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_경제_建_문화

CEO 쟁탈전이 시작되고 있다.

전동키호테 2006. 1. 18. 10:12

최근 국내 기업의 임원 인사 결과를 보면, CEO 스카우트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어 우리나라도 곧 CEO 시장이 개막될 것으로 보인다. CEO 시장의 활성화 배경과 CEO 영입의 성공 포인트를 살펴 보았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은 매년 국가 경쟁력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노동 시장에서 유능한 경영인의 확보 용이성’이다. 이러한 지표의 활용 배경에는 한 명의 우수한 경영인을 양성하는 데에는 약 30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뛰어난 경영인은 어느 한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사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또한, 기업간에 경영인과 같은 고급 인력의 이동이 자유롭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 시장이 건전하고 활성화되어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의 CEO 시장  
IMD의 국가 경쟁력 보고서(2004년)에 의하면, ‘경영인 확보의 용이성’ 면에서 미국이 2001년부터 3년 연속 명실상부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 유능한 경영인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CEO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미국에서 CEO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사실을 가장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 경영진 전문헤드헌팅 업체들의 매출 변화 추세이다. 경영진 전문 헤드헌팅 협회인 AESC(Association of Executive Search Consultant)의 조사(2005년)에 따르면, 미국의 경영진 헤드헌팅 시장은 약 74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하였다고 한다. 이들 업체 중, 가장 규모가 큰 콘페리 인터내셔날社의 경우, CEO 헤드헌팅 매출이 2005년 약 3억 9천만 달러로 전년 대비 약 29%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헤드헌팅 업체의 성장은 미국 기업들의 CEO 선발 방식의 변화와도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뉴스위크誌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CEO 선발에 있어서 내부 육성을 통한 선발보다는 외부 영입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내부 승진을 중시하는 다우케미컬社도 ‘외부에서 경영진을 영입한다고 해서, 다우케미컬의 주주들에게 해(害)가 되는가? 유능하다면 외부 영입도 무방하다’며 외부 영입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誌는 최근 ‘Serial CEO’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즉, 한 개 이상의 회사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린 CEO가 연속으로 다른 회사의 CEO로 자리를 옮기는 전문 CEO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 맥너니는 GE의 선임 경영진으로 일하다가 3M CEO로 옮겼으며, 얼마 전에는 보잉의 CEO로 영입된 것이 그 예이다.   
  
태동하는 우리나라 CEO 시장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CEO 시장은 어떨까? IMD의 국가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앞서 설명한 노동 시장에서 유능한 경영인의 확보 용이성 지표 면에서 한국의 순위는 2001년 49개국 중 37위, 2002년에는 49개국 중 38위, 2003년에는 30개국 중 22위로 하위권에 위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순위와는 별개로 실제 CEO 시장에서는 조심스럽게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의 임원 인사 결과를 보면, CEO의 스카우트 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계 회사의 CEO가 국내 대기업 CEO로 영입되기도 했고, 동종 업계간의 CEO 스카우트도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외부인에 대해 다소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는 공기업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는데, 소위 낙하산 인사 관행을 타파하고 공기업의 경영 효율화를 위해 외부 시장에서 사장을 공모하는 공기업들도 속속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에도 유능한 경영진을 찾는 기업이 증가하면서, 경영진 대상의 헤드헌팅 업체들도 성장하고 있다. 세계 3대 헤드헌팅社인 콘페리 인터내셔널, 이곤젠더, 그리고 하이드릭&스트러글스는 이미 2000년에 우리나라 CEO 시장의 잠재력을 예견하여 일찌감치 국내 시장에 상륙하여 CEO 헤드헌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토종 업체들의 활약도 눈부신데, KK컨설팅, 탑경영컨설팅, 유니코써어치 등이 이러한 예이다. 물론, 아직까지 국내에는 기업들이 탐낼 만한 유능한 CEO 후보자들이 풍부하지 않다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앞으로 CEO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CEO 시장, 왜 커지는가  
그렇다면, 이처럼 CEO 시장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다음 4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 역량이 검증된 CEO 확보  
우선, 이미 검증된 전문가에 대한 기업들의 니즈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영 환경과 사업이 다변화되고 예측이 힘들어지면서, 고도의 전문성과 전략적 역량을 갖춘 전문 경영진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동안 내부에서 차기 경영자 재목에 대한 투자와 육성 활동을 소홀히 한 것도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검증된 전문가를 CEO로 영입한 LG생활건강이 그 예이다. 동사는 쌍용제지, 한국 P&G, 해태제과의 전 CEO를 역임한 차석용 사장을 2005년에 영입한 바 있다. 차 사장은 P&G 생활용품 사업에서 15년간 쌓은 시장 경험과 전문성,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았던 해태제과를 우량 기업으로 전환시킨 리더십 역량 등의 면에서 어느 정도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 위기 탈출을 위한 외부 수혈  
위기에 처한 기업들은 종종 외부에서 새로운 CEO를 영입하려고 한다. 이는, 외부 수혈을 통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 효과가 크고, 강력한 혁신이나 기업 문화의 변화를 꾀하기에 용이하다는 이점 때문이다. 특히, 힘든 상황에서 외부 CEO의 영입은 변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상징적 효과도 있어, 주주나 투자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HP의 마크 허드 CEO가 그 예이다. 마크 허드는 HP의 위기 극복을 위해 작년 3월 칼리 피오리나 후임으로 영입 되었다. CEO 선임 이후, 그는 전세계 직원의 20%에 해당하는 25,000여명의 인원을 줄이는 등 고비용 구조를 깨기 위한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 CEO의 좋은 이미지를 기업 이미지로 연결  
최근 사회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나 좋은 명성을 얻는 CEO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전략적으로 영입하는 경우도 있다. 외부에서 높은 명성과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는 CEO를 영입하여 자사의 기업 이미지로 승화시키려는 목적에서이다. 이러한 형태의 CEO 영입은 기업의 對사회적 활동이 중요한 비즈니스나 사회적으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된 기업들의 경우에 종종 나타난다.  
석유 메이저 그룹인 로열 더치 셸은 세계 1위의 이동통신 회사인 노키아의 요르마 올릴라 회장을 자사의 회장으로 내정하였다. 산업이나 사업 측면에서 보면, 로열 더치 셸의 행보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석유 매장량을 부풀려 사회적으로 이미지를 실추 당한 로열 더치 셸 입장에서는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유명한 CEO 명성을 가지고 있는 요르마 올릴라 회장을 영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국내의 많은 벤처 기업들이 자사의 CEO나 주요 임원으로 변호사, 언론인, 연예인 출신들을 영입하는 것도 이러한 일환으로 볼 수 있다.  

