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교회_主_성광

십일조 없는 교회 복음화 운동

전동키호테 2007. 4. 16. 18:20

십일조 없는 교회
제도가 아닌 복음운동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 교회는 십일조 헌금이 없다. 그동안 한 번도 십일조 헌금을 말한 적이 없었는데, 2주일 전에 부부 신자가 새로 왔기에 공개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우리 교회는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 가정도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훨씬 적은 헌금을 한다. 옛날 목회할 때는 십일조 헌금을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막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십일조 헌금을 하고,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월정헌금을 하도록 권면했다.
 
몇 년 전에 이곳 하양에서 교회를 새로 시작하면서, 아예 십일조 헌금을 할 만한 분들도 없었지만, 헌금과 교회 재정이라는 것 자체를 거의 무시했다. 앞으로 교회 구성원들이 늘어나더라도 나는 십일조 없는 교회의 전통을 지켜나갈 생각이다. 그 이유를 여기서 소상하게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대충이나마 설명하겠다.
 
십일조 헌금이 신학적으로 별로 타당성이 없다는 사실은 내가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접자. 십일조가 주로 미국의 근본주의 전통에 있는 신자들에게서 나왔고, 한국교회는 그 교회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전통을 세웠는데 이제는 근본주의, 복음주의, 에큐메니칼, 자유주의 할 것 없이 모든 교회들이 십일조 헌금을 교회 다니는 기준으로 삼는 것 같다.

십일조 헌금이 없다면 도대체 교회는 어떻게 꾸리는가, 목사생활은 어찌 하는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그건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대화가 가능한 신자라고 한다면 교회 공동체를 꾸려가기 위한 최소한의 재정적 의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자발적으로 감당하는 헌금이나 분담금으로, 무슨 모임이든지 회비를 거두듯이 그런 방식으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십일조 때문에 신앙생활에 방해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십일조 때문에 교회에서 힘을 주는 사람들도 많다. 십일조 헌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는 힘들다. 십일조 헌금을 드리지 않는 사람이 교회 장로가 될 수 있을까?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제도적으로 십일조 헌금을 없애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십일조 헌금이 없으면 교회 헌금의 총량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교회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과소비다. 일단 인건비가 과다 지출된다. 건물 유지를 위한 비용도 지나치다. 교회 행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걸 최소화한다면 십일조 제도를 없애기 때문에 벌어진 헌금 총량의 축소는 그렇게 결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려온 좋은 제도요, 전통인데 굳이 포기할 것까지 있을까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사실 그것만이 아니라 교회가 포기해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걸 내려놓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크겠지만 더 늦기 전에 내려놓은 게 한국교회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할 것이다.

온갖 종류의 직제도 내려놓아야 한다. 권찰·서리집사·안수집사·권사·장로…. 이런 직제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앞으로 한국교회는 명실상부한 민주정체를 채택해야 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지만 예컨대 각각 연령 별로, 선교회별로, 남녀 성별로 대표자들을 선정해서 ‘교회 운영위원회’ 같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십일조 헌금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한국교회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물론 당장 그런 걸 시도하면 현재 교회 구조 상 너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테니까 천천히 그런 쪽으로 나가는, 연착륙할 필요는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 교회 중심이 아니라 노회나 총회 차원에서 목사들의 생활비를 균등하게 해결해주는 제도의 도입이 우선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교회에서 십일조 제도를 포기한다는 말은 씨가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충격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당장 십일조 제도를 포기하더라도 교회 운영에 큰 문제가 없는 교회에서 (나 같은 경우가 그렇다.) 용기를 갖고 시작하면 그게 불씨가 되어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두서없이 적은 위의 글이 어떤 분들에게는 속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당장 교회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는 염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교회를 허물려는 게 아니라 세우려는 마음으로 던진 말이다. 우리의 십일조와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의 면죄부는 어떤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오늘 한국교회에 십일조가 얼마나 심각하게 율법적으로, 기복적으로, 주술적으로 행사되고 있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십일조가 아무리 교회의 물적인 토대를 지탱하는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신학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의 신앙을 허물고, 더 나아가서 교회 자체를 허물게 될 것이다.

십일조, 절기헌금 없이도 건강한 교회 공동체가 가능할 날이 올 수 있을까? 여기서의 관건은 복음이 운동의 차원으로 자리 잡는가, 아니면 제도의 차원으로 자리 잡는가에 달려 있다. 교회 공동체의 몸무게를 줄이고 유지비를 줄이고 운동의 차원에서 새로워져야 할 그 순간이 우리 한국교회에도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닐는지.

 

정용섭 / 샘터교회 목사·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