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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_수영 금메달 박태환

전동키호테 2008. 8. 10. 12:06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수영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낸 '마린보이' 박태환(19.단국대)은 변방에 머물던 한국 수영의 위상을 단숨에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기린아.

1989년 9월27일 박인호(58), 유성미(51)씨의 1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난 박태환은천식을 앓던 7살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동네 수영장에서 물에 처음 뛰어들었다. 물 속에서 재능을 보이자 부모는 어린 소년을 전문 수영 선수로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고, 수소문해 찾아간 곳이 노민상 현 수영대표팀 총감독이 운영하던 '윈윈클럽'이었다. 체계적인 교습을 받으며 박태환의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유연성과 부력(浮力), 폐활량 등 수영 선수로서 타고난 몸은 노민상 감독에 의해 재발견됐다.
소년체전에서 우승을 거듭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박태환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김봉조 당시 수영대표팀 감독에게 발탁되며 주목을 받았다. 전체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였던 것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나선 올림픽 무대에서 박태환은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자유형 400m 예선에 나선 박태환은 너무 긴장한 탓인지 준비 구령 소리에 물 속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수영은 육상처럼 부정출발에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지않기 때문에 박태환은 그대로 퇴장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올림픽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해 1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경영월드컵(쇼트코스) 자유형 1,500m에서 준우승하며 자신의 기량을 세계에 처음 알렸다. 이후 박태환은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담력과 승부욕을 키워갔고 이듬해인 2005년에도 메달 및 신기록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4월 중국 상하이 국제수영연맹(FINA) 쇼트코스(25m) 세계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2개의 은메달을 수확했고, 같은 달 동아수영대회와 6월 국가대표 기록평가회, 7월 캐나다 몬트리올 세계수영선수권대회, 10월 전국체전, 11월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등에서 한국신기록을 무려 8개나 쏟아냈다.

2006년은 박태환이 아시아 최정상에 오른 해였다. 8월 범태평양수영대회에서 아시아 신기록 2개를 세우면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수확한 박태환은 12월에 열린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자유형 200m와 400m, 1,500m를 모두 휩쓸어 3관왕에 오르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아시안게임 직후 태릉선수촌을 나오며 노민상 감독과 결별한 박태환은 후원사인수영용품 전문 브랜드 스피도가 꾸린 전담팀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3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에서 그랜트 해켓(호주)을 꺾고 금메달을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박석기 전 수영대표팀 감독의 지도 아래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고 박태환은 단숨에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8월 일본국제수영대회 자유형 400m에서 다시 한번 해켓을 무너뜨린 박태환은 11월 FINA 경영월드컵 3개 시리즈에서 3연속 3관왕에 오르며 올림픽 금메달 꿈을 키워갔다.

작년 말 전담팀 내부 불화로 박석기 감독과 헤어진 박태환은 유운겸 감독을 전담 코치로 맞아들였지만 올림픽을 5개월 앞두고 대표팀에 다시 합류했다. 태릉선수촌에서 노민상 감독과 재결합해 24주 간의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해낸 박태환은 결국 한국 수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하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베이징=연합뉴스)

 

우승 후 태극기 흔드는 박태환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연성과 폐활량’

’마린보이’ 박태환(19.단국대)의 ’명품 영법’은 이미 소문나 있다.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올림픽 자유형에서 체격조건, 힘이 한참 달리는데도 박태환이 10일 오전 중국 베이징 국가아쿠아틱센터에서 자유형 400m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명품 영법이다.  일단 천부적으로 수영선수의 몸을 타고났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이 물을 잘 타고 넘어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유연성과 장거리 수영에 유리하도록 보통 사람의 2배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폐활량이 바로 그것이다.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박태환을 보고 수영 지도자들은 “참 예쁘게 헤엄을 친다”라고 감탄사를 내지른다. 이 유연성은 젊었을 적 무용을 했던 어머니 유성미(51)씨에게 물려받았다.  항상 호흡의 압박을 받는 수영에서 장거리를 주종목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폐활량이다. 보통 사람이 3천∼4천㏄ 가량이라면 박태환의 폐활량은 7천㏄나 된다. 바로 색소폰 주자였던 아버지 박인호(58)씨의 영향을 받았다. 폐활량이 크고 몸이 비지방성이다보니 몸이 물에 뜨는 부력(浮力)도 다른 선수에 비해 훨씬 낫다. 물 위에 더 많이 뜨니 자연스럽게 저항을 덜 받게 되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에 어렸을 때부터 노민상 수영대표팀 총감독에게 배우면서 터득한 영법은 박태환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몸의 중심을 가슴에 두면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모두 호흡하고 좌우 팔, 다리의 힘의 세기가 거의 똑같다. 발차기의 리듬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장거리 수영 선수에게 있어 발은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뿐이지만 박태환은 스트로크를 하면서 발차기를 2회, 4회, 6회로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초반에는 2회 발차기로 페이스를 유지하는 박태환은 막판에는 발차기 횟수를 6회로 늘리며 발로 추진력을 얻는다.

