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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이야기_우리밀&국화

전동키호테 2013. 7. 31. 08:52

빵 카페가 있는 이색 캠핑장 준비 중인 충북 옥천 한상옥 씨(44)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출근길 대신 신록 가득한 흙길을 밟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귀농 5년 차 한상옥 씨 역시 신록 가득한 자연에서 생태적 삶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각오로 남편 김석태 씨와 함께 시골행을 택했다. 굽이굽이 물결치는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둥지를 튼 그녀는 오늘 하루도 꿈에 그리던 귀농 지도를 개척하기 위해 분주하다.

친환경 먹을거리를 찾아서

많은 귀농인은 도시에 있었다면 실천하지 못했을 삶의 장점을 노래한다. 특히 귀농을 결심한 당사자가 여성이자 주부라면 ‘웰빙, 유기농’이라는 시대적 트렌드의 답을 귀농에서 찾는다. 한상옥 씨의 귀농 결심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도시에서는 꿈만 꾸던 삶이 여기서는 마음만 먹으면 가능해요. 아이가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텐데 특히 먹을거리 문제가 그렇죠. 유기농이나 친환경 식품에 관심이 높아도 비싼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 많으실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시골에서는 씨앗 값만 있으면 내가 직접 길러 먹을 수 있잖아요. 큰돈 들이지 않아도 신선한 먹을거리 마련이 가능하다는 게 귀농의 장점이에요.”

귀농하기 전 한 씨의 마지막 직업은 식당 주인이었다. 장사가 끝나고 현금을 세노라면 욕심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남편이 장남인데 명절에도 장사했으니 말 다했죠’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나 돈은 늘었지만 사는 재미는 외려 줄어들었다. 도시 생활에 지쳐갈 무렵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이 한 씨의 건조한 삶을 자극했다.

“현미식 식이요법에 대해 설명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채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맞아, 나도 자연 친화적인 삶을 꿈꿨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식당을 하면서 몸이 고되니까 마음이 각박해졌었어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죠.”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식생활의 일선에서 활약했다는 말과도 같다. 음식을 조리해 팔기만 하던 입장에서 벗어나 내가 먹을 음식은 직접 생산하는 입장으로의 변화. 이 작지만 큰 변화는 삶의 형태와도 연계된다. 올바른 식습관은 몸을 정화시키고 정화된 몸은 마음의 평온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녀가 원하던 생태적인 삶은 친환경 먹을거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귀농 실행 첫 단추는 철저한 계획

한상옥 씨 부부의 첫 귀농 지도에는 장애물이 없었다. 양가 어르신들께서는 이미 유명을 달리하셔서 큰 반대에 부딪히지도 않았고, 아직 아이가 없어 교육에 대한 고민도 문제 되지 않았다. 잔디가 깔린 별장 같은 집에 대한 환상도 없었고 둘 다 젊은 나이니 노동가치도 높으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과감했던 결심과 달리 귀농 생활은 첫 단추를 끼우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시세를 몰라 땅을 비싸게 구입한 착오도 한몫 거들었다.

“여기서 나고 자라신 동네 분들은 예전 가격을 아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하세요. 안쓰러워 보였는지 더 잘 해주시더라고요. 그렇지만 물가가 오르는데 땅값이라고 안 올랐겠어요. 진짜 문제는 투자금의 많은 부분을 땅에 할애한 게 아니라 준비 부족에 있었던 것 같아요.”

나이 마흔에 단행한 귀농. 초기자금은 도시에서 모은 돈 전부인 2억 원. 비록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시골 생활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안겨줬다. 도시에서 겪었던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농사는 누가 이기고 지는 경쟁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한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혼자만의 계획은 소용없어요. 요즘 귀농 관련 프로그램도 많잖아요. 교육을 받아 보면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깨닫게 되면서 생각이 정립되고 본격적인 ‘진짜’ 계획이 세워져요.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면 저처럼 초기 계획을 번복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어요.”

정기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착 단계에서의 계획 번복은 시련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귀농 초기 겪었던 시행착오는 다가올 미래에 비옥한 밑거름이 되기도 하는 법. 후회 대신 더욱 탄탄한 계획을 세우기를 권하는 한 씨의 말처럼 실수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귀농인 각자의 몫이다.

친정엄마 못지않은 따뜻한 환대

한상옥 씨는 고된 나날들 속에서도 귀농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로 주민과의 유대관계를 꼽았다.

“시골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건 다 아시잖아요. 일거리는 지천으로 널렸는데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 어느 시골마다 젊은 일꾼에 대한 갈증이 있을 거예요. 내가 먼저 일을 찾아다니면 농사도 공짜로 배우고 새참도 나눠 먹다 보면 어느새 지역주민과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동네 일 돕느라 텃세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는 한 씨. 귀농인이 먼저 마음을 열면 이웃도 덩달아 마음을 연다는 게 그녀가 일러준 팁이다.

“지역민과의 불화 때문에 귀농을 망설이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선대부터 일궈놓은 땅에 일면식도 없는 남이, 그것도 도시에서 누릴 것 다 누리며 살던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보면 텃세를 부리는 게 당연할 수도 있어요.”

그녀의 너그러운 마음결이 이웃에게도 전해진 걸까. 살면서 이런 환대를 받아본적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 한 씨와 이웃 간의 돈독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귀농하기 몇 년 전에 친정엄마가 돌아가셔서 그런지 정이 그리웠어요. 그런데 이웃 할머니들이 아껴주셔서 그런 그리움들이 많이 해소됐어요. 이제는 할머니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더 열심히 농사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귀농 지도를 완성할 밀 익는 산골짜기

결혼 전부터 10년여 동안 꽃집을 운영했던 경력을 살려 화훼농사도 짓고 있지만, 한상옥 씨와 김석태 씨가 주력하는 것은 우리 밀농사다. 그들은 ‘밀 익는 산골짜기’라 이름 붙인 밀밭을 가꾸며 10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는 옥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받은 e-비즈니스 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교육을 통해 농작물 판매보다 가공판매가 수익 면에서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직접 생산한 밀로 빵 만들기 체험장 조성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거기에 캠핑시설을 꾸려 관광까지 연계하는 것이 이 부부의 최종 목표다.

“이제야 딱 맞는 옷을 찾은 기분이에요. 밀은 가을에 뿌려놓으면 겨울을 나기 때문에 병충해가 없어요.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친환경 먹을거리로도 알맞은 작물이고요. 운 좋게도 도에서 주최한 경영개선시범사업에 선정돼 4월이면 빵 만들기 체험장을 조성할 수 있게 됐어요. 체험장을 기점으로 주변에 가족단위 캠핑장도 만들 계획인데 10년 후쯤이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10년이라는 먼 훗날을 바라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는 도시의 방식은 배제한 채 오직 정성만을 투자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체험장과 캠핑장을 손수 지을 예정이라니 10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질 것도 같다.

손수 기른 친환경 밀로 손수 지은 체험장에서 만들어질 빵의 맛은 어떨까.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위해 귀농을 선택한 한상옥 씨라면 분명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구워낼 것이다.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고 또 실행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질 행복.

그녀의 귀농 지도에는 용기를 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참 의미가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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