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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의 슈바이처 선우경식' 청진기 내려놓다

전동키호테 2008. 4. 19. 13:46

'노숙인의 슈바이처 선우경식' 청진기 내려놓다

 

요셉의원 원장 암투병 끝에 별세…가난한 이웃들에게 21년간 무료 의료 봉사
‘노숙인들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요셉병원 원장 선우경식 박사가 오랜 암투병 끝에 쓰러져 강남성모병원에서 18일 오전 4시 별세했다. 향년 63세.

선우 원장은 지난 2005년 위암 판정을 받은 뒤 3년 간에 걸쳐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받아왔으며 잠시 호전돼 진료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병세가 다시 악화하면서 뇌사상태에 빠져 서울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4반세기 동안 무료 의료봉사를 펼쳤던 선우 박사는 ‘극빈자들의 아버지, 영등포 슈바이처’로 불렸다. 1969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한 선우 원장은 73년 미국으로 건너가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센터에서 3년간 선진 의학을 배웠고 당시 미국의 저명한 병원들로부터 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모두 뿌리치고 귀국했다. 이후 83년 한남대학교 의과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무료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해 운명을 달리하기까지 쉬지 않고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87년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요셉의원을 개원한 이후 영세민,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알코올 중독자 등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이들로부터 ‘슈바이처’라고 칭송받았다. 97년에는 요셉의원을 영등포역 뒤편에 위치한 일명 ‘쪽방촌’으로 옮겨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빈민 42만여명이 요셉병원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왔던 선우 박사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봉사활동을 해왔다. 선우 박사는 시동이 자주 꺼지는 낡은 차를 몰고 다녔으며 주위에서 새 차를 사준다고 해도 “그 돈으로 의약품을 사달라”고 거부할 정도로 봉사에 헌신했다. 선우 박사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던 몇몇 노숙자들은 재활을 거쳐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도 했다.

선우 박사의 빈소를 찾은 임모(47)씨는 “선우박사는 나를 치료해준 의사가 아니라 나에게 새 삶을 찾게 해준 아버지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약속을 어기고 또 술을 마시고 돌아와도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받아줬던 덕분에 지금은 일을 하고 어엿한 가장이 될 수 있었다”고 선우 박사를 회상했다.

선우 박사의 오랜 친구 류양옥(64) 화백은 “고인은 살레시오회를 창시한 ‘돈 조반니 보스코’와 같은 성인으로 아마도 다시는 그런 분이 없을 것이다”라며 “다른 사람들은 사랑을 지킨다고 힘쓰는데 선우 박사는 사랑을 나누는데 평생을 보냈다”고 말했다.

선우 박사는 가톨릭대상(사랑부문), 제1회 한미 참의료인상, 호암상 사회봉사상, 대한결핵협회 복십자대상(봉사부문) 등을 수상했다.

평생 가톨릭 신자로 살아온 고인의 장례는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장으로 치러진다. 21일 오전9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 주교좌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열릴 예정이며,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장지는 경기 양주 천주교 길음동성당내 묘원. (02)590-2352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