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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챔피언십 우승’ 야생마_양용은

전동키호테 2009. 8. 17. 11:41

'바람의 아들-야생마-잡초….'
 
총 57개 대회만에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로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을 제패한 양용은은 별명이 여러 개다. 그러나 이제는 '타이거 잡는 바람의 아들'로 불러야 할 것 같다.
 
1972년 제주에서 태어난 양용은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활비를 벌고자 친구 소개로 제주시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공 줍는 일을 하며 골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골프장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굴착기를 배우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건설사에 들어갔지만 사고로 한쪽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2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다 보충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1991년 제대한 그는 제주시 오라골프장 연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프로 선수들의 동작을 눈으로 익히며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조명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연습장에서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라이트를 끌어다 놓고 연습한 뒤 낮에는 아르바이트일을 하는 고단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골프는 돈 있는 부자들이나 하는 운동이다. 농사나 같이 짓자"며 골프를 말렸지만 양용은은 하우스용 파이프를 골프채 삼아 몰래 연습을 하곤 했다. 늦깎이 골퍼인데다 잡초처럼 성장한 선수라고 해서 골프계에서는 그를 '제2의 최경주'로 부른다.
 
1996년 프로테스트에서 탈락했으나 결원이 생겨 추가 모집에 합격하는 행운을 누렸고, 1997년 투어에 참가할 60명 선발전에서는 60등으로 턱걸이 합격했다. 1999년 신인왕을 했으나 상금액이 1800만원에 불과, 셋방살이를 전전했다. 이 때문에 생활이 안되는 투어프로를 잡시 접고 레슨 프로를 하기도 했다.
 
2002년 SBS 최강전에서는 연장끝에 극적인 이글로 박노석-최상호를 따돌리고 첫 우승을 차지했고, 2004년 일본에 진출한 뒤 4승을 거뒀다. 2006년 아들 돌잔치를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그때 열린 코오롱-하나은행 한국오픈에 출전해 우승하면서 유러피언골프(EPGA) 투어HSBC 챔피언스 출전권을 따냈다. 그해 11월 이 대회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7연승을 저지하고 깜짝 우승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때 '타이거를 잡는 야생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PGA투어의 문을 두드렸다. 양용은은 2007년 '2전3기' 끝에 PGA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2008년 예선으로 밀려난 끝에 2009년에야 다시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퀄리파잉스쿨 성적이 좋지 않아 대기 선수로 있다가 출전 기회를 얻은 양용은은 지난 3월 열린 PGA투어 혼다클래식을 제패하며 2006년 HSBC 챔피언스 정상에 오른 이후 28개월 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후 15개 대회만에 PGA챔피언십에서 황제 우즈와 맞대결을 펼친 끝에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보란듯이 정상에 올랐다. 쾌거 그 자체였다.    최창호기자 [ch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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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아들'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이 '절대강자' 타이거 우즈(미국)를 무너뜨린 한방은 14번홀(파4)에서 터진 이글샷이었다.  공동 선두를 이루며 팽팽하게 맞서던 둘은 티샷으로 그린에 볼을 올릴 수 있는 301야드 짜리 파4홀인 14번홀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먼저 티잉 그라운드에 오른 양용은은 그린을 향해 곧장 드라이버샷을 쏘아 올렸지만 그린 오른쪽 가드 벙커로 날아갔다. 다행히 벙커에 빠지지 않았지만 공이 놓인 자리는 그리 좋지 않았다.

  

우즈 역시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지만 볼은 벙커에 빠졌다.
워낙 벙커샷을 잘하는 우즈는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벙커에서 걷어올린 볼은 홀 옆 2m 거리에 멈춰섰다. 버디 찬스. 핀에서 약 20m를 남긴 양용은은 풀이 길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굴리는 칩샷을 선택했다. 살짝 떠올랐다가 그린에 떨어진 볼은 깃대를 향해 한참 굴러갔다. 무난하게 버디 기회는 만들어내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양용은의 얼굴에 내비치는 순간 볼은 거짓말처럼 깃대 사이를 파고 들며 컵 속으로 사라졌다.

하늘을 향해 어퍼컷과 훅 펀치를 마구 휘두르며 환호성을 지르는 양용은을 보고 '황제' 우즈도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버디 퍼트를 실패하면 졸지에 2타차 2위로 밀리는 위기 상황이었다. 우즈는 버디 퍼트를 집어넣어 1타차로 따라 붙었지만 승부의 균형은 이미 양용은 쪽으로 기운 듯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바로 앞 13번홀(파3)에서 우즈가 3m 버디 퍼트를 놓친 반면 티샷을 벙커에 빠트린 양용은이 2m 파파트를 성공시킨 것도 양용은의 자신감을 북돋웠다.

1타차 살얼음 승부는 끝까지 계속됐다. 17번홀(파3)에서 양용은은 클럽 선택을 잘못한데다 버디 퍼트마저 너무 짧게 쳐 보기 위기를 맞았지만 우즈 역시 클럽 선택 실수로 그린을 넘겨버린 뒤 두번째샷마저 좋지 않아 파세이브에 실패, 양용은을 도왔다.

승부는 사실상 18번홀 두번째샷에서 갈렸다. 206야드를 남기고 하이브리드 클럽을 잡은 양용은은 홀을 곧바로 노리는 공격적인 샷을 구사했고 볼은 홀 옆에 떨어져 2m 버디 기회가 됐다.

버디를 잡아야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우즈는 그린 왼쪽에 바짝 붙여 꽂은 핀을 향해 치다가 러프에 빠트리고 말았다. 우즈가 러프에서 친 세번째샷이 홀을 비켜가자 비로소 양용은의 우승은 현실이 됐다. 두번의 퍼팅으로 파만 잡아도 우승이지만 양용은은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멋진 버디 세리머니로 우승을 자축했다.

이글샷 한방으로 잡은 리드를 끝까지 지켜낸 양용은의 뚝심이 승부의 열쇠였다. c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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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국경일로 정했으면 좋겠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성기욱 부회장(62)은 양용은의 메이저 대회 제패에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성 부회장은 "협회의 슬로건이 '메이저 타이틀 획득, 그날을 위해서'이다. 협회가 출범한 지 42년 만에 목표를 달성해 너무 기쁘다"고 강조했다.

1973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 출전했던 한장상(68) KPGA 고문은 "눈물이 난다. 감회가 새롭다. 한국인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 나간 게 36년 전인데 이제는 메이저 챔피언이 탄생했다. 한국 골프의 최고의 날이다. 특히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우승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국내 남자프로골프계는 한국 남자 골프의 자존심을 지켜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며 환영했다. KPGA투어 최다승 기록을 보유중인 최상호(54) 수석부회장은 "양용은이 말할 수 없이 큰 선물을 안겨줬다. 91년 역사를 자랑하는 PGA챔피언십에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흥분했다.

선수들도 양용은의 우승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선수협 회장을 맡고 있는 박도규(39)는 "내가 우승한 것처럼 흥분된다. 한국 남자 골프의 위상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 후배이지만 너무 자랑스럽다"며 "그동안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의 기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번 우승으로 다시는 그런 소리를 안 듣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이밖에 대부분의 남자선수들은 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으로 한국 여자골프가 발전했듯 이번 양용은의 우승으로 '우리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며 기뻐했다.

문승진 기자 [tigersj@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