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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주요 사건. 사고 일지

전동키호테 2007. 12. 31. 20:55

 

 

올해는 유난히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다. 대기업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 학력위조 파문, 대통령 측근과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김경준씨의 BBK 의혹, 삼성의 비자금 의혹, 태안 기름유출 사고까지 대형 사건과 사고가 연이어졌다. 숨돌릴 틈 없이 격동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겼던 취재 기자들이 무자(戊子)년 새해를 이틀 앞둔 30일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1년을 돌아보며 뒷얘기들을 묶어봤다. 

 

“대선 막바지까지 국민을 혼란하게 만들었던 BBK의혹 사건은 2002년 대선 때의 ‘병풍 사건’과 여러모로 비교됐는데,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병풍 사건 때는 검사들 사이에서 사건 결론을 놓고 이견이 생겨서 두고두고 논란이 됐지만, BBK 사건은 명동성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 검사 전원에게 일일이 의견을 듣고, ‘더 수사할 게 있느냐’고 물어 의견일치를 본 뒤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대검 수뇌부와 수사팀 간 두세 차례 연석 회의에서도 전원이 ‘이명박 후보 무혐의’ 결정에 이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검 할아버지가 와도 결론이 달라질 것이 없다’고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도 그런 배경 탓입니다.”

“수사팀을 이끌었던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사실 떠밀리다시피 해서 수사를 맡았습니다. 지난 8월 한나라당 경선 직전 이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을 수사한 탓에 또다시 정치적인 사건을 맡는 데 부담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에 치밀하고 검찰 내부의 신망이 두터운 최 부장 외에 대안이 없다는 설득을 받아들였다는 후문입니다.”   “김경준씨의 독특한 행동도 뒷얘깃거리를 남겼습니다. 지난 11월 중순 검찰청사에서 서울구치소로 압송돼 가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는데, 그 ‘의미’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지요. ‘무죄에 대한 자신감’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사실은 김씨가 걷다가 중심을 잃어 넘어질 뻔한 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취재진에 사인을 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김경준씨는 2001년에 검찰 수사를 받을 때도 검찰을 속이려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김씨는 당시 긴급체포됐었는데, ‘크리스토퍼 김’ 명의로 된 여권을 내밀면서 ‘나는 김경준이 아니다’고 버텼다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김은 그해 9월 김씨가 미국에서 바꾼 이름입니다. ”
 

뇌물 준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씨 이상한 넋두리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을 구속으로 몰고 간 부산지역 건설업체 사장인 김상진씨는 검찰에서‘내가 조금만 늦게 잡혔으면 여러 사람 이름을 더 불어줬을 텐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 전 비서관 등 외에 뇌물을 준 인사들이 더 많았다는 말인데, 적발만 안 됐으면 사업도 잘 됐을 것이고, 진짜 ‘감사 표시’는 연말쯤 할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변양균·신정아 게이트 때 검찰은 처음엔 신씨의 학력위조만 수사 대상이었다고 했다가 뒤늦게 수사를 확대했습니다. 본지가 지난 8월 24일 ‘변 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중이던 과테말라에서 신씨 문제로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고 특종보도했을 때, 신빙성이 없다고 잘못 판단했다고 검찰 고위 관계자가 말했습니다.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국내로 전화를 걸면 일일이 체크되기 마련인데, ‘그렇게까지 했을까’라고 믿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9월 4일 신씨 집 압수수색에서 신씨와 변씨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 연서(戀書)가 발견된 뒤에야 본격 수사에 나섰다고 고위관계자가 후일 털어놨습니다. 그러나 수사 초기 판단이 잘못됐던 것인지, 권력의 압력이 있었던 것인지는 훗날 밝혀야 할 사안입니다. ”

“신정아 사건으로 유탄을 맞은 최대 피해자인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부인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은 김 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을 때마다 빠짐없이 동행을 했다고 합니다. 신씨를 고용한 탓에 남편과 자신이 사건에 연루돼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도 취재가 쉽진 않았습니다. 김 회장의 보복 폭행이 이뤄졌던 S유흥주점측은 주변 상인들 입단속을 했고, 덩치가 큰 주점 상무들은 험악한 인상을 써대며 기자들을 주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당시 기자들은 S유흥주점에서 찍어둔 동영상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결국 실패했죠. 주점에서 20m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CCTV를 찾아냈지만 불행히도(?) 사건 이후 설치된 CCTV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북창동 주점 상무들은 휴대전화로 현장을 찍어두지 못한 걸 아쉬워했지만,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회장 수행원들의 덩치와 인상에 압도돼 차마 동영상을 찍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자들은 북창동 유흥주점 종업원들로부터 ‘기자 양반들이 현실을 잘 모르는구먼’이라는 얘기를 듣곤 했습니다. 진실이 돈의 위력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김 회장이 법정에 서는 것을 보면서 ‘결국 진실이 이겼다’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북창동 사람들에게도 같은 말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가족들을 취재할 때 역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패닉 상태에 빠진 피랍자 가족들에게 다가가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인질 석방 당시, 현지에 출동한 국정원 직원인 ‘선글라스맨’도 유명 인사였습니다. ‘J’라 불렸는데, 이름의 이니셜인지 아니면 암호명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 취재 이후 미국 현지 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40~50대 한인 교포 신자들은 대부분 설교시간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쁘고 힘들어서 아이들에게는 공부만 강요하고 대화는 거의 해보지 못했다’는 이들의 속내를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름내 진동하는 태안에서 몸 던진 자원봉사
70대 노부부와 일곱살 꼬마 기억에 많이 남아 
태안의 기름유출 사고 는 현장에 가서 보니 정말 국가적 재앙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한 직후 태안에 도착했는데, 꼭 독한 술을 입안에 가득 물었을 때 코로 올라오는 느낌이었어요. 마스크·흡착포 등이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흡착포 대신 헌옷을 깔아야 했고, 마스크 없이 기름 냄새를 고스란히 맡으면서 방제작업이 진행됐습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주말에 몇 만명씩 모여드는 자원 봉사자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온라인에서 만나 태안에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죠. 공무원을 정년퇴직한 70대 노부부, 크리스마스 선물 대신 아버지에게 태안엘 데려달라고 졸랐던 7살 아이 등 인상적인 자원봉사자들이 많았습니다.”

“숱한 사건 사고들을 겪었지만 새해에도 BBK의혹 특검과 삼성특검이 기다리고 있어서 여진은 계속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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