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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뛰어넘는 '청와대 실록'

전동키호테 2008. 2. 29. 11:44

조선왕조실록 뛰어넘는 '청와대 실록'

대통령이 쓴 전화 메모까지 史料로 수거
인터넷 댓글도 포함… 최장 30년 비공개
기록관들이 사석에서의 행동까지 모두 문서화
노무현 前대통령 기록물 376만건… 역대 최다

 

역대 대통령들 중 100년 뒤 사극(史劇)에서 가장 생생하게 표현될 사람은 누굴까. 장기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 아니면 필생의 라이벌로 대결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정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일거수일투족이 사관(史官·기록관리비서관)에 의해 기록된 최초의 대통령이다. 18년간 집권한 박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은 3만7614건에 불과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5년 동안 무려 376만 건의 기록을 남겼다. 역대 대통령 기록물을 모두 합친 것(33만 건)의 10배가 넘는다. 노 전 대통령은 공식행사나 사석(私席)에서의 행동까지 모두 문서화됐다. 언론에서 보도한 '바깥에서 본' 대통령 모습이 아닌 청와대의 기록관들이 '안에서 본 기록들'이다. 이 기록들은 모두 경기도 성남의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된다.

대통령기록관 임상경 관장(전 기록관리비서관)은 "대통령이 되면 메모지 한 장 버리지 못한다"며 "전화 통화 뒤 받아 적은 메모지까지 모두 사료로 수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실록도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만든 모든 문서가 곧 대통령기록관으로 넘어간다. 조선왕조실록을 뛰어넘는 대통령 실록(實錄)이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 대통령기록관 서고에서 직원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은 376만 건으로, 이를 분류·정리하는 데 1년 넘게 걸릴 전망이다.

* 대통령기록관 제공

 

대통령의 '댓글'도 영구 보존=기록관의 기록은 꾸밈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임 관장은 "'대통령 연설에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고 기록하면 그 순간 용비어천가가 된다"며 "'박수 소리'라고 적거나, 박수가 매우 컸다면 '강한 박수'라고 적는다"고 말했다. 주관적 판단을 줄이기 위해 대화체를 쓴다. 특징적 몸짓이 있다면 괄호 안에 짧게 적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월○일 오전 9시. 주한 캐나다 신임대사 접견식. 대통령은 감색 정장에 파란색 넥타이.
▲대통령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캐나다 수상께서는 스키 마니아여서 자주 스키장에 간다면서요?"(스키를 타는 듯 손짓을 함)
▲대사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대통령 "우리 경호실에선 못 타게 할 텐데…하하. 좋네요."(옆 경호원들을 돌아보며 농담)

 

대통령 기록은 청와대와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만들어진 문서뿐 아니라 대통령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단 댓글도 포함된다. 임 관장은 "대통령이 단 댓글도 영구 보존될 뿐 아니라 일반인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남긴 글까지 모두 대통령 관련 기록으로 영구 보존 대상"이라고 말했다.
비공식 행사여서 기록관이 못 들어갈 때는 참석자를 '취재'해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임 관장은 "공무(公務)와 관련됐지만 기록관 참석이 어려울 경우 따라간 비서관이나 배석자로부터 메모를 넘겨받은 뒤 이를 첨부해 놓기도 한다"며 "대통령이 손자·손녀들과 사적 이야기를 하는 것 빼고는 모두 기록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도 기록은 못 고친다=조선왕조실록처럼 대통령에 대한 기록도 대통령은 열람만 가능할 뿐 고치지 못한다. 대통령이 정정을 요청하면 그 요청사항을 서류로 만들어 따로 첨부하는 식이다. 대통령기록관 박진우 정책운영팀장은 "노 전 대통령은 한 번도 수정을 요구한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기록이 가능한 것은 2007년 4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이 법률에 따라 전직 대통령이 남긴 기록들은 최장 30년까지 비공개로 관리된다. 탄핵, 한·미 FTA, 장관 인선 등 굵직한 문제 앞에서 대통령이 했던 고민들이 30년 후에는 모든 국민에게 공개되는 것이다. 임 관장은 "노 전 대통령 관련 기록들은 내년까지 분류한 뒤 국가기밀만 빼고 최대한 일반에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지도층 기록에 가장 꼼꼼=한·중·일 세 나라 가운데 국가 원수에 관한 기록이 가장 꼼꼼한 곳은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박 팀장은 "서양에서는 국가 원수의 독대에 기록관이 동석하는 것이 결례이지만, 중국은 꼭 기록관의 참석을 요구해 외교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기록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지도층 기록에는 인색한 편. 박 팀장은 "대통령이 인터뷰를 하면 우리나라는 인터뷰 내용부터 과정, 그리고 기사까지 모두 보관하는 반면 일본은 과정을 빼고 결론인 인터뷰 기사만을 보관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임 관장은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8년 기록이 문서만 7700만 쪽일 정도로 미국과 비교하면 아직 우리나라는 기록관리가 부족하다"며 "역대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문서들도 찾아 사료로 보관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대왕판교로에 있으며,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해 11월에 신설됐다. 역대 대통령 기록을 전문적으로 수집·관리·서비스하는 기관으로 오는 4월부터는 일반인들도 관람할 수 있다. 서고는 지진과 폭격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전자지문과 적외선 감지기 등을 통한 철통보안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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