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교회_主_성광

손창남선교사_지갑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

전동키호테 2014. 8. 26. 08:35

(이 글은 송원교회의 향기라는 잡지에 기고한 네 편의 글 가운데 첫번째 글입니다.)

1. 돈과 신앙
지갑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
미국의 어느 침례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새로 주님을 믿게 된 다섯 명의 사람이 침례를 받기로 되었습니다. 침례교회에서는 머리에 물을 조금 묻히는 세례가 아니라 몸 전체를 물에 담그는 침례를 주는 의식을 위해서 교회 안에 침례탕이라고 하는 것을 만듭니다. 대부분의 경우 강대상 뒤에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침례탕을 만들어 놓고 평소에는 커튼으로 가리었다가 침례를 베풀 때면 성도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열게 됩니다.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미리 침례 문답을 하고 침례 받는 당일에 미리 와서 평상복을 벗고 침례 받기 위한 특별한 가운을 갈아입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늦게 왔습니다. 침례식을 보기 위해 많은 성도들이 이마 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목사님은 너무 오랫동안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목사님은 네 명만을 놓고 침례를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침례를 마쳤을 때 마지막 사람이 헐레벌떡 들어왔습니다. 그는 침례복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침례 가운을 갈아입을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을 걱정해서 목사님은 그 다섯 번째 사람에게 평상복을 입은 채 침례탕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늦게 온 죄도 있고 해서 다섯 번 째 사람은 침례탕으로 그대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지 주머니 안에 있는 지갑은 꺼내야 할 것 같아 바지 뒤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던 목사님이 재촉을 했습니다.
“아니, 빨리 들어오시지 않고...”
“아, 네, 지갑을 꺼내고 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아니, 그냥 들어와요. 지갑도 침례를 받아야 해요.”

돈이 중요하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재정을 어떻게 쓰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나 재물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침례탕의 에피소드는 그저 웃고 말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슴에 새겨놓아야 할 중요한 대목입니다.

어떤 성도님들은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역시 돈이 중요하지. 맞습니다. 돈이 중요합니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돈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이 성경의 30%가 돈과 재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중요한 것을 돈과 재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돈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돈을 사용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돈과 재물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순간 어느새 돈의 굴레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13:5a)
또 디모데 전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0)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 사는 우리는 끝없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보장과 합의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우리가 정당한 이윤 추구를 하는 것이지 욕심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돈을 추구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빚을 지지 말자.
이렇게 돈의 굴레에 빠지지 않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빚을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빚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 빚을 지기도 하고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 빚을 지기도 합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대학 다닐 때 등록금을 대부분 융자해서 다닙니다. 그래서 졸업하자마자 빚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또 상당히 많은 미국 사람들이 집이나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합니다. 직장이 있을 때면 그 할부금을 부어나갈 능력이 되지만 직장을 잃는 순간 그 할부금을 납부하지 못해서 집도 자동차도 모두 차압을 당하게 되고 홈레스 (homeless)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거의 비슷한 전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잠22:7)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면 몇 번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셔야 합니다.

지출을 줄이자
빚을 지는 이유가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의 빚은 자신의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서 생기게 됩니다. 자신의 수입 범위 안에서만 지출을 하기로 하면 빚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지출 성향은 한번 지출의 수준을 높여놓으면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소비수준을 올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빚이라고 하는 것이 은행이나 기타의 금융기관을 통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여유가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뭔가를 기대하며 사는 것도 마찬가지 결과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세계적으로 높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결혼과 함께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경제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결혼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어떤 결혼하고 자녀를 둔 부부가 자녀의 과외비를 부모한테서 받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자녀의 교육을 소신껏 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광고를 조심하십시오. 요즘은 광고가 우리의 지출을 부채질하는 시대입니다. 얼마나 많은 물건을 사 놓고는 쓰지 않는지 모릅니다. 물건을 사기 전에 몇 번씩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에 그리고 기도한 후에 사십시오. 절대로 싸다고 사면 안 됩니다. 구매는 필요에 의해서 해야 합니다. 아무리 비싸도 꼭 필요하면 사야지요. 하지만 필요하지 않다면 아무리 싸도 사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