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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장미, 주황색 페튜니아… 유전자 변형기술로 '활짝'

전동키호테 2009. 4. 21. 09:35

기존 색 유전자 차단하고 새로운 색 유전자 넣어 일(日)서 '파란 장미' 개발
온도·산성(酸性) 등 환경에 따라 나팔꽃·라일락꽃 색 변해

 

봄이 되면 연세대 신촌캠퍼스 한글탑 옆엔 '미친 벚나무'가 꽃을 피운다. 정확히 말해 이 나무는 벚나무의 친척뻘인 겹벚나무로, 원래 진분홍색 꽃을 피워야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나무엔 흰색, 분홍색, 진분홍색 꽃들이 마구 섞여 핀다. 미친 나무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런 '미친' 꽃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변형기술로 자연에 없던 '파란 장미'나 '주황색 페튜니아'가 국내외에서 개발돼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또 지구 온난화로 인해 꽃 색깔이 해마다 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지바시에서 열린‘세계 꽃 박람회’에서 한 여성 방문객이 카메라로 산토리사의 파란 장미를 찍고 있다. 유전자 변형으 로 만들어진 파란 장미는 이르면 올해 말부터 시판될 예정이다./AFP

팬지, 아이리스로 만든 파란 장미
연세대의 '미친 벚나무'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설명된다.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 이명민 교수는 "부분 돌연변이가 일어난 나뭇가지를 꺾꽂이해 심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일부분에서만 돌연변이가 일어난 겹벚나무의 가지를 꺾꽂이해 심으면, 정상 부분과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이 각각 자라면서 나무 전체로는 돌연변이와 정상 부분이 뒤섞여 성장한다. 이 때문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가지에서는 흰 꽃과 분홍 꽃이, 정상인 가지에선 진분홍 꽃이 핀다는 것. 이 교수는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겠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파란 장미'는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 일본 주류회사인 산토리(Suntory)사는 호주의 자회사인 플로리진(Florigene)이 개발한 파란 장미를 이르면 올해 말부터 시판할 계획이다. 장미 색깔은 '안토시아닌' 계열의 색소에 의해 결정된다. 안토시아닌 색소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원래 하나의 물질에서 유전자에 따라 빨간색의 '시아니딘', 주황색의 '펠라고니딘', 파란색의 '델피니딘' 색소의 초기 상태가 만들어진다. 최종적으로 'DFR'이라는 유전자가 각각의 초기 색소를 꽃 색으로 나타나게 한다.

그런데 장미에는 파란색 색소인 델피니딘을 만드는 유전자가 없고, 델피니딘을 꽃 색으로 나타나게 하는 DFR유전자도 없다. 플로리진 연구원은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차단하는 간섭 RNA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정상 장미에서 빨간색이나 주황색 색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간섭 RNA로 차단한다. 이렇게 만든 백지 상태의 장미에 먼저 팬지에서 뽑아낸 파란색 델피니딘 색소 유전자를 넣는다. 다음엔 아이리스에서 뽑아낸 파란색 발현 DFR유전자를 넣었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파란 장미가 탄생했다.

같은 방법으로 KAIST 생명과학과 최길주 교수도 2001년 주황색 페튜니아를 개발했다. 원래 페튜니아에는 주황색 펠라고니딘 색소 유전자가 없다. 최 교수는 다른 식물에서 이 유전자를 가져와 페튜니아에 집어넣어 자연에 없던 주황색 페튜니아를 만들어냈다.

산성, 온도에 따라 꽃 색깔 달라져
사실 산토리사의 파란 장미는 푸른색보다는 보라색에 더 가깝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장렬 박사는 "꽃의 색소는 산성도와 같은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색소 유전자만으로는 원하는 색을 얻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0년 일본 연구진은 '네이처'지에 보라색 일본 나팔꽃은 세포 내 액포(液胞)의 산성도에 변화가 없었지만, 푸른색 일본나팔꽃은 액포가 중성에서 염기성으로 바뀌면서 푸른색 꽃을 피운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액포는 색소처럼 물에 녹는 물질들로 가득 채워진 일종의 물 주머니로 잎을 팽팽하게 하고 영양분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집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붉은 양배추 잎을 끓는 물에 집어넣으면 물이 자줏빛으로 변한다. 여기에 산성인 레몬즙을 넣으면 물이 붉게 변하고, 베이킹 파우더 같은 염기성 물질을 넣으면 푸른색으로 변한다.

꽃 색깔은 온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고구마 꽃은 보통 옅은 자주색이지만 온도가 섭씨 2도로 떨어지면 장미처럼 붉은색으로 변한다. 또 요즘 많이 피는 라일락꽃은 연보라나 자주색이지만 섭씨 30도 정도의 온실에서는 흰 꽃을 피운다. 지구 온난화로 봄이 사라지고 여름이 바로 닥치면 라일락 꽃 색깔도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서도 파란 장미 개발 시작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이수영 박사는 "진정한 파란 장미를 만들려면 색소 유전자 몇개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색 발현에 관여하는 다양한 유전자를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김석원 박사팀은 장미의 유전자를 해독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다른 접근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생명공학연구원 유장렬 박사는 "꽃은 아니지만 전통 염료에서 파란색을 내게 하는 식물인 쪽의 유전자를 이용하면 더 선명한 파란색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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