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교회_主_성광

광주 숨-쉼교회 안석 목사

전동키호테 2013. 6. 15. 14:43

 

▲숨-쉼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쉬고 만나고 공부하고 일하는 마을 우물터 같은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안녕하세요. 목사님이 펼치시는 마을 도서관과 찻집 사역을 취재하고 싶어 전화했습니다."
"서울에도 비슷한 교회가 많은데, 꼭 전라도 광주까지 내려오실 것 있을까요."

정중하지만 분명한 취재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물러날 기자는 드물다. 자료 조사로 얻은 정보를 열거하며, '난 당신을 알기 위해 이만큼 노력했으니 만나 보자'고 호소했다. 마지못해 광주 숨-쉼교회 안석 목사는 취재를 승낙하는 듯했다. 하지만 취재 바로 전 안 목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래도 어렵겠다고 했다. 이유도 구체적이었다.

숨-쉼교회(안석 목사·광주시 광산구 수완동 1252)는 교인이 4명뿐인 아주 작은 교회다. 안석 목사와 사모, 중학생 자녀를 빼면, 1명이 함께 예배드리는 셈이다. 그 한 명도 숨-쉼교회가 운영하는 북 카페 매니저다. 교회 문을 연 지 이제 3년째 접어들었으니, 전도를 안(못) 한다는 오해를 살 만했다. 어쩌면 기사를 통해 세간에 알려지면 "그게 교회냐"는 비난을 살 수도 있다. 게다가 설교와 심방, 전도 대신 도서관과 카페를 운영한다고 하면 대번에 "편하겠다"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도 불편했다. 안 목사로서는 기자와 만남을 꺼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지만 기자도 만나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숨-쉼교회가 마을에서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 선교 현장은 웬만한 대형 교회 못지않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왜 교인을 적극적으로 모으지 않는지 궁금했다. 숨-쉼교회가 걷는 길이 성장에 집착하는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약속을 잡고 광주로 달려갔다. 숨-쉼교회는 광산구 신도시 아파트 숲 사이 상가 지역에 자리 잡은 2층짜리 작은 건물이다. 건물 앞쪽에는 작은 화단에 나무로 만든 '복합 문화 공간 숨' 간판이 있고, '책 만세 도서관'과 '북 카페 숨' 입구가 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 벽에 붙은 작은 십자가를 봐야 교회 건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북 카페는 평일 낮인데도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젊은 청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 목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광주에 와서 작은 교회와 마을 도서관, 북 카페를 하면서, 3년 만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광주 혁신학교 학부모 네트워크 위원장과 수완중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YMCA 선교위원회 위원, YWCA 사회적 기업 사업단 운영위원, 사)마을두레 부이사장, 여기에 광산형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사업 심사위원…. 이외에도 그를 따라 다니는 직함이 몇 개가 더 있다. 자리 수집을 즐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게다가 안면도 없고 교회 규모도 극히 작은 외지인에게 감투를 주는 곳이 있을까.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지나는 친화력을 바탕으로 신도시에서 조용하게 만들어 가는 마을 만들기가 반향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숨-쉼교회 안석 목사는 행복한 목회를 하려고 광주로 내려왔다고 했다. 더 많은 교인, 더 힘 있는 사역을 위해 뛰던 걸음을 멈추고 이곳에서 목회의 본질을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행복한 목회를 위해 광주로

