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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주기 6년… '민들레 국수집'의 기적

전동키호테 2009. 4. 24. 12:48

스스로 찾아오는 봉사자 숨은 후원자들의 성금 누군가 문앞에 놓고간 쌀·반찬으로 무료급식

 

60㎡(18평)의 좁은 식당에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10여명이 맛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요리사들이 음식을 만들어 뷔페식 반찬통에 담기 바빴다. 손님들의 식판에는 볶음김치, 계란말이, 김, 두붓국 등 스스로 퍼 담은 반찬과 쌀밥이 수북했다.

지난 21일 오후 3시 인천 동구 화수동 '민들레 국수집'의 풍경이었다. 이곳의 손님은 노숙자나 쪽방살이처럼 한끼 식사를 때울 곳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요리사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일반 복지시설의 무료 급식소와 비슷한 풍경이지만 다른 점도 많다. 우선 이곳은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다. 문 여는 시간(오전 10시~오후 5시)에만 오면 언제든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식권도 없고, 줄을 설 필요도 없고, 신분 확인도 없다. 문 닫을 시간이 됐다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인천의 민들레 국수집 서영남 대표가 무료 급식을 위해 반찬을 덜어놓고 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노숙자인 듯 다 해진 슬리퍼를 신고 온 한 남자에게 자원봉사자가 안내를 했다.
"바로 옆에 작은 건물이 있거든요. 식사 끝내고 거기 가서 맞는 운동화 하나 신고 가세요."
작년 12월 지금의 공간을 월세로 얻기 전까지 식당으로 썼던 바로 옆 10㎡ 남짓한 낡은 건물에는 후원자들이 보내온 각종 옷가지와 신발, 수건, 치약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300~400여명. 서울이나 충남 천안에서까지 소문을 듣고 오는 사람도 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온다는 양모(59)씨는 "다른 무료급식소에 가면 사람들이 줄 서서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우고, 먹는 시간도 정해져 있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호텔'"이라 했다.


민들레 국수집이 문을 연 것은 2003년 4월 1일. 모태신앙으로 천주교 수도사가 됐다가 47살에 수도원을 나와 평신도로 돌아온 서영남(徐英男·55) 대표가, 수도사 시절 만난 교도소 재소자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만든 것이다. "가난해도 기쁨이 있는 세상을 만들어 재미있게 살고 싶어" 수도사를 그만뒀다는 그는 그때 수중에 있던 300만원으로 이 식당을 차렸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오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했다. 그러자 힘들기만 할 줄 알았던 이 집에서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선착순처럼 줄을 세우면 사람들이 난폭해져요. 그래서 서로 입장을 봐서 먼저 먹을 사람이 먹게 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서로 더 약한 사람에게 양보하는 거예요." 기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식당 소문이 퍼지면서 여기저기서 '이름 없는' 후원자들이 나타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침이면 문도 열지 않은 식당 앞에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쌀 포대나 반찬, 과자 몇 봉지에 음료수가 놓여 있고, 전화로 또는 택배로 멀리 전라도에서까지 생선이며 쇠고기가 올라온다.

후원 계좌(농협 147-02-264772. 서영남)에는 한 달에 1500만~2000만원씩 쌓인다. 이 후원금은 급식소와 근처에 있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재소자 영치금 넣어주는 데 쓰인다. 서 대표는 "후원회 조직도, 명단도 없어 나도 후원자가 몇 명인지 모른다"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하나도 받지 않고 오로지 후원자들 도움으로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서로 알아서 봉사를 오고, 어쩌다 사람이 부족하면 밥을 먹던 사람들이 스스로 자원봉사에 나선다고 했다.

작년에는 쌀이 남아 형편이 어려운 동네 사람들에게 20㎏들이 1000포를 나눠주기까지 했다. 서 대표는 "시장에 장 보러 가면 콩나물 파는 노점상 할머니가 '오늘은 내가 기부한다'면서 콩나물 몇 상자를 내놓고, 식당에 왔던 노숙자가 휴지를 주워 판 돈을 내기도 하고, 회사에 다니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이 스스로 하루를 비워 봉사를 오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배가 물에 빠졌을 때 힘없는 사람이 먼저 구명보트에 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꿈꾸는데, 될 것 같아요. 이 식당을 운영해보니 사람대접을 해주면 다음 사람이 먹을 수 있게 스스로 얼른 먹고 뒷사람 먹게 반찬도 알아서 적당히 먹고 그래요."

서 대표의 말을 뒤로하고 나올 때 굳이 배웅을 나온 자원봉사자 박대성(朴大成·53)씨가 말했다.
"제가 이 집 첫 손님이었어요. 고아로 어렵게 살다가 자살하려고 9일을 굶었는데 서 수사님(서 대표를 이렇게 부른다)을 우연히 만났죠. 그분이 사 준 점심을 먹고, 말씀을 듣고 마음을 바꿔 먹었어요. 여기서 수사님한테 배운 게 있어요. 지금 당장 내가 쓸 것이 부족해도 그걸 다른 사람한테 내주니까 내일 또 그것이 오더라는 것을요." ☎(032)764-8444.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1동 민들레국수집 

 

chosun.com . 김용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