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생이 형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비슷한 시기에 차를 구입했는데 출퇴근 거리가 멀다 보니 형보다 앞서 부득이 새 차로 바꾸게 됐다”며 양해를 구했다. 형은 “보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동생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고마웠다. 앞서 동생은 어머니를 통해 구두 한 켤레를 형에게 보내 왔다. “형이 신고 다니는 구두의 뒤축이 많이 닳았더라”는 말과 함께.
올해 설날 동생은 차례를 지내고 나서 슬그머니 형에게 현금 100만 원 뭉치를 내놓았다.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한 장조카의 입학금에 보태라는 것이었다. 형은 가전제품 대리점 점장으로 일하는 동생에게 이 돈이 1000만 원이나 다름없는 거액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못 이기는 척 받아 넣었다. 동생은 또 올봄 10년 만에 새 집으로 이사한 형에게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 새 가전제품을 선물로 보냈다.
혈혈단신 이북에서 내려온 아버지가 아내와 두 아들을 남기고 49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형은 20세 재수생, 동생은 16세의 고교 1년생이었다. 형은 앞서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비를 대준 덕분에 다음 해 무난히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보낸 동생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미련 없이 공부를 접고 군에 입대했다. 형은 자신보다 머리가 월등히 좋은 동생이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괜찮은 대학을 졸업한 뒤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만 종종 자수성가의 고단함을 말하며 ‘사회 계층적 불만’을 토로하곤 하는 형에 반해 고졸의 동생은 늘 긍정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왔다. 집안의 각종 대소사에서도 동생은 언제나 형이 중심이 되도록 했다. “형이 잘돼야 우리 집안이 잘된다”는 것이 동생의 확고한 소신이다. 그로 인해 동생의 지인들은 형의 손님과 친구들에 치여 늘 뒷자리 차지였다. 하지만 동생은 단 한번도 불평을 말해 본 적이 없다.
형의 옷과 신발 중 절반가량은 동생이 보내 준 것이다. 동생은 지나다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으면 선뜻 구입해 형에게 보낸다. 멋을 아는 동생 덕분에 형은 종종 패션 감각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형은 동생에게 물건 값을 제대로 지불해 본 적이 없다. 동생은 또 명절과 제사 때면 반드시 아내를 형 집으로 보내 음식 만드는 것을 거들도록 했다. 동생의 아내는 언젠가 “술에 취한 남편이 밤새 ‘형 잘 있는지 전화 좀 해 보라’고 보채는 통에 잠을 자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하면서 “마누라보다 형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형은 신혼 초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동생 내외에게 줄 선물을 사왔다가 아내의 의아해하는 내색을 보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고, 내가 아버지나 다름없지 않으냐. 결혼으로 인해 형제지간에 의(誼) 상하는 일 없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실제로 형이 해 준 일은 동생 내외가 결혼 후 10년간 한번도 해외에 다녀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가족 해외여행을 주선해 준 것이 고작이다. 동생의 장모를 자기 장모처럼 챙겨 드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마저 잘 되지 않는다. 형은 이번 여름 동생의 고교 1학년짜리 딸이 교환학생 자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물질적으로 별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을 지금도 가슴 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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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평소 자신은 ‘보통 형’에 불과하지만 동생은 ‘최고의 동생’이라고 자랑하곤 한다. 그렇지만 동생은 언제나 “세상에 형보다 나은 동생은 없다”고 말해 왔다. 유난히 힘든 일이 많았던 올 한 해, 무사히 세밑을 맞게 된 것은 모두 동생의 덕분이라고 형은 생각한다.
(동아일보 칼럼)
오명철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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