안 목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려왔다고 했다. 안 목사는 해군사관학교를 중퇴하고 감리교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목사가 되었다. 사관학교에서 진리와 명예, 희생 등을 강조하지만 표리부동한 문화에 질려 뛰쳐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안 목사가 경험한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대형 교회의 세습 등으로 사회에 지탄을 받을 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더라고요. 여러 목회 현장을 경험했는데, 가는 곳마다 목회자도 교인도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 좋은 목사님이시고 교회도 충분히 큰 교회인데 더 큰 교회가 되기를 부추기는 힘에 밀려 바쁘게 삽니다. 젊은 목사들도 이름 있는 교회 사역자로 들어갔다가 지원받아 개척하거나 규모를 갖춘 교회로 부임하기를 꿈꿉니다. 후배 신학생들을 부목회자로 불러 자신이 과거에 분노하던 일들을 시킵니다. 성장을 위해서. 욕하면서도 따라가는 목회자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안 목사는 2010년 교회를 개척하면서 행복한 목회를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우선 수도권을 벗어나는 것. 경쟁의 상징인 곳에서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감리교의 교세가 작은 전라도와 경상도 중에서 선택하기로 하고 개척 혹은 부임지를 알아보았다. 마침 감리교 호남선교연회 개척 프로젝트에 응모해 광주로 오게 되었다. 교단이 교세가 약한 광주 지역에 1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목회자가 예배당을 건축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기획이었다. 2억 원을 들여 구입한 땅을 주는 것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같은 값이면 수도권이나 감리교 교세가 강한 지역에서 목회하는 편이 낫기에 참여하는 목회자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시작 된 지 1년여 만에 숨-쉼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2층에 올라오면 8평 규모의 작은 예배당이 있다. 이웃과 소통하는 공간과 예배하는 공간을 구분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두 번째 원칙은 주변 교회와 경쟁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주변 교회와 비슷한 예배 방식과 교회 구조, 프로그램을 가지고 개척하면 바로 이웃 교회의 경쟁자가 된다. 그래서 안 목사는 숨-쉼교회만의 이야기와 나눔이 있는 방식으로 교회를 건축하기로 했다. '뻔한 예배당' 대신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는 8평짜리 작은 공간으로 짓고, 마을 도서관과 찻집을 예배 공간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 이웃들이 편하게 쉬면서 교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교회에서는 찾기 어려운 방식, 숨-쉼교회만의 색깔이 있는 공간을 만들면, 이웃 교회와도 경쟁이 아닌 상생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교회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주민들이 반대할 만한 교회를 하자는 다짐이었다. 그러자면 교인들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소통하는 삶이어야 했다.

"교회 출근해서 정말 열심히 심방하고 전도 나가고 설교했는데, 정작 저는 설교하고 교인들에게 권면한 대로 살지 못하더라고요. 아니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설교와 심방 등이 제 모든 삶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이제는 복음을 말이 아니라 삶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해 왔는지 저도 일상에서 복음을 실천하며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책 만세 도서관'은 책만 빌려 가는 곳을 넘어 이웃들이 소통하고 배우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도서관 지기와 상생 대화 모습. (사진제공 숨-쉼교회)

예배 공간은 작게, 도서관·찻집은 크게

안 목사 부부는 마을 사람들과 만날 접점으로 고민 끝에 작은 도서관과 북 카페를 선택했다. 안 목사는 돌이켜 보니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겨우 찾은 게 책을 보고 나누는 일. 그리고 찻집을 하면 이웃들이 더 편하게 찾을 것이고 도서관을 운영할 수익도 기대할 수 있어서 겸하기로 했다.

도서관과 찻집을 운영하는 교회들을 방문해 성공과 실패 이야기를 들었다. 이웃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교회 구석에 있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놓고 좋은 프로그램을 열어도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확인했다. 찻집도 마찬가지. 교회의 색깔을 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실내를 꾸미면 자기 교회 교인만 이용하게 된다. 비신자는 물론 다른 교회 교인들도 방문을 꺼리게 된다. 안 목사는 "한국교회는 다른 교회를 방문하는 것조차 꺼리는 교인을 양산했다"고 했다.

그래서 2010년 문을 연 숨-쉼교회는 마을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책 만세 도서관'과 '북 카페 숨'을 1층에 짓고, 2층에는 기도하고 싶은 이들이 언제든지 와서 기도할 수 있는 8평짜리 작은 예배당을 만들었다. 입구에는 작은 꽃밭을 만들어 제철에 맞는 꽃들을 심어 놓았다. 그리고 이 작은 건물을 '복합 문화 공간 숨'이라 이름 지었다. 안 목사는 "아마 이곳이 교회가 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면 절대 사람들이 안 왔을 것이다"고 말했다. 밖에서 보면 작은 도서관과 예쁜 찻집으로만 보인다. 마을 길가 쪽에서 벽면에 붙은 작은 십자가를 보고서야 비로소 교회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십자가도 우악스럽지 않고 건물과도 잘 어울려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었다.

