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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여왕 100년만의 아일랜드 방문

전동키호테 2011. 5. 19. 08:46

英여왕 100년만의 아일랜드 방문뒤엔… '메이저(영국 前 총리)·레이놀즈의 우정(아일랜드 前 총리)' 있었다

기업가 출신에 실용적 리더십, 양국 관계 개선에 의기투합… "피로 물든 역사 바로잡자" 1993년 다우닝가 평화선언

"피로 물든 역사를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존 메이저 영국 전 총리)

"그렇습니다. 이제 피 대신 땀을 흘리면서 관계 진전을 위해 노력합시다." (알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 전 총리)

1993년 12월 영국 총리 관저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당시 영국·아일랜드의 두 총리가 나눈 대화다. 이날 영국과 아일랜드는 '다우닝가 평화 선언'을 발표하고 양국 간 평화 정착을 위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7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역사적인 아일랜드 방문 소식을 전하며 "메이저와 레이놀즈 간의 우정이 없었다면 여왕이 오늘 아일랜드 땅을 밟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우닝가 평화 선언'의 두 주역을 다시 주목했다. 나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은 1922년 아일랜드 독립 이후 영국 군주로는 처음이고 조지 5세의 방문 이후 100년 만이다.

1993년 12월 15일 알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 총리(왼쪽)와 존 메이저 영국 총리가 영국 총리관저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양국 간 평화 정착을 위한 본격적인 대화의 시작을 알리는‘다우닝가 평화 선언’ 에 서명한 후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

800년간 계속된 '앙숙의 역사'

영국과 아일랜드의 '악연'은 800여년 전 시작됐다. 13세기 잉글랜드 노르만 왕조가 아일랜드를 침공해 복속시키면서 본격적인 식민 통치가 시작됐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하지만 1534년 종교 개혁으로 잉글랜드 성공회(신교)가 로마 가톨릭(구교)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잉글랜드 통치부는 아일랜드인들에게 가톨릭교를 버릴 것을 강요했다. 수백년간의 해묵은 '신·구교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수백 년간 진행됐고, 결국 양국은 1919년 독립 전쟁을 벌인다. 치열한 독립 전쟁 끝에 1922년 북아일랜드 지역을 제외하고 아일랜드가 독립한다. 후에도 갈등은 계속됐다. 충돌의 '뇌관'은 북아일랜드 지역이었다.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구교 세력과 영국 잔류를 요구하는 신교 세력 간 투쟁으로 유혈사태가 속출했다. 북아일랜드 무장 독립투쟁 조직인 IRA의 테러도 계속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국 국왕으로는 100년 만에 처음으로 17일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여왕은 이날 영국의 지배로부터 아일랜드를 해방시키기 위해 싸우다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추모의 정원’을 방문해‘리어의 아이들’이란 조각상 앞에 헌화하고 있다. 이 조각상(왼쪽 사진)은 아일랜드 독립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1916년‘부활절 봉기(Easter Rising)’를 기념하기 위해 아일랜드의 조각가 오이신 켈리가 봉기 50주년이 되는 해에 만들었다. 자신들을 질투한 새엄마의 마법 때문에 백조로 변했다가 900년 뒤에야 마법에서 풀려나게 되는 3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아일랜드 전설이 모티브가 됐으며 아일랜드 독립의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다. /로이터 뉴시스


두 지도자 간 화해가 양국 화해로

메이저가 1990년 총리직에 올랐을 때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일랜드 독립 전쟁의 앙금이 양국 국민 사이에 여전했고, IRA의 테러 위협도 상존했다. 게다가 독립전쟁 참전용사의 아들인 찰스 호이 당시 아일랜드 총리는 영국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메이저 전 총리의 전임이었던 마거릿 대처 총리도 '철의 여인'답게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의 폭력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며 관계 회복 가능성을 닫아놓은 상태였다.

1992년 레이놀즈가 아일랜드 총리로 당선되면서 관계개선의 돌파구가 생겼다. 음악 밴드 공연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였던 레이놀즈 총리는 정원손질도구 회사 사장 출신인 존 메이저 총리와 잘 통했다. 둘은 1980년대 말 유럽 재무장관 회담 등에 함께 참석하며 친분도 다져 놓은 상태였다. 둘 다 전임 총리들에 비해 부드러운 리더십의 소유자였고, 기업가 출신들이라 실용적으로 양국 관계를 풀어나갔다.

둘은 수시로 비밀 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 개선의 밑그림을 함께 그려 나갔다. 메이저 전 총리는 북아일랜드에서 차별대우를 받던 구교 세력에게도 동등한 정치권력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레이놀즈 전 총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결국 둘이 맺은 1993년 다우닝가 평화 선언은 신·구교도 간 폭력 종식과 권력의 공평한 분배를 골자로 하는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 협정'의 씨앗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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