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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에 식물원 여는 신구대(大) 이숭겸 총장

전동키호테 2009. 4. 15. 10:42

10만㎡ 식물원 여는 신구대(大) 이숭겸 총장
11년간 외국식물원 연구 투병 중에도 해외 출장
"제대로 된 식물원 만들어 수도권 주민들 쉼터로"

 

식물원에 미친 사내가 있다. 서울 근교에 식물원 짓는 걸 평생 과업으로 삼은 남자, 10여년 동안 20개국 130여개 식물원을 찾아다닌 이숭겸(李崇謙·53) 신구대학 총장이다. 암(癌)조차 그를 식물원에서 떼놓지 못했다.
13일 오후 이 총장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의 인릉산 자락에 있었다. 비탈면 흙바닥에 정장 차림으로 허리를 굽히고 앉아 만발한 디모르포테카(아프리카금잔화)를 살피는 중이었다.

이 총장 왼편으론 회양목이 기하학적 무늬를 이룬 프랑스식 정원이, 오른쪽으론 계단형 사면과 폭포가 어우러진 이탈리아식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가 57만㎡의 산자락에 11년 공을 들여 가꾼 10만㎡의 신구대 식물원이다. 1998년 조성을 시작해 2003년 4만㎡ 남짓한 크기로 임시 개원했다가, 그 사이 6만㎡를 더 꾸며 1600종의 식물을 키우고 있는 식물원은 오는 17일 정식 개원한다.

식물원 짓기 위한 11년 고행
이 총장이 이 식물원 부지와 인연을 맺은 건 1968년. 선친인 우촌 이종익(于村 李鍾翊) 신구문화사 창립자가 대학을 지으려 상적동에 땅을 사들여 우선 농장을 꾸렸던 것이다.
1972년 땅이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신구대는 지금의 성남 중원구로 가게 됐지만, 선친은 농장을 그대로 두고 아들을 방학 때마다 보냈다. 그는 풀숲을 뛰어다니며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에 눈떴다고 했다.
선친이 사준 캐논 A1 카메라로 꽃 사진 찍는 게 낙이 됐고,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7~8년 동안 농장 일을 거들며 자연 속에 살았다.

1990년 선친이 타계했다. 젊은 아들은 갑작스레 대학을 경영하게 됐다. "교과서에 나오는 식물이 모두 자라는 '어린이학습공원'을 농장터에 만들자"던 선친의 말은 유언이 됐다. 5~6년 경황 없이 지냈지만 그 말은 숙제로 남았다. 1998년쯤부터 해외출장 갔다가 근처에 식물원이 있으면 들르기 시작했다. 외국의 좋은 식물원을 보자 없던 욕심이 생겼다.
제대로 된 식물원을 짓고 싶었다. 수도권 주민이 모두 찾는 멋진 휴식터를 만들고 싶었다. 국내·외 출장이 생기면 근처에 식물원이 있는지부터 확인한 뒤 반드시 방문했다. 주변에서 "식물에 미쳤다"는 얘기가 나왔다.

13일, 신구대 이숭겸(오른쪽) 총장과 부인 임미영씨가 11년 고생 끝에 개원하는 경기 성남시 상적동의 신구대 식물원을 화사한 봄볕 아래 거닐고 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암 투병 중에도 "식물원 가야 한다"
식물원 공사를 하는 동안 이 총장은 틈만 나면 현장에 갔다. 이 나무는 저기 심어라, 저 꽃은 온실에 둬라, 챙길 게 끝도 없었다. 식물 1600종을 구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300종쯤은 식물원 부지 57만㎡에 자생하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국내·외에서 사들여야 했다. 중부지방에서 잘 자랄 종류를 고른 뒤 목록을 들고 다니며 쉬지 않고 다른 식물원들로 발품을 팔았다. 소문이 나자 귀하다는 식물을 구해오는 이도 생겼다.

매일 식물원에만 신경 쓰던 2004년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병원에선 "혈액암이지만 다행히 증세가 경미하니 정기점검을 받으라"고 했다. '다행히'란 말이 나오기 무섭게 이 총장은 다시 식물원에 매달렸다.
2007년 4월 말쯤 심한 감기를 앓던 이 총장이 쓰러졌다. 감기가 폐렴을 거쳐 패혈증으로 번졌고, 엿새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생사 갈림길을 오갔다. 이 일생일대 위기도 '식물에 미친 증세'를 낫게 해주진 못했다. 겨우 고비를 넘긴 어느 날, 이 총장은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 퇴원하고 영국 가야 합니다."

세계적 원예축제인 '첼시 플라워 쇼'(영국 왕립원예협회의 꽃 박람회)에 가려고 1년 전 표를 예약했는데 때를 놓치면 안 되니 다녀오겠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어이없어했지만 귀국해 치료받는다는 조건으로 퇴원을 허락했다. 이 총장은 암스테르담·런던·에든버러를 일주일 만에 돌며 식물원 5곳을 보는 강행군을 했다.
그런 그를 보는 부인 임미영(任美英·52) 신구문화사 사장은 속이 새카맣게 탔다. 결국 이 총장이 출장 가면 임 사장도 전기밥솥·쌀·찌개거리를 챙겨 따라나섰다. 식물원에서 빵으로 끼니 때우기 일쑤인 이 총장이 또 쓰러질까 봐 따라다니며 밥을 해 먹였다.

이후 이 총장은 6번이나 항암치료를 받았고, 2007년 말 골수이식 수술을 받아 완치됐다.

"식물원은 곧 나라의 수준"
이 총장이 몸을 아끼지 않은 데다 100억원쯤 돈을 들인 덕에 식물원엔 서양정원·전통정원·습지생태원·약초원·허브원·석산원이 골고루 들어섰다. '공익성'을 갖추기 위해 2001년 성남시와 관학협력을 체결했고, 2004년엔 산림청에 수목원 등록도 했다. 임시 개원 후 해마다 8만여명의 일반인이 찾았다.

오는 17일 식물원 개원과 함께 '녹색 학교기업' 선언도 하기로 했다. 입장료를 2000~5000원 받는 대신 '환경 교육의 장'으로 키우기로 한 것이다. 선친 유언도 있어 설계 단계부터 어린이 교육엔 특별히 공을 들였다. 어린이정원·어린이놀이터·곤충체험관이 따로 있고, 교과서에 나오는 식물을 모아둔 '교재식물원'도 마련했다.
경기농림진흥재단과 손잡고 일반인들에게 정원 가꾸기를 가르치는 '조경가든대학'도 연다. 우리 고유 희귀종 식물을 배양해 키우는 '특정 자생식물 보전원'도 있다. 멸종위기종 식물을 키워 식물학자들 연구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단다.

식물원 개원에 맞춰 13개국 61개 식물원 얘기를 담은 '꼭 가봐야 할 세계의 식물원'이란 책도 냈다.
이 총장의 남은 꿈은 식물원이 대한민국 명소가 되는 것이다. "10년 넘게 다녀보니 식물원이 바로 나라 수준을 반영합니다. 우리도 국민소득이 이만큼 커진 만큼, 식물을 가꾸는 마음도 자랐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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