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_건강_食_교육

'막걸리 열풍의 중심' 서울탁주 이동수 회장

전동키호테 2009. 10. 12. 08:22

 가업 대이은 50년 외길… 월 70~80%씩 매출 급신장
"병 막걸리도 탄산 막걸리도 내가 처음 특허낸 것이죠"
"막걸리 열풍은 일본에서 시작… 해외시장서도 가능성 충분…
숙성으로 숙취·트림 등 해결 日서 흉내 못내는 기술 갖춰"

 

"자, 빨리합시다. 딱 한 시간밖에 없어요."
9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망원동 서울탁주 회장실. 허연 백발의 이동수(李東洙·72) 회장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자를 보자마자 이렇게 운을 떼었다. 그는 충북 진천의 공장 신축 부지에서 막 올라온 참이었다. 올 6월 가동을 시작한 서울 성수동 공장에 이은 8번째 공장이다.

장수막걸리, 월매 같은 브랜드로 유명한 서울탁주는 서울·수도권 막걸리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서울탁주의 총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49% 정도 늘어난 645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총매출(663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올 들어 월별 매출 증가율(작년 같은 달 기준)도 6월 69.1%에서 7월 71.1%, 8월 87.6%로 가파른 오름세여서 지금 추세라면 올해 사상 첫 1000억원 매출 돌파가 확실시된다.

집무실에서 만난 이동수 회장은 공장 신축과 신제품 개발 등으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는“지금의 막걸리 열풍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막걸리'와 '탁주' 중 어느 단어를 쓰는 게 좋겠습니까?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물어보시더군요. 뜻은 같습니다. 텁텁하게 탁하니까 탁주고, 술통에서 막 걸렀다고 막걸리지요. 막걸리가 우리말이니까 더 좋습니다."

―회사 이름은 '서울탁주'인데요?
"그건 일제 때부터 주세법 등 공문서상에 탁주로 돼 있으니까 그랬던 거고…. 앞으로 고쳐 나갈 겁니다."

―막걸리와 오랜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건국대 법학과를 나왔는데, 법관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생각대로 잘 안 되더군요. 1959년일 거예요. 서울 평동에서 용천양조장을 하시던 아버님께서 '어차피 장남인데 다 때려치우고 나랑 양조장이나 하자'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게 올해로 만 50년입니다."

―막걸리를 처음으로 플라스틱병에 담아 유통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예, 병 막걸리는 제 특허였습니다. 이전까지는 막걸리는 여섯 말(斗)들이 나무통에 담겨서 유통됐습니다. 병에 담지 못하도록 주세법에 정해져 있었거든요. 막걸리는 그냥 병에 담아서 막아놓으면 그 안에서 발효가 계속 진행돼 나중엔 폭발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유통되면 제조자는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도 중간에 물을 타거나 첨가물 같은 게 들어가도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가스만 빠져나가고 술은 새지 않는 병을 제가 만든 겁니다. 직접 만든 병 막걸리를 들고 국세청에 찾아가서 '봐라, 이렇게 하면 병에 넣을 수 있다'고 했지요. 그리고는 병 막걸리의 유통을 막는 법이 바뀌었습니다."

―기쁘고 보람 있었겠습니다.
"그렇지요. 그때가 막걸리 업(業)을 시작하고 가장 기뻤던 때입니다. 제 특허였지만, 특허권을 행사하진 않았습니다. 다른 막걸리 회사들도 그 병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업계가 함께 잘 돼야 막걸리가 살 수 있으니까요."

―요즘의 막걸리 열풍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요.
"기분 좋지요. 얼마 전 와인 열풍이 불 때 내가 '와인 먹을 바에는 막걸리를 마시라'고 해도 한쪽 귀로 흘리던 '하이칼라(high collar·서양식 유행을 따르던 멋쟁이를 이르던 옛말)'들이 요즘은 먼저 다가와 '이제야 막걸리 좋은 줄 알았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특히 예전에 '막걸리' 하면 노인네들이나 먹는 술이었지만, 요즘은 젊은 층들까지 막걸리를 찾으니까요. 요즘 제일 많이들 마시는 술이 '막소사'라고…. 막걸리 60%에 소주 30%, 사이다 10%를 섞은 술입니다. (젊은이들이) 그렇게 타 먹어 보니까 좋거든. 그러니까 계속 찾는 거지. 또 초콜릿향이 나는 술도 나오고요."

―그런 '변종 막걸리'에 긍정적인 입장인가요.
"내 원칙으로는 순수 막걸리가 좋지요. 하지만 소비자들의 선택이니까 그걸 부정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런 막걸리를 보면서 처음에는 '막걸리가 죽어가는구나' 싶더라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래도 60%는 막걸리를 먹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젊은이들이 막걸리를 알아가는 것 자체도 좋은 거고요."

―'와인 마실 바에는 차라리 막걸리를 마시라'고 하셨다지요.
"영양 성분에서 비교가 안 되지요. 막걸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강 발효식품인 된장·고추장·김치와 '형제지간'입니다. 막걸리 한 병에는 요구르트 한 병에 들어 있는 유산균보다 100배나 많은 유산균이 들어 있지요. 그 외의 영양소도 10여종이나 함유돼 있습니다. (자료를 뒤적이면서) 단백질이 2%가 포함돼 있고, 탄수화물이 0.8%…. 식이섬유와 비타민B·C, 유기산도 들어 있고요."

