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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73년째 ‘2007 백년해로 부부상’ 권병호·김은아씨

전동키호테 2007. 8. 3. 13:15

결혼 73년째 ‘2007 백년해로 부부상’ 권병호·김은아씨
“한날 한시 눈감아 영원히 함께 하고파”
한겨레 최상원 기자
» 사진 세계 부부의 날 위원회 제공

1934년 부모 반대 무릎쓰고 연애결혼 2남4녀 키워 후손만 31명
남편 권씨 사회적 성공 뒤 은퇴 함양 농가주택서 ‘제2 신혼생활’ “금실 비결은 타고난 건강”

“누추하지만 오늘 하루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죠.” 남편이 아내에게 농담을 건다. “그럴까요, 호호호.” 아내가 수줍게 받아넘긴다. 대화하는 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참기름이 뚝뚝 묻어날 것같지만, 이들 부부는 올해로 결혼한지 73년째이다.

 

‘세계 부부의 날 위원회’는 2일 경남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에 사는 권병호(99·오른쪽)·김은아(96·왼쪽)씨 부부를 ‘2007 백년해로 부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일제시대 조선금융조합에서 일하던 권씨는 강원도 금화군으로 발령받아 당시 그곳에서 보육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김씨를 만났다. 이들은 3년 열애 끝에 연애결혼을 반대하는 양가 부모의 뜻을 뿌리치고 1934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부는 2남4녀를 낳아 모두 훌륭히 키웠다. 현재 자손만 31명이다. 권씨는 국회사무처 총무국장, 국방부 이사관(상훈국장), 농협중앙회 수석 부회장, 제일화재보험 사장 등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부부는 1981년 안락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경남 함양군 삼봉산 기슭에 땅 16만5천㎡와 농가주택 한채를 마련해 들어왔다. 연로한 부모만 보낼 수 없다며 자녀들이 반대했지만, 이들은 벌써 26년째 부부만의 공간에서 제2의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자녀들이 도우미라도 두자고 해도, 이마저 번거롭다며 거절했다.

 

노부부는 직접 삽질을 하고 나무를 심어 농장을 가꾸고, 이를 즐기기 위한 13개의 오솔길을 만들었다. 젊을 때 읽지 못했던 책도 실컷 읽고 공부도 다시 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입에서 술술 나온다. 직접 담은 동동주로 부부가 얼큰하게 흥이 오르면, 아내가 노래를 부르고 남편이 춤을 춘다. 남편이 사랑의 시를 낭송하면 아내가 전자오르간을 연주한다.

 

장남 권일웅(65)씨는 “부부 사이의 문제는 자식도 알 수 없는 일이라, 부모님께서 어떻게 그리 좋은 금실을 유지하는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며 “요즘은 어머니가 관절염 때문에 고생하시지만 두 분 모두 워낙 건강한 체질을 타고 나셨고, 이게 좋은 부부관계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지금 노부부에게 남은 마지막 꿈은 즐겁게 살다가 한날 한시에 눈을 감아 한곳에 묻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다. 시상식은 5일 오후 3시 함양군 자택에서 열린다.  함양/최상원 기자 c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