물론 단점도 있다. 허리가 약해 턴 이후 급속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돌핀킥이 약하다. 이를 위해 박태환은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왔지만 세계 최정상급 선수와 비교해서는 아직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또 턴 이후 잠영 거리도 최정상 선수들에 비해 짧다. 잠영은 물 위에서 헤엄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아간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일본의 스즈키 다이치는 배영 100m에서 스타트 이후 35m 이상을 잠영으로 나아가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후 국제수영연맹(FINA)은 잠영 거리를 15m로 제한했다.

마이클 펠프스가 제한 길이인 15m 가까이 잠영으로 빠르게 빠져나오는 반면 박태환은 길어야 10m다. 천식은 거의 치료했지만 비염이 남아 있어 그 이상 잠영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박태환 금메달의 숨은 공신들

특별취재단= 한국 수영 올림픽 도전 44년 만에 나온 첫 금메달은 주인공인 박태환(19.단국대) 혼자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경기는 물론 박태환이 뛰었고, 모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그에게 쏟아지지만 박태환이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뒤에 숨어 노력한 이들이 있었다.

대표팀의 이문삼(34) 물리치료사는 숨은 공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수년 째 수영 대표팀 물리치료사로 일해온 그는 도하아시안게임 직후 박태환이 개인훈련을 선택하며 태릉선수촌에서 나가 후원사인 스피도와 함께 전담팀을 꾸릴 때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박태환의 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대표팀에 남은 그는 지난 2월 박태환이 대표팀에 다시 합류하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타고난 성실함과 유순한 성격을 지녀 물리치료를 할 때는 자기 몸을 어루만지는 것보다 더욱 정성을 다하는 이문삼 물리치료사는 박태환이 몸이 불편할 때면 언제나 곁에 있어왔다. 대표팀 내의 고된 일도 도맡아서 하는 그는 베이징에 도착할 때 공기청정기나 새집증후군 억제품, 코마스크 등을 구하는 몫을 담당했고, 올림픽 선수촌에서도 박태환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컨디션을 꼼꼼히 챙기는 대표팀의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송홍선 박사도 큰 몫을 해냈다. 도하아시안게임 직전부터 수영대표팀에 도움을 준 송 박사는 박태환이 태릉 재입촌을 선택한 뒤 노민상 대표팀 총감독과 함께 밤을 새 가며 24주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짜낸 인물이다. 스피드건으로 좌우 균형을 비교해가며 영법 교정에도 보탬이 됐고 주기적인 젖산 테스트와 스텝 테스트를 실시하며 훈련 과정의 성과도 체크했다. 송 박사는 올림픽 ID카드를 받지 못했지만 베이징에 날아왔고 현지에서 노민상 감독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금메달을 캐내는데 일조했다.

박태환의 후원사인 스피도가 꾸린 전담팀도 조력자 명단에서 빠트릴 수 없다. 작년 초 처음 구성할 때와 비교해 전담 코치와 웨이트트레이너는 바뀌었다. 코치는 박석기 전 수영대표팀 감독에서 유운겸(59) 감독으로 바뀌었고, 웨이트트레이너도 김기홍씨에서 김보상씨로 변했다. 물리치료사인 엄태현씨만 그대로다.

이들은 말 그대로 박태환만을 위해 일을 해왔다. 올 초부터 박태환을 맡은 유 감독은 외부에서 진행하는 훈련 환경이 여의치 않음을 깨닫고 과감히 태릉선수촌 재입촌을 추진해 성사시켰다.
이후 훈련의 모든 것은 노민상 현 대표팀 총감독에게 일임했지만 박태환을 계속 지켜보며 자신이 발견한 약점이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열정을 쏟았다.

김보상 웨이트트레이너는 프로 축구단 트레이너를 경험한 실력파로 태릉선수촌 월계관(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박태환을 비롯한 장거리 파트 선수들을 지도해왔다. 보디빌더처럼 크고 우람한 근육을 키우기보다는 장거리 선수에게 필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근육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엄태현 물리치료사는 박태환이 가장 의지하는 스태프 가운데 하나다. 정통 물리치료가 아닌 ’기(氣)’ 치료처럼 보이는 방법을 쓰는 엄 치료사는 작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부터 꾸준히 박태환과 함께한 인물이다. 1기 전담팀이 와해된 뒤에도 엄태현 치료사는 그대로 남았고, 박태환이 지난 3일 베이징에 들어온 뒤 시내에 숙소를 잡아놓고 선수촌에서 외출한 박태환을 치료하며 금메달 기운을 불어넣어줬다.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출발하는 박태환
 
경기 후 순위표를 보는 긴장되는 순간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포효하는 박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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