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은 나라의 정신, 민족의 생명이다. 제 말과 글을 잃는 순간 민족의 숨도 멎는다. 한 세기 한결같이 우리말 우리글을 지켜온 한글학회가 31일로 100돌을 맞는다. 나라가 위태롭던 1908년 8월31일 주시경 선생이 국어연구학회를 세워 '말글운동'을 펼친 지 꼭 100년 되는 날이다.
국어연구학회는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 한글학회로 이어오면서 "말과 글을 잃지 않는 한 민족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역사에 증명해 보였다. 말과 글부터 뿌리뽑아 민족을 말살하려 드는 일제에 맞서 한글날 제정, 맞춤법 통일, 표준말 정하기에 온 힘을 다했다. 국어사전을 펴내려다 많은 이가 죽거나 옥살이를 치렀다. 말글운동은 암흑에서 나라를 건진 항일 민족운동이었다. 건국 후로도 한글학회는 국어교사 양성, 교재 편찬, 한글 전용운동, 국어 순화, 한글 기계화와 세계화에 힘써왔다. 한글학회 100년은 민족에게 쉼 없이 나라말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일깨워 온 100년이었다.
이제 한글은 세계화시대 한국의 대표적 문화상품이다. 1997년 세계기록유산에 올랐고 현재 64개국 742개 대학이 가르친다.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는 외국인이 작년에 7만2000명에 이르렀으며, 국제특허협력조약에선 10대 국제 공용어에 채택됐다. 앞으로 한글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이고 우리말을 세계에 널리 펴 보이는 길을 찾아내는 일 또한 한글학회 몫이다.
안으로 우리말을 보다 정확하고 품위 있고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꿔가는 일은 한글학회의 영원한 과제다. 그러려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지만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아쉽기만 하다. 국어대사전만 해도 일본은 14권짜리를 갖고 있는 데 비해 우리말큰사전과 표준국어대사전은 고작 3권씩이다. 국어대사전을 보완하고 옛말사전·방언사전·유의어사전·동의어사전까지, 엮어내야 할 사전이 한둘 아니지만 돈이 없어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국제학술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100돌 행사를 치를 비용이 부족해 회원을 비롯한 시민 4900명이 4500만원을 모아 보태는 일도 벌어졌다. 정부 지원금이 신청액의 3분의 1도 안 나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100년이 한글학회 앞에 펼쳐졌다. 세계적으로 언어의 다양성이 강조되는 국제화시대에 우리말운동이 지나치게 배타적이거나 외곬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는 슬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승곤 한글학회 회장은 "말이 아름다워야 그 말을 쓰는 국민의 마음이 아름답고, 국민의 마음이 아름다워야 사회가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민족이 지닌 가장 아름답고 귀중하고 자랑스러운 유산을 더욱 빛내고 번성시키는 한글학회의 또 다른 100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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