▲ 안석 목사와 이진숙 사모는 함께 북 카페와 마을 도서관을 운영하며, 이웃을 만나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북 카페 숨에 들어서면 나무로 실내를 꾸며 포근한 느낌을 먼저 받는다. 그리고 주문대 앞에는 '우리는 공정 무역을 지지합니다'라는 포스터가 눈에 띈다. 북 카페 숨에서 파는 모든 음료는 공정 무역이나 유기농 제품이 주를 이룬다. 기자가 찾은 날은 평일 낮이었는데도 찻집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젊은 연인들부터 어린 아이와 함께 와 차를 마시며 책을 보는 아줌마까지 찾는 연령층도 다양했다.

"'처음에는 어! 우리 마을에도 이런 북카페가 있네' 하고 한번 들어와 봅니다. 공정 무역 커피를 파는 것도 생소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열해 놓은 책들을 훑어보겠지요. 성공이나 처세에 관한 책은 한 권도 없습니다. 대신 마을·생명·환경·교육·공유 경제 등 대안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웃들은 차와 커피를 마시다가 '왜 이런 찻집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만남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어 우리 동네에도 이런 카페가 생겼어?' 북카페에 들어서면 우리는 공정 무역을 지지한다는 포스터가 반긴다. 호기심 품고 찾아왔다가 단골이 된 이웃들이 많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한 번 손님이 되면 단골이 되는 북 카페

그렇지만 문을 연 뒤 일주일 가까이 손님이 없었다. 조바심이 날 때 즈음 첫 손님이 방문했다. 그것도 빨간 화분을 사 들고. 그리고 그분은 단골이 되었고, 자녀와 남편과도 자주 들르는 '절친'이 되었다. 이렇게 한 번 찾는 손님은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주로 찾기 때문이고, 이웃들이 이곳을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들은 갈수록 안 목사와 말을 섞는 일이 늘어났다. 커피 맛부터 공정 무역에 관한 소개까지 다양한 질문을 쏟아 낸다. 찻집과 도서관에 비치한 책들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때로는 무료로 개방하는 마을 도서관은 널찍하고 돈을 벌겠다는 찻집은 좁은 거냐고 걱정 어린 말도 건넨다. 그러면서 "사장님은 누구신데 이런 일 하시느냐"는 은근한 질문이 나온다. 안 목사는 자신이 목사이고 이웃과 편하게 그리고 깊게 만나면서,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어 가고 싶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단골들은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때로는 전화를 하거나 서로의 집으로 초대하기로 합니다. 지난 주 일요일에도 단골손님이 저희 가족을 초대해 함께 식사했어요. 아이들 고민거리,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산책과 운동도 했어요. 마을 사람들과 자주 만나면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더 건강한 삶을 위해 좋은 조언도 하고, 신앙 상담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지내는 것을 마을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2, 3년이 흘러가면서 북 카페와 도서관이 숨-쉼교회가 운영한다는 사실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고 했다. 그렇지만 평소 '개독교는 질색'이라는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찾는다. 안 목사는 "처음부터 교회라는 티를 내지 않았어요. 저희 단골 80%는 교회인 줄 알았더라면 절대 안 왔을 것이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북카페 단골의 제안으로 시작한 캠페인 '손전등 산책'. (사진제공 숨-쉼교회)

작년에 숨-쉼교회가 자리 잡은 인근 마을에서 미성년자 성폭력 사고가 발생한 일이 있다. 다들 집값 떨어진다고 걱정하고, 피해자와 가해자 신원을 궁금해 할 때였다. 단골 중 한 분이 안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냐고 했단다. 안 목사가 손님들에게 광고해 도서관에서 '안전한 마을 만들기 주민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손전등 산책'이라는 이름의 거리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손님들이 자기들의 주변에 홍보하고, 안 목사는 아는 분을 통해 웹자보도 만들었다. 밤길에 이웃이 서로에게 손전등이 되자는 취지의 전단지도 손님들과 함께 만들었다. 행사 당일에는 15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우리 모두의 아이입니다"고 외치며 거리 행진을 벌였다. 이웃들이 호응하고, 지자체장과 언론들도 이들의 행진에 동참하고 취재했다.

"이 행사에는 숨-쉼교회 이름이 전혀 안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주도했다는 것은 이 일에 동참한 마을 사람들은 다 압니다. 저희 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저와 그런 일을 상의하는 마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격했습니다. 이런 게 복음으로 사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설교로,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동네에 작은 빛이 되어 주고 싶었고, 또 그렇게 지내서 행복했습니다."

