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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돌스키, 슬픈 역사의 진실 앞에서 울다

전동키호테 2008. 6. 9. 12:02

[스포탈코리아=클라겐푸르트(오스트리아)] 서호정 기자= 결국 폴란드는 지난 75년 오욕의 역사를 바꾸지 못했다. 지난 월드컵에서의 맞대결 포함 대독일전 4무 11패.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역사의 원수를 무릎 꿇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결국 16번째 대결도 패배였다.

폴란드 입장에선 이날 패배가 더 아쉽고 쓰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독일에게 승리를 안겨준 선제골과 쐐기골의 주인공 루카스 포돌스키는 폴란드계다. 선제골 과정에서 폴란드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트리며 완벽한 찬스를 제공한 미로슬라프 클로제도 폴란드계다. 폴란드는 결국 폴란드에 의해 무너지고 만 셈이다.    붉은색의 폴란드 유니폼이 아닌 독일 유니폼을 입고 뛰는 포돌스키와 클로제는 폴란드 역사의 슬픈 진실을 말한다. 둘은 과거 소련 체제 하의 폴란드 인민공화국 시절 부모와 함께 국가를 탈출, 자유세계로 이주한 케이스다. 47년 사실상 소련의 위성국가인 공산 정권을 세워야 했던 폴란드는 89년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에 무너지기 전까지 사회, 경제 모두 힘겨운 시기였다. 포돌스키와 클로제의 가족 모두 원치 않은 이주를 떠났다.  

 

클로제는 세 살 때인 81년 프랑스로 탈출했다가 옛 조상 중 독일인의 피가 섞인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정착했다. 비록 새 조국을 얻었지만 클로제 가족은 폴란드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았다. 클로제는 어린 시절 집안에서는 폴란드어를 써야 했고 현재도 폴란드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포돌스키 역시 마찬가지다. 2살 때인 87년 이주한 그는 이름 자체도 폴란드식(우카시 포돌스키)이다.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도 폴란드인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독일 축구는 90년대 들어 재능 있는 이주민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게르만에 대한 우월감을 버리는 대신 프랑스나 네덜란드가 누리고 있는 강점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도였다. 과거 게랄트 아사모아가 그랬고, 이번 유로 2008 대표팀에는 포돌스키와 클로제 외에도 케빈 쿠라니, 표트르 프로초프스키가 이민자의 자식이다. 쿠라니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독일-파나마계고 프로초프스키는 또 다른 폴란드계 선수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폴란드 축구팬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선제골을 기록하기 전 포돌스키가 폴란드 수비수에 걸려 넘어졌지만 반칙으로 인정되지 않자 바로 앞에 있던 폴란드 서포터들은 어떤 독일 선수보다 더 강한 야유를 퍼부었다. 야유에 위축된 포돌스키는 이어진 클레멘스 프릿츠의 완벽한 크로스를 정확한 슛으로 연결하지 못하며 흔들렸다.   하지만 전반 20분 맞은 완벽한 찬스를 놓칠 순 없었다. 골을 기록한 뒤 포돌스키는 격한 세레머니를 자제했다. 슬픈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동료들은 달려와 그를 안으며 위로했다. 쐐기 골을 기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포돌스키가 골을 기록할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온 선수는 클로제였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경기 시작 전 뵈르테르제 스타디움으로 오는 길에서 독일 팬들을 도발하던 폴란드 팬들의 노래가 생각났다. " 독일은 폴란드인을 빌려 쓰고 있다네. " 그런 노래를 듣는 독일 팬들은 별달리 반응하지 않고 웃었다. 유럽 축구계에서 포돌스키와 클로제의 사례는 이제 비일비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교체되어 들어와 폴란드의 반격을 이끈 호게르 게레이로는 폴란드가 유로 2008의 성공을 위해 영입한 브라질 귀화 선수였다. 개막전날 포르투갈에게 첫 승을 선사한 데쿠와 페페는 브라질 출신의 귀화 선수였다. 조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유니폼을 입고 조국의 심장을 겨눠야 하는 모습들은 이제 더 익숙한 일이 될 듯 하다.

 

사진=득점 후 눈물을 흘린 포돌스키 ⓒGettyimages/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

 

독일의 침략으로 끝내 2차 세계대전으로 번졌던 불씨 역시 폴란드의 단치히시였으며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태인들중 대부분도 폴란드의 유태인들이었다. 2차 대전 내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며 전후에는 진주해온 소련군에 의해 위성 국가나 다름없는 공산 정권이 세워지기까지 하는 현대사에 큰 고통을 받게된 폴란드였기에 독일에 대한 반감은 우리가 일본에게 품는 적의 이상일것이다. 그런데 폴란드계 선수 독일의 유니폼을 입고, 폴란드를 격침시켰다. 폴란드 또다른 비극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머나먼 유럽의 폴란드와 독일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미 큰 이슈가 되었던 유도스타 추성훈의 사례가 있고, 다시 재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재 취득했지만 한때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될뻔했던 여자 농구의 하은주가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홍명보 대표팀 코치의 면담 설득에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일본 국적을 택해 일본 청소년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전 16세이하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이충성은 축구계 내부에서 충격을 주었다.

 

또한 북한 대표팀의 스타라이커로 우리 쪽 언론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정대세 역시 부모가 모두 경상도 출신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후에 밝혀져 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아벨란제 전 피파 회장과 플라티니 UEFA 회장의 우려처럼 언젠가 국가간의 대항전의 의미가 무색해질만큼 귀화 선수에 의한 국가대표팀의 다국적화를 우려하는 시대에 우리도 이제는 우리의 자원들을 지켜야 한다.  더구나 독일과 폴란드 못지않게 꼬여있는 우리와 일본의 역사적 실타래를 감안했을 때도 이것은 간과해서 안 될 문제이다.

 

손 놓고, 넋 놓고 있다가는 2011년, 2015년 아시안컵 한, 일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득점을 올리고 눈물짓는 일본 대표팀의 선수를 보며 가슴칠 날이 오지 않을것이라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다음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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