  
● 영입을 통한 선진 경영 시스템 확보  
선진 기업들의 경영 마인드나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글로벌 기업의 CEO를 영입하는 회사도 있다. 선진 기업의 시스템을 단순히 벤치마킹 하기보다는, CEO 영입을 통해 직접 그 사람의 경영 철학과 선진화된 경영 방식을 들여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철밥통’으로 유명한 베트남 국영 기업체의 대표 주자인 베트남 조선공사(Vinashin)는 외국인 CEO 영입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보수적이고 전근대적인 경영 마인드를 가진 베트남 출신의 CEO로서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동사는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한국, 일본, 폴란드 등 조선 업체를 대상으로 외국어에 능통하고 연 20%의 성장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CEO로 공개 모집한 바 있다.  
    
CEO 영입시 고려 포인트  
앞으로 국내 CEO 시장은 더욱 커지고 활성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CEO 시장에서 새로운 CEO를 영입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거물급 CEO의 영입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며, 한번의 결정으로 기업이 회생되거나 다시 쇠락의 길에 접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영입한 CEO를 불과 몇 달 만에 경질해야 하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CEO 시장에서 후보자를 물색하고 영입할 때 어떠한 점에 역점을 두고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까? 
  
● 돌다리도 두들겨라  - 철저한 검증  
시장에 유명한 CEO가 나타났다고 해서 들 뜬 마음으로 앞뒤 안 가리고 덥석 물어서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아무리 능력과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철저히 CEO 후보자의 모든 이력을 검증해야 한다. CEO 후보자가 빈번한 언론 노출 등으로 과장된 인기만 얻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실제로 구체적인 성공 경험이나 산업에 대한 지식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를 면밀히 확인해 봐야 한다. 이를 위한 방법 중의 하나가, 주위 사람들을 통한 평판 조회(Reference Check)인데, 이는 CEO 후보자를 잘 알고 있는 주변인을 통해 그 사람의 업무 능력이나 스타일,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면에서 그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경우에도, 무작정 후보를 접촉하기보다는 채용 실패 예방 차원에서 헤드헌팅 업체에게 평판 조회를 요청하는 건수가 늘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 우리 회사의 가치나 문화에 부합하는가  
기업들은 자사 고유의 문화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문화와 가치관은 해당 기업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일종의 관습으로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직 문화나 가치관과 융화되기 힘든 성향이나 이질성이 높은 CEO를 영입한다면, 그 사람이 최고의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실패할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화나 가치관에 맞는가도 CEO 영입의 중요한 고려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의 개척 정신을 가지고 몸을 내던지는 독한 인재를 바람직한 인재상으로에 정립하고 있는 LG전자가 P&G, 코카콜라, NHN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임원을 영입한 이유도, 제조업, 인터넷 기업 등 다양한 환경에서 마케팅 역량을 한 단계씩 끌어올리려 노력했던 개척 정신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반면, 이러한 문화나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중도 하차한 CEO도 있다. HP의 전 CEO였던 칼리 피오리나가 바로 그 예이다. 물론 칼리 피오리나가 실패한 이유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녀의 독단적 경영 스타일이 상호 배려와 민주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HP 문화와 마찰을 빚어 결국 구성원과 이사회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요소이다.  
  
● 섣부른 기대감은 금물  
마지막으로 CEO 외부 영입시, 섣부른 기대감이나 환상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방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거야’, ‘금방 실적이 좋아지겠지’ 등과 같이 영입된 CEO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환상이나 섣부른 기대감을 갖게 될 경우, 자칫 CEO에게 큰 부담감만 안겨 줄 수 있다. 이러한 부담감은 신임 CEO가 사업과 조직 현황을 깊이 있게 통찰하기보다는 당장의 성과 내기에 급급하도록 만들 수 있다. 외부에서 인정 받은 전문가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는 단기적이고 좁은 시야보다는 장기간의 안목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도 CEO 외부 영입의 성공 포인트이다.    
  
만병통치약이라는 선입견은 버려야…  
최근 컨설팅 회사인 부즈앨런해밀턴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2,500개 대기업에서 새로 선임된 CEO 가운데 12.2%가 다른 회사의 현직 CEO에서 자리를 옮겼으며, 이는 지난 7년중 가장 높다고 한다. 그러나 부즈앨런해밀턴은 내부 승진한 사람이 CEO로 있는 회사가 주주들에게 더 많은 실적을 안겨주고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는 CEO 시장이 전세계적으로도 활성화되는 추세이지만,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무작정 CEO 외부 영입을 만병통치약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CEO를 영입할 때는 전문성이나 리더십 등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거나 자사의 조직 문화나 가치관과의 정합성을 면밀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오히려 성과 창출 면에서 내부 승진자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LG경제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