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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눈길 끄는 몇가지 사실

전동키호테 2008. 10. 10. 18:58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핀란드의 마르티 아티사리 전 대통령이 선정됐다고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10일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아티사리 전 대통령이 여러건의 국제 분쟁 해결을 위해 중요한 노력을 했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핀란드의 마르티 아티사리(71) 전 대통령을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선정이유로 아티사리 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체 반군간 평화회담을 중재하는 등 여러 건의 국제 분쟁 해결을 위해 중요한 노력을 해온 점을 들었다.

 

1994년 핀란드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당선된 그는 미국과 러시아 정상간 만남을 주선했으며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문제 협상을 중재했다. 또 핀란드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실현시켰다. 2000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이후에도 팔레스타인 난민문제 조사 등 국제 분쟁문제 해결 활동을 했으며 2005년부터 작년까지 국제연합의 코소보 특사로 활동했다. 북아일랜드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도 분쟁 해결사로 활약한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올들어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2000년 이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다음은 노벨 평화상 역대 수상자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몇 가지 사실들이다.

▲2008 노벨 평화상 후보자 수 197명
2008년 노벨 평화상 후보자는 샘 넌 전 미 상원의원 및 리처드 루가 미 상원의원, 마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등 197명에 달한다. 이는 작년 평화상 후보자들보다 16명이 많은 수이고, 지난 2005년 최고 기록인 199명에 좀 못 미친다.

▲지구가 직면한 심각한 기후 변화를 경고한 2007년 노벨 평화상
2007년 노벨 평화상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를 제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테레사 수녀 연회 참석 거부
1979년 노벨 평화상은 테레사 수녀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평화상 수상 이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연회 참석을 거절했으며 그 돈을 빈자들을 위해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연회는 취소됐다.

▲국제적십자의 수상 저력
전쟁 시 부상자 등의 구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적십자(ICRC)는 1917년과 1944년, 1963년에 노벨 평화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또 적십자를 창시한 앙리 뒤낭은 1901년 제1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197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1973년 노벨 평화상 수상은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베트남 전쟁을 종결하고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한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시상식장 인근에는 키신저 장관의 수상을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 당시 베트남의 정치가 레 둑 토도 전쟁 종결의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베트남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고 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히틀러, 스탈린 노벨 평화상 후보자?
노벨 평화상의 역대 후보자 명단에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소련의 스탈린도 오른 적도 있다. 추천제로 진행되는 노벨 평화상의 특성상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히틀러의 노벨 평화상 수상 금지조치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1936년 평화상 수상자로 독일의 반체제인사인 평화주의자 카를 폰 오시츠키가 선정된 데 격노하고, 이후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시켰다. 히틀러의 금지 조치로 1930년대 말 노벨 화학상과 의학상 등을 수상하기로 돼 있던 3명의 독일인 학자가 영향을 받았다.

▲빈민들에게도 희망을 선사한 2006년 노벨 평화상
2006년 평화상은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와 그라민 은행이 공동 수상했다. 수백만 명의 빈민들을 위해 무보증 소액창업 대출(micro-credit) 프로그램을 창시해 빈민들에게 희망과 기회를 제공한 공로였다.

진현철 인턴기자 agacul@news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