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_연예_詩_만화

노숙자들의 산타-박희돈 목사

전동키호테 2008. 12. 6. 12:43

 [조선닷컴 주말특집] 노숙자가 된 산타클로스 

스타를 넘어서다 <17편> - 밥사랑열린공동체 박희돈 목사

 

지난 3일 오후 8시. 서울 영등포 역 광장에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20명으로 보였던 그들의 수는 몇 분 지나지 않아 40명으로 불었다. 다시 80명으로, 160명으로…. 여기저기서 나타난 노숙자는 마침내 600명을 훌쩍 넘겼다. 그들이 자가분열을 하듯 빠른 속도로 늘어나 역전 한 켠을 채우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40분 남짓. 영등포 역은 노숙자들이 풍기는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역을 빠져 나온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코부터 막았다. 사랑을 나누는 연인은 애써 눈을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그들 앞을 지나갔다.

하루 종일 굶은 채, 노숙자 사이에 끼어있던 기자는 문득 선인(先人)의 말씀을 떠올렸다. ‘매에는 장사 없다.’ 그렇다, 매질 뿐 아니라 배고픔에도 장사 없더라. 허기가 심해지자 추위도 심해졌다. 시각도 흐려졌고 후각도 흐려졌다. 부끄러움도 사라졌다. 배를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 박희돈(53) 목사는 매일 오후 9시 서울 영등포 역을 찾는다. 그리고 노숙자들에게 저녁밥을 무료로 나눠준다. 그가 영등포의 산타클로스로 불리는 까닭이다. 사진=김영관 /촬영=한용호,이승헌 /편집=허준영
오후 9시, 밥을 가득 실은 1t 트럭 한 대가 역전 앞에 나타났다. 노숙자 사이에선 작은 동요가 일었다. 수염을 기른 초로의 남자가 트럭에서 내렸다. 노숙자들을 향해 뛰어간 그는 반갑게 악수도 하고 포옹도 했다. “지방에 돈 벌러 다녀왔구나? 정말 오랜 만이네.” “아프다던 다리는 괜찮아?” 인사를 받은 노숙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길게 줄을 섰다. 남자는 김치를 얹은 콩나물 국밥을 차례차례 나눠줬다.

“모자라면 꼭 말하세요.” 남자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국밥은 길바닥에 앉거나 서서 먹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알 수 없었다. 빈 그릇을 돌려주고 돌아서는데 허연 수염 가득한 남자가 다가왔다. 문득 산타클로스가 떠올랐다. 그것이 허기를 벗어난 기쁨 때문인지, 그의 외모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밥사랑열린공동체 박희돈(53) 목사, 그의 이야기다.

◆노숙자가 바꿔놓은 인생

▲ 박희돈(53) 목사는 서울 영등포 밥사랑열린공동체 식당 방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생활한다. 덕분에 노숙자들은 그를 믿고 따른다. 사진=김영관
7년 전, 그는 어엿한 신학대학원 교수였다. 지방대학의 강의를 마치고 늦은 기차를 탄 것이 화근이었다. 때는 초겨울 새벽, 영등포 역에 내려 귀가를 서두르는데 쓰레기통을 뒤지는 30대 여성 노숙자를 만났다. 그녀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허연 속살을 드러낸 원피스를 입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컵라면 통을 찾더니 남은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마침 강의료를 받은 다음 날이었다. 그녀에게 돈이라도 전할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왜 이런 걸 먹어요?” 여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호기심은 커졌다. 밥을 사주자 그녀는 말했다. “먹을 게 없으니까 이렇게 살죠. 남자 노숙자들하고 같이 구걸을 하면 그 대가로 성폭행 당하고 임신도 하게 되니까…. 남들이 잘 때 먹을 걸 찾아야죠.”

박 목사는 영등포 역 노숙자에게 급식 봉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노숙자들이 손 벌리기 전에 미리 찾아가 한끼 식사를 대접하는 일. 그것이 자신에게 떨어진 숙제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가산을 탕진해가며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르는 가장에게 주어진 것은 이혼서류였다. 박 목사는 지금도 그 날을 기억한다. “가족 3명을 택할 것인가, 노숙자 700여명을 선택할 것인가. 저의 발걸음은 노숙자를 향했습니다. 모두가 미쳤다고 말했죠.”