―하지만 이런 막걸리의 진가(眞價)를 먼저 알아본 건 일본입니다. 우리 업계와 소비자들이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현재 막걸리가 1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지만, 이게 우리가 홍보해서 시작된 게 아니에요. 자기네들이 그냥 사 간 거죠. 사실 그동안 우리 막걸리업자들은 잠자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막걸리 붐'이란 것도 일본에서 '막걸리가 몸에 좋다'고 하면서 시작됐고, 막걸리 칵테일도 워낙 칵테일을 좋아하는 일본 쪽에서 먼저 개발한 겁니다. 정확하게는 '건강식품 붐'이 옳은 말이지요."

―때문에 지금의 막걸리 붐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그러면 내가 새로 공장을 짓겠습니까?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막걸리를 찾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류(韓流)가 한류(寒流)가 될 수 있다는 얘기처럼 서서히 식어갈 수도 있지요.
"다릅니다. 한류는 끊임없이 새 내용이 공급되어야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이지만, 술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막걸리가 좋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미 한 번 알아버렸거든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퍼뜨리는 게 중요한데 저는 자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일 정상외교 건배주도 막걸리잖아요. 대통령이 '우리 회사 막걸리'를 안 드셨지만(이날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고구마 막걸리'가 나왔다) 그런 노력으로 막걸리가 세계화해서 나간다면 업자로서 그 이상 좋은 일은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장수막걸리에 어느 나라 쌀을 쓰는가요.
"대다수 업체와 마찬가지로 미국 쌀을 씁니다."

―'국산 보리를 쓴 맥주'와 '미국 쌀을 쓴 막걸리' 중 어느 쪽이 '우리 술'인가요.

"그건 그렇게 보면 안 됩니다. 미국 쌀이라도 일단 우리나라 시장에 들어오면 우리 쌀입니다. 지금 우루과이라운드로 국내에 30만t이 넘는 쌀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처음에 정부가 '수입쌀을 써 달라'고 권유했습니다. 값싼 수입쌀이 시중에 그대로 풀리면 우리 농민들이 타격을 받게 되니까요. 우리는 수입쌀의 약 5%에 해당하는 1만6000여t을 소모합니다. 더욱이 성분상의 차이도 없어요. 수입쌀이라고 사용하지 않으면 그 쌀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앞으로 국산 좋은 쌀로 별도의 고급 막걸리를 내는 방향도 계획 중입니다. 새로 짓는 진천 공장에서 국산 쌀 막걸리가 나올 겁니다."

―일본 얘기를 다시 좀 하죠. 현재 일본에 수출하는 막걸리는 살균 막걸리지요.
"네. 막걸리는 병에 담긴 상태에서도 계속 발효가 진행되는데, 이걸 막으려면 균(菌)의 활동을 멈춰줘야 합니다. 그런데 살균 막걸리는 막걸리 특유의 '톡 쏘는' 맛이 없어요. 저는 1989년 살균 막걸리에 탄산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이것도 제 특허입니다."

―일본 주류 제조업체가 막걸리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요.
"아마 머지않아 '기무치'처럼 일본 막걸리가 등장할 겁니다. 하지만 일본 술과 우리 술은 제조 공정과 전통 자체가 다릅니다. 우리처럼 만들지 못할 겁니다."

―따라 하기로 시작해 선진국까지 올라간 일본인데도요?
"기무치 드셔 보셨습니까. 그게 김치의 맛을 모두 담아내던가요? 그렇지 못하거든요. 막걸리도 그렇게 될 겁니다. 풍토적인 이유도 있고, 우리가 수백년 동안 해 온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업계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발전해나가고 있습니다. 장기(長期) 숙성을 통해 '숙취'와 '트림'이라는 막걸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 한 것도 우리 업계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자신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사무실 벽에 걸린 가로 1m, 세로 50㎝ 정도 크기의 액자에 들어 있는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허름한 방 안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모습을 담고 있었다.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을 줄인 말)입니다. 막걸리 사랑도 남달랐고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은인입니다. 오늘날의 막걸리를 있게 한 분이라서 (사진을) 걸어놨습니다."

"쌀 막걸리를 못 만들게 했고, 양조장들을 통합해버린 장본인 아니냐"고 기자가 묻자, 이 회장은 "그땐 당연한 거죠. 먹을 쌀도 없는데 술을 어떻게 만듭니까. 또 양조장 통합으로 관리가 이뤄졌기 때문에 그나마 막걸리의 품질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었던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사진의) 사진은 찍지 말아달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싫어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 이동수 회장은…

서울탁주 이동수 회장은 1937년 서울 마포 대흥동에서 '용천양조장' 주인이던 이종기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59년 가업을 이어받아 양조장 일을 시작했다. 78년 업계에서 처음으로 막걸리를 병에 담아 유통시켰고, 최근에는 유통기한을 최장 1년으로 늘린 살균 막걸리를 캔과 페트에 담아 일본에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다. 업계에서는 '막걸리의 대부(代父)'로 통한다.

서울탁주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생(生) 막걸리인 '장수 막걸리'와 살균 막걸리인 '월매 막걸리'의 제조회사이다. 정식 명칭은 '서울탁주제조협회'이다. 1962년 2월 세무당국이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세운 일종의 조합으로 서울의 양조장 100여곳의 대표 중 51명이 주주회원으로 참여했다. 원래 회장의 임기는 1년이지만, 이 회장은 주주(株主)들의 지지 속에 1988년부터 만 21년째 회장직을 연임하고 있다.

서울탁주는 출범 당시 12곳의 막걸리 제조장이 있었으나 이후 영등포·서부·구로·도봉·강동·태능 연합제조장 등 6곳으로 통·폐합됐다. 최근에는 막걸리 수요가 늘면서 올해 6월 성수동 공장을 새로 세웠다. 설립 당시와 마찬가지로 주주 회원 수는 51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대부분 2세들이 물려받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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