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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용사의 어머니' 윤청자씨 성금으로 장만한 '3·26 기관총'

전동키호테 2011. 3. 26. 07:42

아들을 가슴에 묻고… 어머니는 총을 나라에 바쳤다
나라를 잘 지켜 달라고… 다시는 나 같은 엄마가 없게 해달라고
국회의원에 호통치던 어머니가, 기관총을 부여잡고 웁니다

'천안함 용사의 어머니' 윤청자씨 성금으로 장만한 '3·26 기관총' 초계함에 장착
"이 바다 지키는데 써주오"… '3·26 기관총' 18정 만들어 2함대 초계함에 2정씩 장착
"자랑할 만한 일 아니다" 언론 인터뷰 끝내 사양

칼처럼 매서운 서해 바닷바람 속에서도 어머니는 흐트러짐 없이 꿋꿋했다. 꼭 1년 전 그 서해 바다에서 전사한 막내아들을 떠내 보내고 받은 사망보상금이 초계함의 기관총이 돼 돌아온 날이다.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꾹꾹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그랬던 어머니가 기관총을 만지는 순간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평기야, 평기야."
아들을 만지듯 손으로 기관총을 쓰다듬으며, 또 뺨으로 비비며 어머니는 울부짖었다. 세상을 향해서는 누구보다 의연하게 버텼던 그였지만, 어머니 윤청자(68)씨는 아들의 '흔적' 앞에선 너무나 약한 여자였다.

아들을 조국에 바친 어머니의 주름진 따뜻한 손이 닿는 순간 쇠로 만든 차가운 기관총은 그 아들의 생명을 얻었다. 어머니 손길에는 내 아들을 대신해 이 바다와 땅의 젊은이들을 지켜달라는 소망이 담겼다. 천안함 폭침으로 막내아들(故 민평기 상사)을 잃은 윤청자(68)씨가 25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정박한 1200t급 초계함 영주함에서 아들 사망보상금으로 기증한 국산 K-6 기관총을 잡고 눈물 흘리고 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25일 오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천안함 46용사 중 한명인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씨가 기탁한 성금으로 마련된 기관총 기증식이 열렸다. 이 기관총은 천안함 사건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3·26 기관총'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해군 관계자는 "윤씨가 기탁한 성금 1억898만8000원으로 K-6 기관총 18정을 구입해 2함대 소속 초계함에 2정씩 장착했다"며 "함포를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깝게 접근한 적 격퇴와 기뢰 제거 등 임무를 맡게 될 것"이라 했다.

윤씨는 작년 6월 청와대 방문 때 "우리 땅을 침범하는 적을 응징하는 데 써 달라"며 아들 사망보상금 1억원을,7월엔 익명의 중소기업 임직원들이 보낸 성금 898만8000원을 기탁했다.

그해 9월 추석을 맞아 윤씨 집을 방문한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K-6 기관총 도입 계획을 알리며 "해군 장병들 사이에 총 이름을 '민평기 기관총'으로 하자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지만, 윤씨는 천안함 46용사 모두를 기억할 수 있도록 '3·26'이라는 숫자에 더 의미를 부여해 달라는 뜻을 밝혔었다.

충남 부여에서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윤씨는 천안함 사건 이후 세상의 '부조리'를 향해 용감하게 맞섰다. 작년 5월 아들 영결식장에서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게 "의원님, 왜 북한에 퍼 주십니까"라고 항의했고, 6월엔 참여연대를 찾아가 "이북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말해도 한이 풀릴까 모르겠는데 왜 이북 편을 드느냐. 내 한을 좀 풀어 달라"며 아들뻘인 이태호 협동사무처장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25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 정박한 영주함(1200t급)에서 열린 ‘3.26 기관총’ 기증식에서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오른쪽에서 두번째)씨가 기관총을 붙잡고 있다. 윤씨 왼쪽은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연합뉴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윤씨는 마음 여린 어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부대 입구에서부터 버스를 함께 타고 온 김성찬 참모총장은 행사장으로 이어지는 70~80m 길에서 줄곧 윤씨 손을 꼭 잡았다. 윤씨는 기증식 후 김 총장 등과 함께 천안함과 같은 1200t급 초계함인 '영주함'에 올랐다. 배에 올라 3·26 기관총 앞에 선 윤씨에게 김 총장이 "한번 만져보고 가십시오"라 했고, 말없이 기관총을 쓰다듬던 윤씨는 끝내 오열했다. 주변 사람들은 눈물을 참으려는 듯 먼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김 총장은 "북한은 언젠가 또 도발할 겁니다. 아드님 뜻을 받들어 저희가 반드시 응징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윤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안함급 초계함 영주함 “다시는 비극 없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한 지 꼭 1년이 됐다. 이 땅에, 이 바다에 다시는 조국의 아들과 딸이 북한의 기습적 도발에 꽃다운 목숨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후배 장병들의 굳은 결의가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천안함 사건 발생 1주년 하루 전인 25일 초계함 ‘영주함’(함장 이동희 중령·맨 왼쪽) 장병들이 경기도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 전사 장병들의 희생을 기리며 경례하고 있다. 영주함은 천안함과 같은 1200t급 초계함으로, 천안함 폭침으로 숨진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씨가 기증한 기관총이 이날 설치됐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윤씨는 이날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처음 성금을 낼 때부터 무기명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던 그였다. "밖으로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며 언론과의 인터뷰도 끝내 사양했다. 해군 관계자가 "차로 기증식에 모시겠다"고 제안했지만 윤씨는 "해군은 바쁜 사람들이고 아들 같은 사람들인데 번거롭게 그럴 것 없다"며 극구 사양했다. 고 민 상사의 형 광기(41)씨는 "어머니가 '국민이 보내준 큰 성원에 비하면 너무 작은 정성이라 송구할 따름'이라 하셨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윤씨, 고 민 상사의 형 광기씨와 그 가족, 누나 내외 등 유가족 8명과 해군 장병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김 총장은 기증식에서 "이 총에는 캄캄한 심연의 바다 밑에서도 마지막까지 조국을 염려했던 한 아들의 못다 한 꿈을 대신 이루려는 어머니의 고귀한 뜻이 담겨 있다"며 "다시는 이 땅의 어머니들이 눈물 흘리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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