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_연예_詩_만화

이혼의 아픔 겪고 재결합한 부부이야기

전동키호테 2005. 9. 12. 08:58

어제는 티브에 "지금만나러 갑니다."라는 해외입양아 부모찾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고 얼마나울었는지.. 

주변의 사는 작은 이야기가 나에게 커다란 도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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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별건가요? 이게 행복이지"… 건배!
"이혼의 아픔이 '행복'을 찾아줬어요"… 이혼의 아픔 겪고 재결합한 부부

2005년의 우리 사회는 화해와 용서를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분열과 갈등, 양극화가 심각한 지경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가족은 흩어지고, 세대는 등을 돌리고, 이념의 벽은 높고, 지역 간에는 깊은 늪이 가로막고 있다는 하소연입니다. 하지만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갈등과 이별의 고통을 넘어, 화합과 재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비가 온 뒤 무지개가 뜨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그런 보통 사람들의 훈훈한 얘기를 부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오늘은 내가 많이 팔았으니까 맥주 쏠게” “밥은 먹었어? 여기는 파리 날리는데, 거기 장사는 어때?”….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런 전화를 나누는 부부가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윤모(50)씨와 오모(47)씨. 부부는 각각 트럭행상을 한다. 남편 윤씨가 새벽 4시쯤 가락시장에서 건어물이나 곶감, 대추 등을 떼오면, 부부는 오전 8시쯤 1t짜리 트럭에 나눠 싣고 아파트나 길거리로 나선다. 귀가 시간은 보통 9시쯤. 지난 9일 밤, 집을 찾아가자 부부는 멸치와 고추장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누가 쏘는 날일까? 부부는 대답 대신 “행복이 뭐 별 거냐. 이게 행복이지”라며 건배를 했다.

두 사람의 알콩달콩 행복은 2003년 8월 재결합하면서 시작됐다. 그전에는 생활 때문에 서로에게 무신경했고, 생활 때문에 헤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생활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여보’와 ‘당신’이, 그리고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윤씨는 8년 전만 해도 월수입 300만원의 중산층이었다. 건어물이나 야채 등을 산지에서 떼와서 재래시장에 납품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의 그늘은 윤씨를 비켜가지 않았다. 잠깐 빚만 갚을 요량으로 카드에 손을 댔다. 윤씨는 “고등학생, 대학생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가 200만원 정도 들었는데, 쓰던 버릇이 있으니까 줄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1개였던 카드가 나중에는 12개까지 늘면서 ‘돌려막기’ 인생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2001년 윤씨가 스트레스성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 살림만 하던 아내는 전혀 사정을 몰랐다. 1억1500만원짜리 집을 팔 지경에 와서야 윤씨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얼마나 힘들게 노력해서 분양 받았는데…. 큰소리로 남편한테 욕도 퍼붓고 매일매일 싸웠어요.”(아내)

남편은 야속함에, 아내는 배신감에 부부 사이는 날로 험악해졌다. 남편은 “혼자서 잘 해결해보려고 한 것”이라고 했지만, 아내는 “일 터지고 나서 의논하는 남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2003년 4월 집을 팔고, 이혼서류에 도장도 찍었다. 그들은 그 해에 이혼한 16만7000쌍 중 한 쌍이었다.

신용불량자가 된 윤씨의 빚은 1억1000만원까지 불어나 있었다. “이혼하고 저 혼자 죽으려고 했어요. 고시원 4층 옥상에서 뛰어내렸는데, 차 위에 떨어져 목숨을 건졌어요. 알약 제초제를 김치에 싸서 먹었는데, 기도가 막혀 토하는 바람에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사는 것도 힘들고 죽는 것도 힘들더군요. 동해 주문진에서 싸구려 옷장사를 시작했습니다.”(남편)

“도장 찍고 나오니까 너무 허망했어요. 죽을 때까지 이혼 같은 것은 안 할 줄 알았어요. 혼자서 술 마시고 밤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때를 떠올리는 아내 오씨에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홀로된 후 남편이 하던 대로 트럭 장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 윤씨는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 새벽녘에 고시원을 나섰다. 몰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온 그의 인기척에 아내가 눈을 떴다. “여보. 나 10분만 여기 누웠다 가면 안 될까?”

오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나가라’고 욕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다음날도 남편이 ‘나 갈까?’ 하는데, 정말 안 된 생각이 들더라고요. 붙잡았어요.”

다시 혼인신고를 한 후 윤씨는 아내에게 “고맙다. 앞으로 너는 마당쇠를 하나 키우는 심정으로 살면 된다”고 약속했다.

윤씨는 지난해 8월 파산신청을 했고, 올 4월 빚을 모두 면책받았다. 요즘엔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일한다. 부부는 일요일에도,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매일 트럭을 끌고 나간다. 부부는 한 달에 70만∼80만원씩 저축해서, 2년 후쯤엔 작은 가게를 차리겠다는 희망을 만들었다.

박란희기자 rhpark@chosun.com   200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