▲도서관과 북카페는 적극적인 이웃들의 제안과 참여로 언제나 북적거린다. 이웃들이 세밀화전시회를 하면서 기타 공연까지 펼쳤다. (사진제공 숨-쉼교회)

마을 사람들과 벌이는 신나는 잔치들

'숨'이라는 복합 문화 공간을 배경으로 안 목사가 마을 사람들과 벌이는 일은 다양하다. 그 첫 출발은 수완중학교 학생들과 펼친 2011년 공정 무역의 날 행사였다. 수완중의 공정 무역을 공부하는 동아리 학생들이 우리 마을에도 공정 무역 제품을 파는 곳이 있는지 조사하다가 북 카페 숨을 방문했다. 학생들은 함께 캠페인을 벌이자고 제안했고, 안 목사는 대환영이었다. 책 만세 도서관과 마당에서 공정 무역을 알리는 행사를 벌였다. 노래 부르는 마을 사람들이 공연하고, 공정 무역 활동가들도 참여했다. 교사들과 동사무소 공무원도 나와 거들었다. 마을 사람들 150명이 참여해 북새통을 이뤘다. 안 목사는 작은 도서관과 찻집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큰 잔치였다고 했다.

수완중 학생들처럼 책 만세 도서관과 북 카페 숨에서 펼친 활동 대부분은 자체 기획한 것이라기보다,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카페 손님 김지연 집행위원장(광주여성영화제)은 도서관에서 매월 셋째 주 금요일 정기적으로 영화 모임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큰 영화제들은 영화만 보고 흩어져서 관객들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며, 마을에서 작은 영화제를 열자고 했다. 마침 도서관은 바닥에 온돌을 깔아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라 안성맞춤이었다.

지금껏 2년 넘게 모임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세 얼간이', '헤어드레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와 같이 생명와 여성, 인권 등을 주제로 한,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를 주로 보았다. 영화를 본 뒤에는 자기의 삶을 담아 영화 평을 나눈다. 영화 보기 모임이 활발해지면서 인근 학교 학생들도 인권 영화를 볼 때면 학교 대신 책 만세 도서관을 이용하게 되었다.

안 목사 내외는 장소와 먹을거리만 제공하는 게 아니다. 함께 참여하면서 이웃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는다. 영화 이야기에 섞여 나오는 이웃들의 삶과 고민을 자연스럽게 듣게 되면서 이웃 한 분 한 분 더 깊이 알아 가게 됐다고 했다.

▲'나눔의 손뜨개' 모임. 뜨개질을 하며 어려운 이웃과 세계를 돕는 일에 동참한다.(사진제공 숨-쉼교회)

'나눔의 손뜨개' 모임은 아동 구호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시작되었다. 주민 대여섯 명이 모여 신생아 모자 등을 떠서 해외 아동들에게 보내는 활동으로 시작했다. 뜨개질을 하며 가족 이야기, 마을 이야기 등을 도란도란 나누면서 친해지기도 했고,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을에 사시는 노인들의 목도리와 모자 등을 떠 드리기로 했다.

취미 활동으로 시작했던 것이 본격적인 마을 활동으로 발전했다. 뜨개질을 잘 하는 동네 분이 강사로 나서고, 학기제도 도입했다. 6개월 단위로 끊어 한 학기에는 뜨개질 기법을 배우면, 다음 학기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한 규방 공예를 배우는 식이다. 자신의 재능과 취미를 이웃과 나눌 수 있어 더욱 의미 있게 여기진다.

▲비폭력대화도 북 카페 단골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이 모임이 발전해 지금은 인근 중학교와 협력해 정규 수업까지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숨-쉼교회)

비폭력 대화와 평화 일구는 마을 도서관

비폭력 대화 워크숍도 역시 북 카페 단골손님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비폭력 대화 프로그램을 인도하는 강사였던 분이 카페와 도서관을 방문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활발하게 드나드는 모습이 좋아 제안했다.

