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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얼굴을 그린 사람들 얘기

전동키호테 2008. 3. 2. 10:25

청와대에 걸린 역대 대통령 초상화. 오른쪽부터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전기병 기자 

 

지난 2월 1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공개됐다. 퇴임을 닷새 앞두고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작품이 선보였다. 퇴임한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리는 곳은 국무회의가 열리는 청와대

본관 세종실 앞 복도의 벽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화는 김대중 전 대통령 초상화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청와대의 주인은 바뀌지만 초상화는 남는다.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대통령들의 초상화는 누구의 손에서 탄생했을까? 

 

    • ▲ 이종구 화백

      노무현 초상화 = 이종구 화백, “서민 정신 담아달라” 주문… 식사 내내 고충 토로

      노 대통령 “머리 너무 단정하고, 피부 너무 깨끗” 지적

      이종구(53) 화백은 농촌 그림만 20년 넘게 그려온 민중미술가다. 농부의 주름진 얼굴을 캔버스가 아닌

      헌 쌀부대에 표현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화백은 지금까지 유명인, 특히 대통령의 초상화는 그려

      본 적이 없었다. “작년 4월 중순에 청와대 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노 전 대통령을 10년 전쯤 제 개인전

      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인상 깊게 보신 것 같아요.”


      이 화백은 작년 4월 말 관저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초상화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께서 초상화에 농민의 혼, 서민의 정신을 담아달라고 했다”며 “가장 서민적인 그림을

      그리던 화가에게 초상화를 부탁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1시간20분 동안 이어진 식사시간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고충도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라크 파병·FTA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해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화백은 초상화를 그려 나가면서 서명도 하지 않은 미완성

      초상화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내 평을 들었다고 한다. “머리칼이 너무 단정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

      다. 피부가 지나치게 깨끗하게 표현됐다고도 하셨어요. 농촌 사랑방에서 담배 피고 농담하는 보통 서민

      으로 그려지길 바라셨는데…. 대통령이니까 ‘있어 보이게’ 그리려 했던 게 마음에 안 드셨나 봅니다.

      ”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자신의 초상화를 30분 정도 꼼꼼히 살펴봤다고 한다.


      이 화백은 “초상화에 두 달 정도 시간을 쏟았으나 붓이 자유롭게 놀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했다.

      청와대에 걸려 다른 그림들과 비교가 될 것을 생각하니 더 잘 그리고 싶었고, 후세에 오래 남으리라는

      생각에 붓에 고민이 많이 담겼던 탓이다. “초상화에서 부드러움과 카리스마, 편안함과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지기가 쉽지 않았어요. 노 전 대통령이 쌍꺼풀과 주름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게

      부드럽게 표현했습니다. 넥타이도 원래 회색이었는데 젊은 대통령을 상징하기 위해 빨간색으로 바꿨죠.”

      이 화백은 노 대통령 초상화를 그리고 난 후 한 정부 기관에서 역대 기관장들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사양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그렸다는 명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다. “내 마음은 농촌에 있고 노 전 대통령의 마음도 같았어요. 마음이 맞아서 그릴 수 있었던 초상화였죠.

      대통령의 얼굴에 농민의 마음을 담은, 특별한 초상화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 정형모 화백

      김대중·전두환 초상화 = 정형모 화백, DJ는 진지하고 全은 호탕…

      특별한 요구는 없어 계속 덧칠하면 망치는 줄 알면서도 붓 놓기 힘들었다

      정형모(72) 화백은 김대중·전두환 두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다. 두 번 모두 임기 말에 “대통령의 초상화

      를 그려보겠느냐”는 청와대의 제안을 받고는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영광스러웠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 아닌가? 전두환·김대중 전 대통령 초상화를 그리기 전에

      고 육영수 여사를 그린 적이 있어. 그게 대통령 초상화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싶어.”


