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_찬양_音_가요

말로...재즈가수

전동키호테 2009. 6. 23. 10:43

어제 저녁 늦게 EBS방송을 보다가 우연히 말로라는 재주가수를 봤는 데..

재즈...참으로 색다른 감흥을 주었다. 

 

말로(본명: 정 수월) 재즈 가수

출생 :1972년 7월 2일
소속 :JNH
데뷔 :1998년 1집 'Shades of Blue'
학력 :1995년 경희대 물리학과 졸업 및 버클리 음악대학
경력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과 출강
수상 :1993년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은상
 
팬카페: http://cafe.daum.net/malojazz
참여 음반  : 두사부일체 OST (2006년)  & 영화 가족의 발견 OST (2006년)

TV 드라마 출연 단단한 놈 (1999년)

 

 

                                            5집 앨범 자켓...

그는 왜..? 말로라는 예명을 사용 할까..?

 

말로 (프랑스 소설가)  [Malraux, Andre-Georges]

1901. 11. 3 프랑스 파리~1976. 11. 23 파리.
프랑스의 소설가·예술가·정치가.
 
샤를 드골 장군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1958년 드골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에는 10년 동안 프랑스 문화부장관으로 일했다. 주요작품으로는 소설 〈인간조건 La Condition humaine〉(1933), 전세계 예술의 역사 및 철학서인 〈침묵의 소리 Les Voix du silence〉(1951)·〈전세계 조각의 상상적 박물관 Le Musée imaginaire de la sculpture mondiale〉(1952~54) 등이 있다.
 
생애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어린시절과 교육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21세 때 크메르족의 오래된 사원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고고학 회보에서 읽고, 그 사원을 찾아 프랑스를 떠났다(→ 반테아이 스레이). 그는 캄보디아의 밀림 속으로 들어가 당시만 해도 복원될 계획이 없었던 그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에서 몇 개의 부조(浮彫)를 떼내어,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으로 돌아온 그는 곧 체포되어 금고형을 선고받았으나, 본국 정부에 탄원하여 석방되었다. 감옥에서 프랑스 식민당국의 학대를 받은 말로는 열렬한 반식민주의자이자 사회변혁의 옹호자가 되었다. 동남아시아에 있는 동안 그는 안남 청년동맹(베트민, 또는 베트남 독립동맹의 전신)을 조직하고, 지도적인 작가이자 팜플렛의 저자가 되었으며 〈앵도신 앙셰네 L' Indochine Enchaînée〉('속박당한 인도차이나'라는 뜻)라는 신문을 '창간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중국혁명운동의 여러 사건에 참여한 것이 분명하며, 쑨원[孫文]에 이어 장제스[莊介石]의 조언자로 일한 러시아 공산당의 미하일 보로딘을 만났을 가능성도 있다.
그후에도 여러 번 동아시아 지방을 방문했다. 1929년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에서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중요한 불교 예술품을 발견했고, 1934년에는 룹알할리 사막을 넘어 아랍으로 날아가 시바 여왕의 전설적인 도시의 유적일 가능성이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1926년에 2번째로 인도차이나에서 돌아온 뒤, 첫번째 소설 〈서구의 유혹 La Tentation de l'Occident〉을 발표했다. 1928년에 출판한 〈왕도 La Voie royale〉 및 1933년에 발표한 대표작 〈인간조건〉(콩쿠르상 수상)을 통해 그는 프랑스 주요 소설가이자 정치적 지도력을 가진 현실참여 지식인으로서 확고한 명성을 굳혔다. 그는 뛰어난 지성과 서정적인 산문, 놀라운 기억력과 폭넓은 지식으로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의 진정한 생활이 〈누벨 르뷔 프랑세즈 La Nouvelle Revue Française〉의 편집위원회나 문학 살롱 따위의 문단 사회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은 널리 인식되어 있지 않았다.
1930년대 나치즘이라는 형태로 독재적 국가사회주의가 등장했을 때 그는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국제공산주의자인 에른스트 텔만과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를 석방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위원회를 주재했다. 동시에 그는 완고한 마르크스주의를 피하고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전국동맹'에 참여했으며 1935년에는 강제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전에 공산주의자에 대한 나치의 야만적인 감금을 묘사한 소설〈모멸의 시대 Le Temps du mépris를 발표했다. 그무렵 〈예술의 심리학 Psychologie de l'art〉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다른 관심사들과도 관계된 활동이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미학의 개념들은, 소설에서 표현한 행동철학과 마찬가지로 항상 운명에 대한 인간의 영원한 질문과 반응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1936년에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스페인으로 가서 공화군에 가담했고 그들을 위해 국제비행대대를 조직해 대령이 되었다. 그는 전선에서 수없이 비행하며 임무를 수행한 뒤, 스페인에 의료 원조를 제공하기 위한 돈을 모금하러 미국으로 건너갔다. 스페인에서 겪은 경험에 바탕을 둔 소설 〈희망 L'Espoir〉은 1937년에 발표되었다. 1938년에 그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직접 제작하고 감독한 영화 〈희망〉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해방된 뒤에야 프랑스에서 상영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프랑스 전차부대에 사병으로 입대했다. 한때 포로가 되었지만 프랑스의 자유구역으로 탈출해 레지스탕스운동에 가담, 프랑스 중남부에 있는 코레즈 주에서 프랑스 지하운동 생활을 시작했다. 1944년 독일군의 총에 맞고 사로잡혀 모의 처형을 경험하기도 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연합조직인 프랑스 국내군에게 구출된 그는 자유 프랑스 여단을 조직하여 프랑스 제1군이 알자스 지방의 스트라스부르를 공격할 때 이 부대를 이끌고 가담했다. 이 고난의 시기에 그는 혁명활동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난날의 열정을 버리고 서구 문명이 제시하는 가능성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알자스 전선에서 샤를 드골장군을 만난 후 그의 운명은 드골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었다. 그는 드골의 첫번째 내각에서 임시로 공보장관(1945. 11~1946. 1)을 맡았으며 그후 드골을 따라 은퇴했지만 이따금 세상에 나와 드골파인 프랑스 인민대회(RPF)에서 전국 대표로 훌륭한 연설을 했다. 그는 프랑스 북부의 불로뉴 지방에 있는 저택으로 은퇴해 예술에 대한 기념비적 명상록인 〈침묵의 소리〉를 쓰는 일에 몰두했다. 이 책은 1951년에 출판되었다. 1958년에 다시 집권한 드골은 말로를 제5공화국 초대 내각의 문화부장관으로 임명했다. 그후 10년 동안 그는 드골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혁신적이고 강력한 문화 행정을 펼쳤다.
 
