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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여인-망토 속 배꼽티, 아찔한 ‘이중생활’

전동키호테 2007. 7. 6. 20:50

 

“우리들의 삶은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습니다. 공적인 공간에서는 까만 만토를 입고 머리에 스카프를 쓴 조신한 무슬림 여성으로 행동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우리 멋대로 삽니다. 우리는 이 정신분열자 같은 이중생활에 아주 익숙하지요.”

- 파트마 하산 (
테헤란의 여성 엔지니어)

미리 준비한 까만 스카프를 쓰고 테헤란 공항에 내렸다. 쏘아보는 눈의 호메이니. 그의 커다란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저 카리스마 넘치는 종교지도자가 없었다면 21세기에 신정정치를 하는 이란이라는 이슬람공화국도 불가능했으리라. 택시를 타고 예약한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비비시 채널을 틀었다. 이란 대통령의 특별연설이 방영되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이란 영해를 침범한 영국 해군들에 대한 이란의 입장을 밝히는 날이다. 대통령의 연설은 마치 이슬람 해방신학자의 연설 같았다. 알라에게 올리는 기도와 코란 인용으로 시작된 그의 연설은 이란의 눈으로 본 서방 중심의 세계사, 식민주의, 제국주의 비판을 서론으로 하고, 15명의 영국 해군을 다가오는 부활절을 기념하여 조건 없이 평화와 화해의 선물로 풀어주겠다는 결론으로 극적인 막을 내렸다. 훌륭한 연설이었다. 왜 어린아이들이 있는 어머니인 해군 여성을 이런 곳으로 파송했냐고, 모성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영국을 비난하는 것 말고는, 제3세계 입장에서 현 세계 상황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속 시원한 연설이었다. 칠천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에겐 페르시아로 알려진 오래된 나라, 이란.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북한과 함께 부시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이라고 불린 이 당당하고 도도한 나라의 영혼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강력한 자부심과 자존심의 근거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란에 내린 다음날, 이집트에서 동료의 소개로 만나게 된 이란의 여성 엔지니어, 파트마가 나를 집에 초대해 주었다. 내가 이란 대통령의 연설에 감명받았다고 하자 그녀는 자기는 대통령 연설이 하도 지루해서 듣다가 졸았다고 대답한다. 자기들은 대통령의 비슷한 내용의 연설을 하도 많이 들어서 대통령이 다음 문장에서는 무슨 말을 할지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하면서 웃는다. “멍청한 남자. 원숭이같이 보이지 않아요? 우리는 그를 진화과정에서 원숭이와 인간을 연결해 주는 ‘잃어버린 종’으로 보지요.” 그러면서 파트마는 미국 대통령과 이란 대통령의 세가지 공통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첫째, 멍청하다. 둘째, 배후 집단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들이다. 셋째, 신의 이름을 팔아 강경 정책을 펼치며 타협하지 않는 근본주의자에 가까운 인간들이다. 그녀는 그들이 너무 서로 비슷해서 계속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며, 내게 이란산 보드카를 따라 준다.

술을 팔지도 먹지도 못하게 하고, 미혼 남녀의 데이트가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에서 어떻게 연하남과 동거를 하고 비혼모를 꿈꾸는 것일까. 여성 엔지니어인 파르마는 “우리는 매일 ‘고양이와 쥐 게임’을 한다”며 이란산 보드카를 한 잔 따라주었다

‘도덕경찰’(Morality police)이 있어 머리에 스카프를 안 쓰거나 엉덩이를 가리는 수수한 외투인 ‘만토’를 안 입은 여성들을 잡아가는 이란, 술을 팔지도 먹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데이트를 하거나 성행위를 하는 것을 모두 범죄로 여기는 이 나라에서 보드카를 마시자니 왠지 불안해서 이러다 잡혀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파트마는 내게 웃으면서 스릴을 즐기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매일 고양이와 쥐가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살고 있어요. 우리는 고양이와 쥐의 게임이라고 이야기하지요. 21세기에 도덕경찰에 의해 감시당하고 산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 이란에서 살다보면 그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그런대로 재미있게 살 수 있어요. 정부가 우리 삶을 감시하며 어렵게 만들면, 국민들은 뭉쳐서 서로를 감싸고 보호해 주지요.”

파트마가 우리의 저녁잔치에 초대한 친구인 히데는 불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10살 아래의 남자와 동거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이란에서 가능하냐고 물으니, 이란의 ‘방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자신은 결혼할 생각은 없고 아이를 가질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할지 묘안을 궁리 중이라고 했다. 만토와 스카프를 벗은 두 여성의 옷차림이 이란 여성의 ‘이중생활’을 웅변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달라붙는 청바지에 가슴과 등이 깊이 파이고 배꼽이 보이는 티셔츠. 뉴욕에서 자주 보는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이다.

같은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파트마의 남편 아메드는 파트마와 히데와 달리 호메이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호메이니가 1979년에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것은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리고 싶은 이란 민중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 했다. 그러나 나라를 잘 운영할 줄 모르는 전근대적인 경영자였기 때문에 지금의 이란을 종교 독재국가로 만든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메드는 이란인들은 유대인 다음으로 자신들을 ‘피해자’로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시아파 무슬림 나라인 이란은, 시아파의 원조였던 지도자 알리가 암살당한 이슬람 초대 역사부터 줄곧 권력의 주변인으로 살면서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 피해의식은 페르시아 왕국의 찬란한 영웅의식과 섞여 이란인들에게 대대로 피해자와 영웅 사이를 오가는 ‘정신분열증’을 물려주었다고 말한다. 미국 정부는 싫지만, 미국이라는 개방된 나라와 미국인들을 좋아한다는 이란의 젊은이들. 나는 이렇게 ‘제멋대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 세계 도처의 ‘신세대’에게서 미래를 본다. 깊어가는 테헤란의 밤, 이란의 보드카가 나를 취하게 한다.

글·사진 현경 교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cafe.daum.net/chunghyunk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