▲ “결국 중요한 건 먹는 것이다. 노숙자들에게 옷이나 돈을 주면 금새 술로 바꿔 마시기 때문이다.” 박희돈(53) 목사가 노숙자들에게 매일 제공하는 저녁밥은 600인 분량이 넘는다. 사진=김영관
목사가 이혼을 하다니. 주위에선 그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가장 절친했던 사람들이 맨 앞줄에 있었다. 가정은 깨지고 친구들은 멀어지고…. 며칠 간 밤을 지새고 노숙자 급식 봉사를 가는 길. 뒤 따르던 차에서 울리는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운전자가 차를 빼면서 욕을 해대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연이은 충격에 청력을 잃은 것이다. 이후 한쪽 귀는 아예 들리지 않고, 다른 귀는 가는 소리만 들린다. 걸을 때 중심을 잡지 못해 불편함도 많다.

절망한 그는 자살을 꿈꾸게 됐다. 부모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려고 찾아간 시골집. 영문 모르는 어머니는 아들 목사에게 꼬깃한 종이돈 27만원을 쥐어줬다. “세상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살아라.” 박 목사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목을 놓고 울었다. 다시 서울에 돌아와 영등포 역 노숙자 봉사를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미군에서 쌀도 보내주고 봉사자도 늘었다. 새 삶을 찾겠다는 노숙자도 생겼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까지 박 목사를 돕고 있다. 한때 노숙자였던 조상현(37)씨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노숙자를 돕겠다며 영등포 역을 찾아왔지만 금새 포기했습니다. 우리 털보 아저씨만 제외하고 말이죠.” 털보 아저씨는 박 목사의 애칭이다.

박 목사는 말했다. “노숙자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아웃사이더입니다. 가정에서 버려지고, 친구에게서 멀어지고, 건강마저 잃은 사람들이죠. 저 역시 지난 7년간 노숙자와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덕분에 제 진심을 그 분들이 알아주는 것입니다.”

◆영등포 역의 산타클로스

그의 하루는 온전히 노숙자를 위해 바쳐진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영등포 역 인근의 작은 사무실에서 식단계획을 짠다. 전날 헤아린 노숙자의 수를 기준으로 저녁 식사량을 정한다. 일반적으로 500명~600명 분량의 식사를 준비하는데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오전에는 식당을 청소하고 야채를 다듬는다. 오후에는 시장에 나가 반찬거리를 마련한다. 오후 8시엔 모든 준비를 마치고 9시부터 영등포 역에서 배식을 한다. 돌아와 설겆이를 하고 나면 어느새 새벽이다. 결국 그는 밥 짓고 나눠주는데 하루를 보내는 셈이다.

▲ 박희돈(53) 목사는 노숙자와 똑같은 경험을 겪었다. 가정은 깨졌고 친구들은 등을 돌렸고 건강도 잃었다. 그가 목숨 걸고 노숙자를 위해 봉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진=김영관
하루가 빡빡하다고 미래 설계까지 포기하진 않았다. 박 목사에게 꿈을 물었을 때 그는 소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2.5t 트럭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밥을 나를 수 있으니까요. 가끔 밥이 모자라 돌아서는 노숙자를 볼라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더 여유가 있다면 노숙자가 이용할 목욕차도 있으면 좋겠네요. 막노동이라도 나갈라치면 더러워진 몸을 씻어야 하는데 마땅한 시설이 없거든요.”

단지 그것 뿐인가요? 그는 말을 이었다. “노숙자를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싶어요. 물론 먼 미래의 일이겠죠. 노숙자들 가운데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재교육을 시켜서 사회의 일원으로 키우고 싶네요. 그러면 제 인생도 성공한 거 아니겠습니까?”

궁금했다. 그의 말대로 가정도 잃고 친구도 잃고 건강도 잃었다. 재산도 모두 날렸다. 그런 그에게 성공이란 어떤 의미란 말인가. “스스로 더 가난해지고. 그러면서도 더 많은 이에게 봉사하는 것이 목회자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더 많아지는 거죠.”

마지막으로 부탁의 말을 했다. “다른 분 걱정만 마시고 목사님 건강부터 챙기세요.” 그는 대답 대신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리곤 “수화를 배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3년 전에 병원에 마지막으로 다녀왔지요. 의사 선생님이 조만간 청력을 아예 잃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마음이 쓸쓸해졌습니다만, 수화를 배우면 노숙자들과 이야기하는 데 큰 불편은 없지 않을까 싶네요. 그 정도면 됐어요.”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많은 분들이 봉사하는 덕분에 600원이면 노숙자들에게 한끼 식사를 대접할 수 있습니다. 1만원이면 16명이 식사를 할 수 있지요. 사회가 버린 노숙자 분들을 다시 한번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그와의 인터뷰는 결국 노숙자로 시작해서 노숙자로 끝났다.     이학준 기자 arisu01@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