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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배우고 싶어요” 손자 교실에 앉은 할머니

전동키호테 2007. 2. 14. 12:00

 

  • [반딧불] “한글 배우고 싶어요” 손자 교실에 앉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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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3월 어느 날, 경기도 광주 분원리 분원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는 할머니 한 분이 숨어 있다가 발각된 일이 있었다. 박군자(65) 할머니는 아침마다 손자 세진(7)군의 손을 잡고 등교를 도왔다. 그러곤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교실 내 한구석을 막아 만든 간이도서실에 몰래 앉아 있었다. 담임교사는 할머니가 손자를 너무 사랑해 ‘과잉 보호’하는 줄로만 알았다.

      “할머니, 앞으로 아이는 제가 잘 돌볼게요. 이제 가셔야죠.”
      “그냥 뒤에서 조용히 있을게요, 선생님.”
      할머니는 의외로 완강했다. 교사와 숨바꼭질을 벌인 지 한 달 후쯤, 할머니는 뜻밖의 사정을 털어놨다.

      “선생님, 부탁입니다. 저 한글 좀 가르쳐주소. 자식들한테 편지 써보는 게 소원이오.”

      박 할머니의 한글공부는 그렇게 시작됐다. 할머니는 6·25 전쟁 직후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수업료를 내지 못해 4개월 만에 그만둬야 했다. 이후 농사를 지으며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못 배운 한(恨)은 지워지지 않았다.

      손자 세진이의 담임 김원희(51) 교사는 그때부터 매일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가나다라’부터 받침 있는 글자까지, 손자뻘 아이들보다 훨씬 더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 소식이 분원리 노인정에 퍼지자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나도 배우면 안 될까?” “혼자만 학교 다니면 무슨 재미여~.”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더욱이 여자여서 한글조차 배우지 못한 할머니들이 세진이 할머니를 보고 용기를 냈다.

      결국 올해 1월 4일, ‘분원리 할머니 한글 교실’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입학생은 12명. 최연소 65세, 최고령 84세인 ‘1학년-할머니반’이 탄생했다. 수업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지난 8일 기자가 찾은 한글 교실에선 받아쓰기 공부가 한창이었다. 김 교사가 ‘노루’를 외치자 할머니들은 연필에 침을 발라 가며 ‘노루’를 적었다. 그런데 ‘ㄹ’은 어려웠나 보다. 사영숙(71) 할머니는 ‘노구’로 적었다. 이번엔 난이도가 높은 ‘로켓’이다. ‘루켓’, ‘노켓’, ‘노캣’…. 어린아이처럼 잘도 틀렸다. 할머니들은 한글을 알게 된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60년간 안 보였던 세상이 보여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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