      정형모 화백이 육영수 여사를 그린 것은 19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한 육 여사에 대해

      개인적 조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 지인이 육영수 여사 초상화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전달

      했고, 매우 흡족해한 박 전 대통령은 그 후 정 화백에게 육 여사의 영정을 비롯해 박 전 대통령의 기념화

      제작까지 3년 동안 ‘청와대 그림’을 맡겼다. 정 화백은 “박 전 대통령이 격려 해주신 덕분에 유명세도

      타고 대통령 초상화도 두 번이나 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초상화를 그릴 때 두 전 대통령 모두 특별한

      요구사항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정 화백은 “스스로 삼위일체를 이루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나와 그림 속 주인인 대통령이 만족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는 이들의 공감까지 얻어야 하니

      삼위일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의 초상화라고 해서 너무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

      이면서도 인품이 드러나게 그렸다”고 덧붙였다.


      정 화백은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두 전 대통령를 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경호가 삼엄하지

      않아서 오히려 놀랐다고 한다. 상대방이 예술가여서 그런지 두 분 다 부드럽게 대해줘서 마음이 편했단

      다. 전 전 대통령은 군인 출신답게 호탕하고 활달했고, 김 전 대통령은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고 진지하

      게 이어나갔다고 기억하고 있다. 초상화는 사진을 보면서 2~3개월간 그렸다. 정 화백은 “붓을 놓기가

      힘들었다”고 말한다. 계속 덧칠하면 작품을 망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욕심이 났다. 청와대에 영구히 걸릴

      작품이라는 생각에 붓끝을 멈추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싫은 소리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그렸지.

      내가 대통령이라면 어떤 초상화를 원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산모가 아이를 낳는 심정을 느꼈다고

      할까? 청와대에 그림을 보낼 때는 왠지 섭섭하더라고.” 

       

       

      ▲ 이원희 화백

      김영삼 초상화 = 이원희 화백, “화가가 직접 대화 나눠봐야” 고집 부려 1시간 독대
      너무 솔직해 놀라… 내가 그렸지만 마음에 안 들어

      이원희(52) 화백은 임기 말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1시간 가량 독대를 했다.

      직접 대화를 나눠봐야 그릴 수 있다는 이 화백의 고집 때문에 성사된 자리였다. 이 화백은 “당시 내가

      대학 교수(현재 대구 계명대 미술대 학장)라니까 김 전 대통령이 대학 다닐 때 이야기를 했다”며 “친구들

      술을 사주다가 전당포에 물건을 맡긴 얘기도 했는데 대통령이 저렇게 솔직해도 되는가 싶어 놀랐다”고

      말했다. 대담을 마치고 나오니 밖에서 기다리던 총무수석이 “국정원장과의 독대가 30분인데, 당신은

      1시간을 했다. 대단하다”며 농을 할 정도였다. 이 화백은 초상화를 그리기 앞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부 결이나 작은 안면 근육의 움직임까지도 세세하게

      스케치할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피부가 아기처럼 곱고 입 꼬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고 한다.    

       
      여느 작가들과 달리 이 화백은 대통령에게 직접 초상화를 전달했다. “초상화는 넥타이와 배경색을 달리

      해 두 점을 그려갔어요. 마음에 드시는 걸로 결정하라고 말씀 드렸지요. 수정해 달라는 말은 없었고, 웃

      으시며 ‘좋다’고만 짧게 말했어요. 아마 임기 말에 여러 가지 문제로 어수선해서 초상화를 자세히 평할

      여유가 없지 않았나 싶어요.”  이 화백은 지금도 김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맘에 들지 않는다. 당초 계획보

      다 작업 기간은 늘어났지만 여러모로 자신의 ‘베스트’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는 “다시 그릴 수 있다면

      새 작품을 걸고 싶다”며 “대통령은 물러나지만 그림은 그 자리에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대통령을 그

      리든 국회의원을 그리든 시간이 지나 주인공은 잊혀질 수 있겠지만 그림의 가치는 변치 않는다는 게 이

      화백의 생각이다.


