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_경제_建_문화

특허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전동키호테 2009. 7. 17. 08:49

미(美) 대표적 특허기업 IV "휴대폰 특허 10건 침해" 삼성·LG에 수천억 사용료 요구
서울대·KAIST 등 상대로 특허 아이디어도 '입도선매',특허 사들여 사용료로 먹고사는 외국기업들,

"국내에서 가치 몰라주는 한 대학(大學)특허 해외유출 불가피"

 

세계적인 '특허 괴물'이 불황 속에 이익을 내며 선전(善戰)하고 있는 한국 기업은 물론 대학까지 겨냥해 몰려들고 있다. '특허 괴물'(Patent Troll)은 상품 제조·판매를 하지 않고 특허만 보유해 특허 사용료를 주 수익으로 삼는 전문기업을 일컫는다.

미국의 대표적인 특허전문업체 '인텔렉추얼벤처스'(이하 IV)는 최근 "IV가 보유한 휴대폰 특허 10건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침해했다"며 두 회사에 수천억원대의 연간 특허 사용료를 요구했다. LG전자 관계자는 "다른 제조 경쟁사와의 특허 분쟁 때는 우리도 상대방 제품에 대해 맞제소를 하는 방식의 대응이 가능하지만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유럽에 근거지를 두고 제조업체 등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특허 공세를 펼치는 '특허 괴물'들의 공격 사정권에 포함돼 '글로벌 특허 전장(戰場)'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허'는 미국의 IT 패권 신(新)전략
현재 전 세계에는 IV를 비롯해 인터디지털·아카시아·NTP·모사드·IP밸류·로빈슨 등 100개 넘는 특허전문업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IV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이 주도해 2000년에 세운 업체로, 펀드 규모가 50억달러(6조3000억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특허전문업체다.
전자업체 관계자는 "1990년대 윈텔(MS의 윈도와 인텔의 합성어)로 세계 IT 패권을 장악한 MS와 인텔이 2000년에는 특허를 통해 세계 기술 패권 장악에 나섰다"고 말했다.

IV는 기존의 특허 괴물보다 한 차원 진화됐다. 이 회사는 한국·일본·중국·싱가포르·인도 등 아시아 5개국에 지사를 두고, 아시아 지역 대학교수들에게 연구비 등을 지원해 특허를 공동 보유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특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IV는 최근 9년간 세계 각 지역의 대학과 기업들로부터 2만개의 특허를 사들였다.
국내에서 IV는 삼성전자에 휴대폰 특허 10건에 대한 사용료를 요구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IV에 특허 사용료를 내면, 국내의 다른 전자업체들에도 다시 특허 사용료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딜레마'에 빠진 국내 대학
주목되는 것은 IV가 대학 연구소 단계에 있는 '될성부른' 특허를 입도선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IV는 지난해부터 서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의 교수들을 상대로 '특허 아이디어' 협약을 맺었다. IV는 이미 국내 대학에서 정식 특허 출원이 가능한 특허 아이디어를 260여건 확보했고, 앞으로 매년 한국 대학에서만 400~600건의 특허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 회사는 이런 특허 아이디어 중에서 상품성이 있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아이디어를 정식 특허로 출원한다.

게다가 이 회사는 교수들에게 연구개발비 지원은 물론 건당 평균 2억원 정도가 소요되는 해외 특허 출원을 무료로 대행해준다. 그 대신 특허를 공동 소유하고 향후 IV가 기업들에서 특허료를 받으면 이를 50%씩 나눠 갖는다. 한 대학 관계자는 "국내 대학에서는 매년 4만건 정도의 연구 개발 과제가 수행되지만, 비용 문제로 대부분 해외 특허 출원을 포기한다"며 "IV가 대학 특허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는 면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두뇌로 얻은 고급 지식이 외국 업체를 돕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대·KAIST 등 주요 대학들은 최근 IV와의 협약을 제한하기로 자체 결정을 내렸다. 국내 아이디어가 외국 업체의 배를 불리고 자칫 국내 기업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서울대 서진호 산학협력단장은 "국민의 세금 지원을 받는 대학에서 만든 특허가 국내 기업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차원 보호 등 대책 시급
하지만 한국 대기업들이 국내 대학의 특허 가치를 저평가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대학 탓만 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KAIST 관계자는 "가치가 5억원 정도인 특허를 기업은 2000만원에 사려고 한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학 특허가 국외로 계속 유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대기업이 공동 특허 펀드 조성 같은 방안으로 국내 특허가 헐값에 해외로 유출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대학기술이전협회의 손영욱 사무국장은 "한국과 인도가 IV의 주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데, 양국의 공통점은 대학의 기술력은 높지만 그것이 특허로 거의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손 국장은 "정부와 기업이 함께 특허 펀드를 만들어 국내 대학들의 특허 아이디어 가치를 인정해주는 게 문제 해결의 한 방책"이라고 말했다.

일본 사례도 눈여겨 볼만하다. 일본은 820억엔의 정부예산과 민간 기업·금융회사가 출자한 펀드 등을 합쳐 최근 총 1조엔(약 13조원) 규모의 '산업혁신기구'를 발족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기구는 향후 15년 동안 운영되는 한시적 조직으로, 대학과 기업의 특허 실용화를 목표로 자금을 집중지원한다. 이를 통해 IV 같은 '특허 괴물'들의 일본 열도 침공을 원천봉쇄한다는 구상이다.

 

* 성호철 & 조호진 기자 (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