.
“‘미스 봉’이 철없어 보이지만 한평생 첩으로 불쌍하게 산 사람이에요. 남의 것 욕심내지 않고, 사랑도 나눌 줄 알아요. ‘장밋빛 인생’이 어디 따로 있나요. 제 눈에는 미스 봉이야말로, 장밋빛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보여요. 나도 그런 태도를 배우려고 했다니까.”
코믹 캐릭터로 급선회했지만, 감칠맛 나는 연기는 그대로였다. “경험만한 연기는 없어요. 흉내는 아무리 잘 내도 어색하기 마련입니다. 저요? 전쟁 때 시체에 깔린 밤톨 빼내 먹고, 나무껍질 긁어 먹었어요. 그런 게 다 연기에 묻어나는 거예요.”
김씨의 단골 배역 ‘과부’도 같은 선상에 있다. 음악을 했던 김씨의 남편은 폐병에 걸려 고생하다 20여년 전 저 세상으로 갔다. 그녀가 연기 활동을 접지 않았던 건 연기에 대한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라도 연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김씨는 ‘걸어다니는 사투리 사전’이다. 그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드라마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하면 토박이들조차 ‘토종’으로 속을 정도. 미스 봉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였다. “사투리는 제게 생활입니다. 지방 촬영 갈 때마다 시장을 꼭 둘러봅니다. 사람들 얘기하는 것 듣고 머릿속에 저장해 두죠. 그렇게 머릿속에 입력된 사투리 테이프만 수만 개는 될 겁니다.” 1954년 ‘시집가기 싫어’ 극단 생활을 시작했던 이 노(老) 배우는 이제 ‘연기 관두기 싫어’ 대본에 파묻혀 산다. “이제 제게 주어진 세월이 많지 않습니다. 남은 세월 열심히 연기하고 가려는 생각, 오직 그 마음밖에 없어요.” (김미리기자 mir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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