      이 화백은 “우리나라 대통령 초상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백악관에 걸린 역대 대통령 초상화

      는 집무 모습이나 연설하는 모습 등을 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하나 같이 영정형으로 그려졌다는 것이

      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바라건대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초상화로 남겼으면 좋겠어요. 역사 속에

      살아있는 기록이 되도록 말이죠.” 

       

      노태우 초상화 = 김형근 화백, “잘 부탁한다” 악수만 하고 그냥 나가려 해 당황

      눈빛 표현 힘들어… 그림 값은 섭섭지 않을 만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다른 전 대통령의 것과 다르다. 배경을 자세히 보면 봉황 한 쌍이 마주보고

      있다. 후광이 비치는 듯 띠가 둘러져 있기도 하다. “대통령의 인물이 중요하지만 배경도 신경을 많이 썼

      지. 황금색으로 칠한 건 영원히 변치 않는 황금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였어. 퇴임하는 대통령이지만

      후대에 길이 기억되라는 뜻이지. 봉황은 알다시피 대통령의 상징이라서 넣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초

      상화를 그린 김형근(78) 화백의 회상이다.


      김 화백에 따르면 초상화 제작 시 노 전 대통령은 특별한 요구사항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잘 부탁한

      다”는 인사만 남겼다고 한다. “청와대에 초청 받아 갔을 때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봤지. 악수 한번 하고

      그분이 나가려는 거야. 내가 ‘제 앞에 몇 번 앉아 주셔야 하는데…’ 라며 무례하게도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어. 사진만 보고 그릴 재주는 없었거든. 허허.”


      김 화백은 “대통령의 초상화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고 했다. 다만 오래 보관될 작품이니 오래 보고 즐길

      수 있도록 그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초상화 속 주인공이 늙는다 해도 고유의 인상은 변함이 없어야 한

      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눈빛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눈빛이 아니었어. 날카

      로우면서도 인자했지. 묘했어. 사진을 하도 뚫어져라 봐서 아직도 얼굴이 눈에 선하네.” 그는 “노 전 대통

      령의 초상화에서 ‘눈빛’을 표현하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지금이야 대통령 사진을 인터넷에서 흔히 구할 수 있지만 초상화는 다르지. 기계가 만들어내는 사진과

      사람 손으로 재탄생 되는 그림이 어디 같나? 대통령 초상화는 당시의 모습을 찍어 내듯이 그리는 게 아니

      야. 평소의 인품을 최대한 살리면서 50세 정도의 연령에 맞게 상상력을 보태 그리는 거야.”

      초상화는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차로 가져갔다. 나중에 “노 전 대통령이 상당히 만족했다”고 비서관을

      통해 전해 들었다. 막힘 없이 대답하던 그가 “초상화 값으로 얼마를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망설였다.

      그는 “섭섭하지 않게 받았다”고만 말했다. 

       

      ▲ 고 김인승 화백

      화백들은 떠나고 초상화만 남아
      이승만ㆍ윤보선ㆍ박정희 초상화 = 고 김인승 화백 , 최규하 초상화 = 고 박득순 화백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 중 이승만·윤보선·박정희 전 대통령 세 명을 그린 사람은 고 김인승화백이다.

      2001년에 세상을 떠난 김인승 화백은 탄탄한 데생과 섬세한 붓질로 인물을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는 평가

      를 받고 있다. 그러나 친일미술인 모임인 단광회(丹光會)에서 활동하면서 ‘조선징병제시행기념 기록화’

      라는 친일 미술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고 박득순 화백의 손에 의해 탄생

      했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사실적 인물 표현과 대상의 심리까지 꿰뚫는 묘사로 유명하다. 사실주의 작가

      로 유명한 박 화백은 광복 후 서울대학·수도여자사범대 등에서 교편을 잡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weekly chosun 1995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