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교회_主_성광

중국 선교사가 된 카이스트 박사

전동키호테 2009. 1. 1. 20:41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카이스트 출신의 한 화학공학 박사가 어느 날 무엇에 홀린 듯 ’성령’에 이끌려 중국으로 건너가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인공은 최하진(48.가명) 박사. 최 박사는 자신의 신앙이 바뀌게 된 과정 등을 담아 출간한 ’네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규장 펴냄)에서 중국 당국이 선교를 불허함에 따라 지명이나 인명 등 신원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최 박사는 29세인 1989년 카이스트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덕 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골프와 명품 오디오 기기, 고스톱에 빠져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과 함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새해 휴가차 한국에 온 그는 1일 “돈과 출세의 노예가 되어가는 모습이 싫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인 다운 생활을 못한 것을 회개했기에 버릴 수 있었다”며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기도하며 고민하고 갈등한 끝에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에 나간 ’모태 신앙’이었지만 발목까지만 교회에 담그고 세상을 좇아 살았다”며 “어느 날 성경 창세기를 읽다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가 하란에서 죽었더라고 쓴 대목을 보고 나도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겠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선교사가 된 계기를 설명했다.

최 박사는 당시 예정됐던 스탠퍼드 대학교의 박사 후 과정과 병행해 중국 선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여러 차례 체험했다고 소개했다.

중국에서 사용할 경비 6천만 원 중 1천만 원이 부족했는데 출발 당일 후원자가 나서는가 하면 생각지도 않았던 후원금 1억원이 들어와 중국의 기숙학교 부지를 마련할 수 있게 되자 인근 지역이 시 당국에 의해 학교 지역으로 지정되는 ’특혜’를 받기도 했다.

“부모가 자녀 교육을 생각지 않고 무책임하게 중국으로 건너갔다거나 선교가 제 본분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간절하게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응답해줬습니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던지 차라리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서울 압구정동 유명 백화점의 VIP 고객이던 최 박사의 아내는 중국에 세운 기숙학교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전담하고 있으며 2002년에는 어린 딸이 폐렴으로 크게 앓아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03년 중국의 북동부 지역에서 개교한 ’열방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사가 된 그는 학생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신앙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선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큰 고통을 당했던 중국 땅에 기독교의 모자를 쓴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전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제자들에게 허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진정한 생명을 넣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본부를 둔 선교 단체인 ’돈 미션(Dawn Mission)’을 통해 주로 후원을 받는 그는 제자들과 함께 쓰촨성(四川省)에 열방학교를 추가로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선교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규장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