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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이야기_양송이

전동키호테 2013. 7. 31. 08:40

 

양송이로 후배양성과 체험학습장을 꿈꾸는 충남 보령 주태우 씨(50)

부산토박이에서 농부로 거듭난 주태우 씨(50), 양송이버섯만을 고집한 끝에, 귀농 6년 차를 맞은 요즈음 매월 1,200~1,3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다른 스케일로 양송이재배를 넘어 버섯체험 박물관을 계획 중인 그를 충남 보령에서 만나 보았다.

부산토박이의 귀농 생활

“부산에서 개인사업(제조업)을 하던 중에 아내의 희망에 따라 귀농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죠.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섬’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부산 사나이 주태우 씨는 귀농 첫해를 떠올리며 외로움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들려주었다. 사업을 통해 어려움 없이 살아가던 그가 충남 보령까지 오게 된 배경에는 아내의 간절한 희망이 있었다.

“오랜 개인사업으로 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스트레스가 생겼고 막연하게 시골생활을 동경했습니다. 한참 시골의 삶을 생각하던 때에, 마침 TV를 통해 귀농사례나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되었죠.”

아내의 시골바라기는 설득으로 이어졌고, 이후 주 씨 부부의 귀농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아내의 희망처럼 귀농은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양송이를 키우기 적합한 충남 보령에 터전을 잡았지만, 버섯 하우스를 구하는 것부터 노동력을 구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결국 10년이 훨씬 넘은 하우스를 2009년에 한 동당 150만 원씩 총 450만 원을 주고 임차했다. 여기서도 문제는 발생했다. 냉동기, 보일러, 균상 등 시설을 교체해야 했는데 빌린 것이라 시설투자가 어려웠던 것이다. 노동력 또한 문제였다. 이웃과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시기라 온 가족이 양송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온도와 습도가 매우 중요하기에 주 씨는 몇 날 며칠을 하우스 안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주 씨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온 가족의 생계가, 부산 사나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양송이에만 매달렸던 그의 노력은 1년여 만에 5천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세 아들 중 부산대학교 농업경영학과에 다니던 둘째는 한국농수산대학 특작과에 편입해 부모의 대를 이어 버섯비즈니스에 도전하고 있다.

1억을 투자로 연 1억 7천만 원 매출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 귀농도 투자한 만큼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투자비를 아낀다고 기름을 적게 사용하면 그만큼 수확량이 적거나 상품의 질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오랜 사업을 통해 투자와 수익에 대한 정의가 분명했던 주 씨는, 임대한 3동 하우스 외에 800여 평의 땅을 구매했다. 그리곤 구매한 땅 위에 1억 원을 투자해 4동의 재배사를 세웠다. 물론 최고 품질의 양송이를 위해 기름값(월 100여만 원)을 아끼는 일도 없다.

주 씨의 귀농 투자비용은 1억 원이었다. 5년 차였던 2011년 양송이 매출액은 1억 7천만 원.

귀농 6년 차를 맞은 그는, 경제적인 안정을 넘어 후배양성과 체험학습에 대한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후배양성에 대해선 보령시에 ‘보령 귀농인 모임’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보령시장도 적극 동의했다. 또한 작목반을 직접 만들어 후배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이 찾아올 때면 언제든지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농업비전아카데미(버섯반) 후배에게 3개월간 숙식을 제공하며 양송이 재배와 귀농 노하우를 전해주기도 했다.

“양송이는 돈이 아닌 생명입니다. 생명을 다루듯 소중히 아끼고 보살피다 보면 돈은 저절로 생겨납니다. 양송이든 뭐든 중요한 건 귀농인의 마음가짐입니다. 도시에서 일하던 만큼만 하면 뭐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늦은 시간까지, 도시의 직장인처럼 일하면 귀농은 성공할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문제는 농촌사회의 여유와 평화로움이 몸에 익숙해지면 경제적인 안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귀농의 목적이다. 경제적인 성공이 아닌 그저 여유와 평안을 목적으로 귀농을 택했다면 바쁜 삶을 택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은 처음 귀농을 준비하며 세웠던 철저한 계획과 목적에 맞는 귀농 생활을 영위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행복이며 성공이라고 주 씨는 말한다.

귀농 초기, 2~3년의 생활비를 마련해라

“농사라는 것이 작물이 무엇이 됐든 바로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어려운 작물을 고르지 말고, 키우기 쉽고 수확이 빠른 작물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귀농 후 가장 어려운 시기는 1년 후부터 3년까지라고 한다. 주 씨는 그와 같은 관점에서 귀농하는 이들에게 2~3년간 생활할 수 있는 생활비를 준비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농사가 처음인 사람이 무조건 친환경이나, 특수작물에 뛰어들기보다 관행농업을 통해 서서히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해나갈 것을 조언한다.

귀농 후에는 집을 사기보다 농지를 먼저 구할 것을 강조한다. 집은 언제든 구할 수 있지만, 농지는 임차해서 사용할 경우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마음껏 활용할수 없을뿐더러, 주인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 비워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지원금에 연연하기보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지원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후에, 부족한 것에 대해 보조를 받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그는 귀농 후 정책지원금을 통해 농사에 뛰어드는 이들에 대해 ‘실패’라는 강한 일침을 놓는다. 처음에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지원금에 연연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부족한 부분을 보조받았던 귀농인은 세월이 흘러 부족분을 채운 후 더욱 성장하겠지만, 지원금에 연연한 사람은 세월이 흘러 쌓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도시에서보다 더 큰 실패를 맛보게 된다. 주 씨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스스로 하려는 의지와 마음가짐이 귀농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선배 귀농인의 조언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는 귀농 1년 차에 투자비를 모두 날리고 도시로 돌아가려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강의차 보령에 오신 前 농림수산식품부 장태평 장관(현 마사회 회장)의 격려에 힘을 얻어 지금의 삶을 영위하게 됐습니다.”

실제 그의 집에는 장태평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액자에 담겨있다. 또한 그는 장 회장에게 귀농 후의 삶에 대한 장문을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이를 확인한 장 회장이 직접 전화를 줘서 오랜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며 당시의 감사했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양송이재배를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는 주태우 씨. 그리고 가족이 엮어가는 행복한 삶은 은은하게 퍼지는 양송이의 향기처럼 귀농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나아가 가족의 행복한 향기가 농촌사회를, 대한민국을 향기롭게 가꿔주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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