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로망'이라는 말이 하도 유행하기에 만나는 남자들에게 슬쩍슬쩍 물어봤다. 당신의 로망은 뭐냐고. 처음에는 멋쩍게 웃었지만 꽤 많은 남자가 술 한잔 들어가면 술술 자기 로망을 고백했다. 나이에 따라 답들도 달랐다. 20·30대 남자들의 로망은 낭만적이고 몽상적이다. '오픈카에 예쁜 여자를 태우고 드라이브하고 싶다'거나 '마흔까지 일하고 놀러다니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좋을 때다. 형아도 그랬었다.
반면 40대 이상 중년의 로망은 좀 더 독특하다. '넘치는 힘과 스태미너'라든가 '로또 당첨' 같은 답은 예상 외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미 세상을 알고 자기 능력을 알아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오히려 그들의 로망은 아홉 살에서 성장을 멈춰버린 아이처럼 유아적이다. 많이 나온 답변은 이런 것들이다.
우선 '연애'. 입가에 묻은 밥풀 뗄 힘이 있을 때까지 남자는 여자를 좋아한다는데 개인의 로망을 이야기할 때 이성은 찬밥 대우를 받았다. 새로운 연애, 불꽃 같은 연애도 귀찮고 부담된다고 했다. 오히려 이들은 연애가 주는 설렘에 꽂혔다. 누군가가 보내주는 달콤한 문자 메시지, 약간의 긴장감이 넘치는 술친구 정도가 그들이 말하는 연애 로망의 전부다.
'혼자만의 공간'을 로망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것이 다락방이든 작업실이든 철저하게 독립적인 공간을 꿈꾼다. 어머니와 아내의 잔소리가 없는 곳, 하루 종일 만화책을 봐도 되고 불량 식품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곳, 옛 친구들을 불러모아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처럼 지구와 인류를 구원할 로봇을 구상할 수 있는 비밀기지가 다 큰 남자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욕망으로 자라고 있다.
'혼자만의 여행'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실크로드에 대한 로망이 뜨겁다. 조롱에 갇힌 새들은 노마드(유목민)의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는 열 번 이상 봤다고 했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캐러밴(caravan), 낙타 등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눈은 별처럼 빛났다.
'목수'가 되고 싶은 로망도 많았다. 특히 머리 써서 먹고사는 남자들이 그랬다. 수렵과 채취의 원시 노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언가를 자기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육체노동에 대한 본능. 어느 남자는 그랬다. "햇볕 쨍하게 내리는 오후에 웃통 벗어 던지고 대패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바로 자신의 로망이라고.
여기서 재미있는 것 하나. 중년 남성 로망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만이 단독 주연이라는 것이다. 로망 안에 아내도 없고 아이도 없다. 어쩔 수 없는 가장의 책임감을 로망 속에서나마 훨훨 벗어 던지고 있는 것이다. 쓰고 나니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슬프잖아 이거!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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