이 워크숍은 처음에는 일반 강좌로 시작했다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발전해 갔다. 10대 청소년들과 부모가 비폭력 대화를 기반으로 평소 털어놓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다양한 놀이를 하며 서로를 알아 간다. 2012년 첫 시작으로 엄마와 딸의 평화로운 관계를 위한 '기린 캠프-모녀 사이'를 진행했다. 지금은 청소년 12명이 참여하는 비폭력 대화 교실을 12주에 걸쳐 진행 중이다. 이후에는 아빠와 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활동들이 이어진다.

또 지역 교사들이 모여 청소년과의 비폭력 대화 방법을 연구하는 모임도 개설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양성된 지도자들이 지역 학교와 도심 속 대안학교 등에서 협의를 거쳐 정규 수업 시간에 '마음이 통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비폭력 대화, 이웃과의 평화를 배우는 일은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본 교육이기도 하지만 복음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갈등이 일어났다면 치유할 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그것을 힘이나 큰 목소리가 아니라 상대방과 마음을 헤아리면서 풀어가는 법을 마을이 함께 배워 가는 일에 우리 교회가 기여해 기쁩니다."

이외에도 마을 사람들과의 아기자기한 활동들이 많다. 이웃과 숨-쉼교회가 문턱 없이 만나는 장면은 카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 손님이 친구를 위한 작은 콘서트를 열겠다고 요청했고, 안 목사는 공간을 내줬다. 전체를 전세 낸 것이 아니라 다른 마을 손님들도 이 콘서트를 구경하는 재미를 즐겼다. 이외에도 인근 학교의 학부모 동아리 모임의 그림 전시회도 열렸고, 광주시 마을 도서관 관련 토론회 등도 개최했다. 요즘에는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몸 운동을 하는 모임도 생겼다.

또 도서관 본연의 기능도 충실하게 하고 있다. 작은 도서관답게 다양한 책을 진열하기보다는 마을·평화·생명·인권·대안 교육, 공유 경제, 사회적 자본과 같은 분야의 책들을 집중 배치했다. 이웃들도 집에서 보는 책을 내놓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한 분은 수백만 원어치 책을 기부하기도 했다.

"개척 초기에 저희 가족만 주도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처럼 다양한 활동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또 우리가 뭔가를 기획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오라고 하면 이웃들도 쉽게 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한발 물러서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기린 캠프 - 모녀 사이' 진행 모습. 다음엔 아빠와 아들이 함께 하는 가족 캠프도 열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 숨-쉼교회)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숨-쉼교회

교회 이름 '쉼'처럼 마을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큰 교회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많은 일들을 아주 작은 교회, 재정이 많지 않은 교회도 충분히 마을과 교감하면서 마을 선교를 펼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안 목사는 "성장이라는 욕심만 내려놓으면 작은 교회도 충분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 안 목사는 성장에 관한 욕심, 전도에 대한 마음을 비웠을까. 안 목사는 "이 문제가 우리에게 늘 숙제였고, 갈등도 많았다"고 했다. 아주 가깝게 지내며 신앙 상담까지 하고 있는 이들에게 함께할 것을 권유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스스로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자원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무리하게 청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웃으로 만나며 깊게 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도 교인을 늘리기 위해 그동안 활동을 펼친 것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 것도 피하고 싶었다.

▲"마을을 목회하는 마음으로 이웃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앙 공동체로 함께 할 이들도 만날 것입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from newsnjoy  *^^*

진정성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이웃에게 다가가는 숨-쉼교회를 마을은 물론 광주시 다른 지역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 특히 마을 도서관을 하려는 다른 지역 지자체나 시민단체에서 수시로 방문한다. 올해에는 이웃 구청에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12억 원을 들여 주민 커뮤니티 센터를 지었는데, 운영할 주체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조건도 좋았다. 수익금은 전액 가져가고 운영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숨-쉼교회는 여력이 없다며 이 제안을 거절했다. 마을 만들기는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이끌어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이사 온 지 3년 밖에 안 된 외지인에게 그런 제안을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더구나 저희는 아주 작은 교회입니다. 저희 활동을 이웃들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중형 교회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런 활동은 참 쉽습니다. 굳이 교회가 운영한다는 티를 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이웃들이 먼저 알아주고 인정해 줍니다. 교회 음악을 틀고 간판에 교회 이름 붙이는 대신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에 맞게만 운영한다면, 이웃들이 방문할수록 예수님을 믿는 삶을 보고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