문학작품
그는 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생활을 하는 틈틈이 정치적 이상주의와 혁명 투쟁의 비극적인 모호함을 다룬 훌륭하고 힘찬 소설을 여러 편 썼다. 그의 첫번째 중요한 소설 정복자들 Les Conquérants(1928)은 직접 탐험한 캄보디아의 크메르족 사원들을 무대로 한 공포소설이다. 그는 대표작인 〈인간조건〉을 통해 전세계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소설은 장제스와 국민당이 1927년에 옛날의 동지인 공산당을 분쇄하고 있던 중국 상하이를 무대로 전개된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중국 공산당의 몇몇 음모자와 유럽의 모험가들이다. 이들은 중국 국민당과 소련에서 파견한 밀사들에게 모두 배신당한다. 이 복잡하고 내성적인 인물들은 모두 자기를 기다리는 비극적인 운명에 제각기 다른 영향을 받지만, 정치활동을 함께 하면서 생겨난 우애는 이들에게 인간 조건의 특징인 무의미한 고독에 대한 유일한 방어수단처럼 보인다. 〈모멸의 시대〉에서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나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분명 마르크스주의에 공감했고 파시즘을 신랄하게 비판했는데도, 소련에서 출판이 허가된 책은 〈모멸의 시대〉뿐이었다. 또한 스페인 내란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가장 염세적인 정치소설 〈희망〉을 썼다. 이 책은 스페인 내란이 일어난 뒤 9개월 동안의 상황을 극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1945년부터는 사실상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그대신 예술사와 예술비평으로 돌아섰다. 〈침묵의 소리는 3권으로 이루어진 〈예술심리학〉(1947~50)의 개정판이다. 〈침묵의 소리〉는 방대한 참고문헌을 이용해 모든 나라와 모든 시대의 예술사를 집대성한 훌륭한 저서이다. 이 저서는 또한 인간이 무의미한 부조리와 인간 조건의 무의미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예술에 대한 철학적 명상록이기도 하다. 말로는 전3권으로 이루어진 〈신들의 변신 La Métamorphose des Dieux〉(1957~76)에서도 이러한 접근방식을 계속 탐구했다. 1967년에 자서전인 〈반(反)회고록 Antimémoires〉을 출판했다. 반려자인 소설가 루이즈 드 빌모랭이 죽은 뒤로는 파리 근교의 베리에르르뷔송에서 혼자 고독하게 살면서 글을 쓰다가 이곳에 묻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