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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建大에 '정진화 장학금'

전동키호테 2009. 11. 23. 11:35

훈련중 숨진 아들 이름 따 모교 建大에 '정진화 장학금'

"원래는 제가 연말에 휴가를 가게 돼 있었는데 함께 있는 상병이 '새해 첫날 부모님과 함께 있고 싶다'고 부탁해서 바꿔줬어요. 저는 한달 후면 제대하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튿날 오전 7시 그는 훈련을 받기 위해 동료 병사들과 군용 차량에 올라탔다. 바람이 세찬 날이었다. 일 평균 기온 영하 0.5도에 평균 풍속 초속 7m.추풍령기상대는 구름이 무겁게 낀 하늘에서 가랑비(0.2㎜)가 흩뿌렸다고 기록했다. 병사 11명을 태운 차량이 잔설(殘雪) 쌓인 비탈길을 오르다 굴러 전복됐다. 부모가 달려갔을 때 병장은 이미 흰 천에 덮여 있었다. 즉사였다. 나머지 병사들은 목숨을 건졌다.

울산시 방어동에 사는 정태영(鄭台永·57·현대중공업 부장)·이순애(李順愛·55)씨 부부는 그렇게 아들 진화(당시 23세)씨와 작별했다. 1997년 건국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한 아들은 1998년 12월 찬 바람을 맞으며 육군에 입대했다. 살아 있다면 올해 서른한 살이 됐을 아들은 제대 한달을 남기고 변을 당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003년 2월 마음을 다잡고 살던 정씨 부부의 집에 편지 한통이 왔다. 복학 신청이나 휴학 연장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아들을 제적시키겠다는 통지서였다. 부부는 "편지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부부는 다음날부터 명예졸업 신청을 하기 위해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모은 성적표, 상장, 반장 임명장, 고등학교 장학증서 등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아버지 정씨는 "아들의 자취를 하나하나 모으다가 몇번이나 손을 놓고 울었다"고 했다.

정태영(왼쪽)·이순애씨 부부가 울산 동구의 자택에서 2001년 군복무 중 숨진 아들 진화(당시 23세)씨의 어릴 적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아들의 명예졸업장을 받은 부부는 2004년부터 아들이 다녔던 건국대에 매학기 12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해 오고 있다./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그해 8월 부부는 건국대 졸업식장에서 아들 대신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아버지 정씨는 졸업식장에서 정길생 당시 총장에게 큰절을 했다.  "우리 부부가 대학에 못 가 아들이 대학을 다니는 게 너무 뿌듯했어요. 아들이 학교를 마치지 못한 걸 너무 안타까워하던 아내가 '다른 아이들이라도 대학을 잘 다닐 수 있게 도와주자'고 했죠."

부부는 그해 9월부터 한달에 20만원씩 꼬박꼬박 모았다. 아들이 제대한 뒤 어머니에게 매달 용돈으로 주기로 한 액수다. 부부는 "2000년 10월 휴가 나온 아들을 본 게 마지막이 됐다"고 했다. 부대로 복귀하기 전날 아들은 부모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같은 방에서 잠들었다. 어머니가 "헬스클럽 다녀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자 아들이 씩 웃으며 "제대하면 돈 벌어서 꼭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부부는 2004년 1학기부터 매학기 120만원씩 건국대 공대생 한명에게 아들의 이름을 딴 '정진화장학금'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봉사활동을 많이 한 학생이 대상이다. 지금까지 12명이 혜택을 받았다.
건국대는 24일 정씨 부부를 서울로 초청해 보은회를 열 계획이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도 불렀다. 부부는 이제껏 장학금 받는 학생들과 따로 만난 적도, 사연을 밝힌 적도 없다. 건국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사연을 듣고 다들 놀랐다"고 했다.

입사 면접과 겹쳐 보은회에 못 오게 된 김모(27·환경공학과 4년)씨는 최근 부부에게 편지를 썼다. "'정진화장학금' 덕분에 어학 공부를 열심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은 과(科)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 됐습니다. 고향을 떠나 혼자 공부하는 저에겐 이 장학금이 부모님의 사랑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들의 장례를 치른 날 아버지 정씨는 아들과 함께 지내던 제6157부대 병사들에게 간식비로 50만원을 쥐어줬다. 이튿날에는 육군본부에 편지를 썼다. '아들의 사고와 관련해 상급자나 동료들이 징계를 받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만약 누군가를 처벌해서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아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차라리 아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쪽을 택했어요."

장례를 치른 지 한달쯤 뒤에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정씨가 주고 간 돈에 부대 예산을 보태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다는 얘기였다. 부부는 보답할 방법을 찾다가 '병사들에겐 하루 쉬는 게 최고'라는 얘기를 듣고 추모비 제막식(4월 23일)에 맞춰 체육대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후 부부는 매년 체육대회 진행비 100만원을 대고 있다. 부대에서 다른 부모들도 초대한다. 어머니 이씨는 "나는 오래도록 맘이 아프고 힘들었는데 남편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용서해 화가 많이 났었다"며 "해마다 아들 추모비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른 젊은이들이 축구·농구·배구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사이에 조금씩 응어리가 풀어졌다"고 했다. 보은회 참석을 앞둔 부부는 설레는 것 같았다. 아버지 정씨가 "어떤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았는지, 그 학생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내심 궁금했다"고 했다. 여동생 지해(29·미용실 운영)씨는 "오빠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휴가 때 그는 집을 나서기에 앞서 두살 아래 지해씨 손에 네번 접은 1만원짜리 한 장을 쪽지처럼 쥐어줬다. "잘 있어라. 오빠 곧 올게."

"군인 월급을 아껴서 모은 돈이었어요. 부모님이 장학금을 내기 시작할 때 저를 불러서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내야 한다. 우리가 늙으면 네가 좀 계속 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꼭 내겠다'고 했어요. 일찍 간 오빠가 장학금을 통해 다른 사람들 기억에 오래도록 좋게 남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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