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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60년 - 생활 속 일제 잔재_02

전동키호테 2005. 8. 10. 11:09

신사, 아직도 곳곳에서 한민족 억눌러
매일 보면서도 일제 유물인지조차 몰라

“일한병합이후 황민화는 식민지 끝까지 보급되고 민속관습도 계속 추방해서 융합동화했지만 아직 조선전국의 민중의 존숭의 대상이 될 신사가 없어 반도민은 단지 관내에 이세신궁과 같은 신궁을 조선에 봉건시키고자 하여…”
일제가 1918년 ‘반도의 중앙에 위치하는’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운 이유를 적은 글이다. 1941년 대륙신도연맹이 발간한 ‘대륙신사대관 조선신궁편’을 보면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과 충남 부여의 ‘부여신궁’ 두 개의 신궁과 전국각지에 만들어놓은 신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일제는 한반도 강점 기간 동안 우리나라 곳곳에 무려 1141개의 신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신사는 조선에 대한 정신적 지배를 상징하고 군국주의적 침략정책 및 식민지 통치를 대표하는 상징물. 일제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황국신민으로 살아갈 것을 강제했다.
그러나 관공서는 물론 학계, 사회 어디에서도 당시 신사가 현재까지 얼마나 남아 있으며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광복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와 문화부가 최근 ‘일제 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운동을 통해 시민들과 함께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일제 잔재 유적을 찾는 운동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발적으로 일제 잔재를 뿌리 뽑자는 시민운동 차원에서 일테지만 일제 유적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정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에서 아닐까.

◆신사,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도 몰라 = 광복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에 따르면 포항 구룡포, 전남 고흥 소록도 등 전국 곳곳에 신사가 해방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전남 고흥 소록도에 남아있는 신사는 현재 등록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소록도 신사는 소록도의 한 맺힌 역사를 증언하듯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소록도는 일제하 1917년 조선총독부가 한센병환자 100여명을 강제 수용하기 위해 ‘자혜의원’을 설치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1935년에는 전국의 한센병환자를 소록도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환자들은 매일 수만장의 벽돌을 굽는 등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돼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아 왔다.
소록도 노인들은 아직도 ‘신사참배하지 않는다고 끌고 가 거세시켜 버리고 강제노역중 못쓰게 된 다리를 칼과 톱으로 잘랐다’고 증언하고 있다.
대구 달성공원에 있던 선사는 해방이후 철거됐다. 그러나 석등 받침으로 추정되는 흔적은 아직 그대로다. 이 받침돌에는 ‘海野武男(우미노 다케오)’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대구 중구청에서 1990년 발행한 ‘달구벌의 맥’에 따르면 일제 총칼에 못이겨 억지 참배한 대구시민들은 해방과 동시에 도리이(신사앞에 세우는 돌문)을 부쉈다. 그러나 일본 신을 모신 신사는 모순적이지만 단군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이용됐으며 1966년에 이르러서야 우여곡절 끝에 철거됐다.
현재 어디에 얼마나 남아있고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도 모르는 일제 신사가 어디엔가 그대로 방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광기념사진 배경이 일제 공덕비라고?” = 포항 구룡포항을 굽어보는 구룡포 공원 가장 높은 곳에는 일제 공덕비가 서 있다. 폭 1.5미터, 높이 5미터나 되는 탑의 몸체는 구룡포 항을 내려다보고 있다. 공덕비의 주인은 구룡포항 개발업체 회장인 도가와 미사부로. ‘관광저널’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일본인 후손들이 이곳을 참배하고 가기도 했다. 구룡포공원은 과메기를 먹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구룡포 공원에는 신사뿐만 아니라 일제 잔재가 여럿 남아 있다. 광복60주년 기념문화사업추진위에 시민공모를 낸 김영란씨에 따르면 이곳에는 신사 외에도 일제때 일본 사찰건물도 폐허처럼 남아 있다. 이 일본사찰은 해방 후 유치원 및 성당으로 이용하다 현재는 폐가로 방치돼 있는 상태다. 물론 그냥 봐서는 이 폐가가 일제시대 절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지방문화재 지정 39호인 포항 호미곶 등대에는 1901년 침몰한 일본 배를 기리는 위령비까지 있다. 당시 침몰한 일본 배는 어쩌면 한일합방 이전 한반도 침략을 목적으로 수중 지형 탐사를 위해 호미곶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천년고도 경주에도 일제잔재는 많이 남아 있다. 경주시내 서부동 ‘서본원사’는 일본 교토에 본원이 있는 사찰로 쓰였다. 본원은 일본의 대표적 사찰중 하나다. 현재 이 건물은 해병전우회와 월남참전전우회 등이 사용하고 있다. 경주경찰서 앞에는 일제시대 ‘야마구찌병원’이 있고, 국내 문화재 도굴꾼이자 도자기 밀반출을 통해 떼돈을 반 ‘사바다’의 여관이 있다.

◆농사기구 쌓아두는 창고로 방치된 비행기 격납고 = 송악산 인근 제주도 상모리 들녘. 밭 한가운데 이상한 구조물들이 있다. 지금은 밭이지만 일제시대 가미가제 전투기가 뜨고내리던 ‘알뜨르 비행장’터다. 이상한 구조물들은 당시 수많은 제주도민들을 동원해 만든 비행기 격납고. 지금은 그저 농민들이 농사기구 등을 쌓아두는 창고처럼 쓰이고 있다.
이곳이 가미가제 비행기를 넣어두던 곳이라는 안내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돌 하나 풀 한포기가 모두 볼거리라는 천혜의 관광지 제주도에도 일제의 상흔이 널려 있다. 대장금 촬영지로 일본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송악산 밑 진지동굴, 마라도 해안가의 동굴들 역시 일제가 2차대전당시 어뢰정을 숨겨놓기 위해 만든 것들이다. 아픈 역사의 상흔들이지만 관광객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곳을 지나친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내일신문 2005 08 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