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_건강_食_교육

'연매출 100억' 영어강사의 생존법

전동키호테 2009. 4. 27. 18:33

기업 뺨치는 콘텐츠 개발·투자
'R&D센터' 두고 교재 연구 전공자·외국인 조교 수십명 "생존 건 실력 경쟁 피말려"

"연결사 문제 중에선 'ironically(반어적으로)'를 가장 헷갈려 하더군요. 다음 강의에서 한번 더 연습해볼 수 있도록 관련 문제를 내주세요."

24일 오후 서울 청파동의 사무실. 강의가 없는 날인데도 영어 강사 김기훈(40)씨는 칠판에 영어 단어를 적어가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김씨의 말을 노트에 열심히 받아 적는 15명은 그가 채용한 '연구원'들이다. 3~4월 강의에서 나온 학생들의 질문과 반응을 분석해 5월 강의 교재를 다시 만들기 위해 회의를 연 것이다.

김씨는 "대한민국 '1타' 강사의 힘이 여기서 나온다"고 했다. 야구의 1번 타자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1타' 강사란 특정 과목·영역별로 수강생이 가장 많은 1등 강사를 뜻하는 학원가의 은어(隱語)다. 그의 강의는 지난 6년간 온라인 누적 수강생 75만명에다 연평균 매출 100억원씩을 올려왔다.

스타 강사 김기훈(가운데 남자)씨가 연구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이씨의 모든 강의가 끝날 때마다 정답률 50% 아래인 문항을 골라내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다음 강의 교재에 반영한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비결이 뭘까. 그는 청파동에 있는 교재연구센터 외에도 2~3년 전부터 대치동과 도곡동에 각각 'R&D센터' '온라인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을 다 합하면 39명. 모두 영어 전공자들이고 30% 이상이 석사 출신이다.
수준 높은 영어 지문을 구하기 위해 캐나다·미국 현지에서도 외국인 3명을 고용했다. 인건비는 모두 김씨가 벌어들이는 강사료와 교재 수입에서 나간다. 이 정도면 '중소기업' 수준이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수와 현직 교사들이 엄선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수능시험 문제입니다. 학생들 성적을 올리려면 그에 버금가는 인적자원을 투입해야죠."
강의 준비는 더 철저하다. 1시간 수업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3시간이 넘는다. 수만건의 온라인 질문을 분석해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부분을 뽑아낸 뒤 다음 수업에 반영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 문제를 푸는 데 몇분을 쓸지, 강의 전체의 기승전결을 어떻게 이어갈지 등 면밀한 시간 계획까지 끝마쳐야 강의에 들어간다.  강의가 시작되면 연구실장이 학생 자리에 끼어 앉아 학생들 반응을 살핀다. 어떤 부분을 가르칠 때 학생들이 어려워서 머리를 긁적였는지, 어떤 얘기를 할 때 학생들이 지루해서 교재에 낙서를 하고 하품을 했는지를 직접 모니터하는 것이다. 이렇게 준비하는 그의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미 최정상에 올랐는데, 여전히 이렇게까지 치열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는 "요즘도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학교는 가기 싫어도 가야 하지만, 학원은 돈을 낸 만큼의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하면 끝입니다. 정(情)으로 되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올해로 강의 경력 20년차가 됐지만 아무도 제가 20년차란 것으로 대우해주지 않아요. 오직 나를 선택한 학생들의 성적으로만 말하는 건데, 피 말리는 일이죠."
사교육시장은 완벽한 시장경쟁체제를 갖추고, 오로지 성과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메가스터디의 경우 강사들에게 적용되는'룰'은 오직 하나다. '강의 판매 매출의 23%를 강사료로 준다'는 것이다. 김씨 같은 '1타' 강사나 오늘 처음 강의를 시작하는 신참 강사나 똑같은 환경에서 경쟁하는 것이다. 결국 100명이 듣는 강의를 만드느냐, 1만명이 듣는 강의를 만드느냐에 강사들은 사활을 걸게 된다.

메가스터디 손은진 전무는 "공평하게 열린 무대에서 강사들의 실력 경쟁이 무섭게 벌어지면서 강의 매출 기준의 강사 순위가 날마다 끊임없이 변한다"고 했다. 신참 강사들은 유명 강사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면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기존의 유명 강사들은 5만명, 10만명이 듣는 강의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냉혹한 시장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친 학원 강사들을 상대로 학교 교사들은 과연 승산이 있을까. 김기훈씨의 대답은 "지금으로선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출발선상에선 학교 선생님들이 학원 강사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우수합니다. 저는 임용고사 볼 엄두도 못 냈었어요. 그러나 학교 선생님들에겐 더 열심히, 더 사명감을 가지고 가르친 것에 대한 물질적·정신적 보상이 없잖아요. 동기 부여가 될 만한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 선생님들에게 '초인적인 사명감'만 요구한다고 해결되나요."         최수현 기자 chosun.com